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청 도서요약

이 책은 ‘기적의 발견, 출발선 다지기, 자존감 높이기, 진정한 행복에 다가서기’라는 4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정샘물의 인생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지만, 꿈에 도전하는 과정 속에서 이룬 일상의 기적과 마주하는 것은 더욱 흥미롭다. 무엇보다 그 기적은 그저 운이 좋아서 이뤄진 것도, 어쩌다 우연처럼 도착한 것도 아니다. 끊임없이 원하는 이미지를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준비를 ‘매일, 꾸준히, 집요하리만치 성실하게 해’온 결과이기에 독자들로 하여금 ‘나도 가능하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나는 오늘도 나를 믿는다

기적의 발견 : 꿈이 현실이 되는 인생 로드맵
기적은 어떤 얼굴로 나를 찾아오는가

언젠가 눈을 감는 순간이 오면 인생의 어떤 순간을 떠올리게 될까? 이제껏 내게는 기쁘고 슬프고 벅차고 감동적인 수많은 순간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2016년 가을, 연세대학교 강단에 섰던 그 순간만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를 바라보고 어리는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들, 그 앞에서 나는 한없이 긴장했다. 애써 태연하려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흥분으로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여러분, 저는 여기 공과대학에 30년 만에 다시 왔어요. 열일곱 살 때부터 3년 동안 연세대학교를 매일 다녔거든요. 당시 저는 아르바이트생이었습니다. 공과대학에서 사환으로 일했어요. 넓은 캠퍼스 곳곳을 뛰어다니며 나도 여기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30년 만에 그 꿈을 이루었네요.” 가슴이 벅차올라 말을 잇기 어려웠다. 때맞춰 학생들이 응원이라도 하듯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미지를 모으면 꿈에도 가속이 붙는다

누군가 당신에게 슈퍼마켓에 가서 ‘디리링’ 을 사오라고 한다, 당신은 ‘디리링’ 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므로 슈퍼마켓 점원에게 문의한다. 점원이 가리키는 곳에서 ‘디리링’이라는 것은 찾았지만, 수많은 ‘디리링’ 중에 무엇을 골라야 할지 혼란스럽다. 결국 당신은 눈을 질끈 감고 아무 ‘디리링’이나 골라온다. 그것이 최선인지 아닌지 당신은 끝내 알지 못한다.

그런데 만일 ‘디리링’이 아니라 바나나를 사오라고 시켰다면 어떨까? ‘바나나’ 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부터 당신 머릿속에는 샛노랗고 단단한 바나나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그 결과 당신은 다양한 바나나들 속에서도 혼란을 느끼지 않고 원하는 바나나를 곧바로 찾을 수 있다.

내가 모은 이미지가 10년 뒤 내 모습이다

이처럼 내 머릿속에 선명한 이미지가 있느냐 없느냐는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원하는 것에 대한 선명하고 뚜렷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은 그 이미지와 같거나 비슷한 것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반면 흐릿하고 막연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은 선택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것을 얻게 된다.

스크랩북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 그저 막연하게 꿈꾸면 그 무엇도 얻기 어렵다. 하지만 스크랩북이라는 시각화 수단을 활용해 내가 원하고 꿈꾸는 것에 대한 명확한 이미지를 뇌에 각인시키면 결과적으로 목표를 이루기가 한결 쉬워진다.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모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성장 속도 자체가 다르다. 이미지를 모으는 사람의 성장 속도에는 가속이 붙는다. 꿈꾸는 이미지를 모으면 일단 목표 자체가 확실하고 선명해진다. 무엇보다 이미지를 모으고 스크랩하는 일은 자신을 이해하고 들여다보는 성찰의 기회가 된다. 순간순간 나를 매료시키고 잡아끄는 이미지를 스크랩북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보자. 그러면 어느 순간 매직아이처럼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실패한 꿈은 없다, 이루지 못한 꿈이 있을 뿐

스무 살 후반부터 ‘인생 로드맵’ 이라는 걸 만들기 시작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던 시기였다. 일이 홍수처럼 밀려들어 반갑고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거센 물결에 떠밀려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인생 로드맵’ 만들기였다.

