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 중 하나는 ‘희망퇴직’이다. 몇 년 전만 해도 희망퇴직은 유동성에 위기를 겪는 기업이 단기간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는 긴급 처방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마치 상시 제도처럼, 하루가 멀다고 대기업들의 ‘희망퇴직’ 뉴스가 들려온다. 그 대상도 10년 이상 일한 50대에서 1년 차 20대까지 확대되었다. 이쯤 되면 이는 단순한 유동성 확보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 자체의 의미와 구조를 바꿀 만한 거대한 변화가 우리 사회에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핵개인’과 ‘호명사회’라는 혁신적인 키워드로 개인에 초점을 맞춰 우리 사회의 변화를 소개해온 송길영 작가가 세 번째 《시대예보》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경량문명의 탄생’을 선언하며, 우리 사회의 모든 ‘조직’ 단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날카로운 시선과 섬세한 표현으로 소개한다.

시대의 마음을 캐는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이다. 사람들의 일상적 기록을 관찰하며 현상의 연유를 탐색하고 그들이 찾고자 하는 의미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20여 년간 해왔다. 개인들의 행동은 무리와의 상호작용과 환경의 적응으로부터 도출됨을 이해하고, 그 합의와 변천에 대해 알리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깊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영감을 받는 것에서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저서로 《시대예보: 호명사회》(2024),《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2023), 《그냥 하지 말라》(2021),《상상하지 말라》(2015) 《여기에 당신의 욕망이 보인다》(2012)가 있다.

프롤로그_피할 수 없는 문명의 가벼움

모두 다 나름의 계획은 있었다

대마필사 - 거대하면 죽는다

부지런한 지능과 초월적 지능

경량문명을 담는 그릇, 클러스터

협력의 경량화

에이전트의 등장, 에이전시의 몰락

미디어 산업의 변화 - 매스의 종언, 각자의 팬덤

경량문명 시대의 브랜드 -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의 경쟁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들

새로운 리더의 덕목 - 위대한 쇼맨

새로운 조직의 기준 - {인간, 인공} 지능

조직 문화의 새로운 역할 - ‘엔터테인먼트’

공부의 배신, 배움의 재정의

선망의 K - 세계의 시선이 한국으로

로컬, 글로벌이 되다

새로운 K - 부품에서 브랜드로

확장되는 K - 새로운 한국사람

문명의 충돌

바꿀 수 없는 것, 바뀌지 않는 것

섬세함, 기계에 맞설 무기

경량문명의 새로운 규칙

에필로그 _첫 비행을 앞둔 당신에게

모든 이가 일상을 함께하고 공동체 중심으로 생산하던, 거대하고 무거운 문명이 이제 저물고 있다. 지난 200년간 산업혁명 이래 분업화와 전문화를 통해 거대화된 조직은 '규모의 경제'를 기반으로 사회를 지배해왔다. 이것이 중량문명의 모습이다. 하지만 무겁고 거대한 문명은 필연적으로 느리며,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속도의 변화에 발맞춰 가기 벅차다. 생존을 가르는 것은 이제 규모가 아니라 변화에 즉각 반응하는 힘이 되었다.

이제 저마다의 지혜가 각자의 인공의 지능과 결합하고, 작은 규모의 모둠으로도 커다란 진보를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문명의 시대가 시작된다. 무엇보다 그 문명의 혜택을 함께 나누려는 수많은 조직의 밑그림이 이제 막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가볍고 빠른, 그렇지만 더욱 깊어지는 문명을 경량문명이라 선언한다. 물리적인 통신망을 가지지 않더라도, 기간 인프라가 부족한 곳에 살고 있어도, 스마트폰을 가진 모두에게 경량문명이 동시에 도착할 것이다. 모두가 변화의 중심에서 함께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는 희망의 신호가 발신되고 있다.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가 아니라, '빠른 전환자(fast changer)'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며, 누구나, 어느 곳에서나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지난 시대의 경험은 이 사회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속'이 미덕으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그러나 쉬지 않고 일하는 AI의 빠른 속도 앞에서 인간은 압도되기 시작한다. 새벽종이 울릴 때 일터에 나가고, 밤늦게까지 투잡을 뛰어온, '빨리빨리'라는 단어를 전 세계에 수출한 한국인들도 이 속도는 따라잡을 수 없다. 남들보다 덜 자고, 남들보다 노력하며 경쟁력을 유지해온 이 땅의 사람들은 이제 무력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러한 가속화 속에서 경량문명은 적은 수의 구성원이 증강되어 스스로 완결성을 가지는 일을 행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협력의 경량화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인공지능의 범용화는 개인이 할 수 없었던 일의 많은 부분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증강된 개인은 갑을관계를 넘어 서로가 발전하고 시너지를 얻을 수 있는 수평적 협력으로 일하고 성과를 낸다. 지능화와 투명성으로 무장한 경량조직에서는 음영이 생길 수 없기에 모든 이들이 스스로의 결과를 공개하고 책임지는 시스템을 구현한다. 문제의식과 직업의식을 가진 소수가 자발적 의지로 극단의 효율성을 내는 문화로 진화하며 감시와 관리라는 중량문명의 시스템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K의 경쟁력이 부품에서 브랜드 중심으로 거듭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의 궁리, 제품 위에 놓인 상징, 서사가 만들어낸 고유함이 필요했다. 이제 브랜드의 주체는 국가에서 기업, 기업에서 개인 단위까지 분화되고 있다. 변화의 가장 큰 흐름은 가벼워진 생산과 긴밀해진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경량문명의 새로운 협업 방식에서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경량은 단순히 무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가치 체계의 재구성이고, 관계 방식의 혁신이며, 무엇보다 지속 가능성을 향한 설계이다. 경량문명의 언어는 다음과 같다. 더 적게 소유하고도 더 넓게 연결되는 삶, 덜 복잡하지만 더 깊이 있는 질서, 무엇보다 서로에게 덜 바라며 더 위하는 자세이다. 사람이 만든 기술이 구조를 가볍게 만들고, 사람의 지혜는 의미를 더한다. 그렇게 우리는 무거운 세계의 질곡을 넘어 더 가벼운 문명으로 향하고 있다.

장거리 비행에서 제공되는 식사는 출발지가 아닌, '도착지 시간'을 기준으로 준비된다. 비행기 안의 사람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목적지의 시간에 맞추기 위해 현재의 감각을 거슬러 조율한다. 경량문명을 살아가게 될 이들도 이와 같다. 새로운 문명의 구성원들은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아니라, 앞으로 닿을 지점을 향하며 몸과 마음을 닦아나간다. 지금의 피로는 미래의 리듬에 자신의 삶을 조율하려는 노력이다. 경량문명의 비행은 단순히 점과 점을 잇는 이동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의 감각을 익히는 적응과 같다. 생존을 가르는 것은 덩치가 아니라 변화에 즉각 반응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 문명을 먼저 이해하는 자만이 다음 시대를 살아남을 수 있다.

경량문명은 인공지능의 범용화와 협력의 경량화라는 두 축의 패러다임 변화를 통해 200년간 지속된 거대하고 무거운 중량문명을 종식시키고 있다. 증강된 개인이 작은 단위의 모둠을 이루어 극단의 효율성을 추구하며, '빠른 전환자'가 생존을 결정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경량문명에 적응하는 것은 단순히 효율을 높이는 것을 넘어, 소유보다 연결을, 의존보다 위함을 중시하는 가치 체계를 재구성하고, 현재의 안락함 대신 다가올 미래의 리듬에 자신의 삶을 조율하는 능동적인 자세를 요구한다.

이 책은 인공지능의 가속화 속에서 개인이 커지고 조직이 작아지는 거대한 사회 변화를 '경량문명'이라는 명쾌한 키워드로 정의한다. 규모의 경제 대신 변화에 즉각 반응하는 힘이 생존을 결정하는 이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조직의 법칙과 개인의 삶의 태도를 심도 있게 탐구한다. 미래를 향한 문을 열고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통찰을 얻고 싶다면 반드시 이 책을 통해 다음 시대를 살아남을 지혜를 얻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