인생 설계도이자 꿈의 지도, 인생 로드맵

나중에서야 나 말고도 이런 작업을 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림이나 사진 등을 스크랩함으로써 꿈과 이상을 가시화하고, 그것을 일정한 체계로 매핑(mapping)해서 누구보다도 빨리 꿈을 현실로 만든 사람들이 있었다. 지인의 소개로 이런 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읽으면서 내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의문인 ‘왜 내가 꿈꾸는 모든 것은 이루어질까?’ 에 대한 답을 얻었다.

뇌에는 ‘목표 지향 체제’ 라는 것이 있어서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면 이를 이루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하게 된다. 목표가 구체적이고 시각적으로 분명할수록 뇌에서 이를 더 명확하게 인지하기 때문이다. 도달해야 할 고지가 분명하면 그것을 향해 매진하게 되듯이. 인생 로드맵을 만드는 일은 이러한 목표 지향 체제의 스위치를 누르는 것과 같다.

그때부터 나만의 인생 로드맵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주변 지인들과도 그 방법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특히 정샘물아트앤아키데미 강의나 청년 멘토링을 할 때면 빼놓지 않고 인생 로드맵을 다룬다. 첫째, 자신의 꿈과 이상을 담은 그림이나 사진 혹은 기사 등을 골라서 스크랩한다. 둘째, 스크랩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해진 형식 없이 자유롭게 인생 로드맵을 만들되, 처음에는 내 인생의 과거ㆍ현재ㆍ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시간별로 만들면 좋다. 셋째, 끊임없이 업데이트한다. 인생 로드맵은 단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나를 매료시키는 이미지와 글을 발견할 때마다 기존 인생 로드맵에 계속해서 덧붙이고 추가할 수 있다.

큰 변화를 가져올 아주 사소한 시작

인생 로드맵은 인생 계획표와 다르다. 계획표는 실현 가능한 목표를 잡는 것이 중요하지만, 인생 로드맵은 꼭 그럴 필요가 없다. 물론 로또 당첨, 유산 상속처럼 행운이나 타인에 의존하는 꿈은 곤란하다. 하지만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꿈이라면 지금 당장은 허황해 보여도 얼마든지 인생 로드맵에 넣을 수 있다. 아니 오히려 크고 원대한 꿈일수록 좋다. 작은 꿈을 꾸면 작게 이루고, 큰 꿈을 꾸면 크게 이룬다.

설령 꿈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그것이 곧 실패는 아니다. 만일 내가 스무 살에 미대에 진학하지 못한 것을 실패라 여기고 그 꿈을 포기했다면 서른일곱 살에 샌프란시스코 유학을 결심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 꿈을 인생 로드맵에서 삭제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내 가슴에 새기고 또 새기는 한, 언젠가 어떤 기회로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따라서 실패한 꿈은 없다.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을 뿐이다.

특히나 20~30대는 실패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젊음에는 회복 탄력성이 존재한다. 실패해도 다시 튀어 오를 에너지가 있다. 가난하고 학벌도 없던 나는 그 시절을 견뎌냈고 자신을 지켜냈다. 언젠가 인생 로드맵 속 이미지처럼 근사한 사람이 되리라는 확신이 어떤 실패도 이겨낼 힘을 주었다.

몇 년 전 일이다. 웨딩 메이크업 예약이 있어서 일찍 출근했는데, 밤새 창문이 열려 있었는지 참새 한 마리가 들어와 있었다. 참새가 나갈 수 있게 창문을 활짝 열어주었지만, 참새는 유리창에 작은 몸을 퉁, 퉁, 부딪기만 할 뿐 좀체 탈출하지 못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더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눈을 떠보니 다행히도 참새는 열린 창으로 빠져나가고 없었다.

어쩌면 우리도 유리창에 갇힌 참새와 같을지도 모른다. 훤히 열린 창은 보지 못하고, 닫힌 창을 향해서만 돌진하는 참새. 그러나 창은 이미 열려 있다. 단지 그걸 보지 못할 뿐이다. 유리창에 수십, 수백 번 몸을 부딪쳐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열린 창을 통과해 푸른 하늘로 날 수 있다. 생생하게 꿈꾸고, 치열하게 노력하고, 처절하게 실패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일어나면 마침내 꿈은 현실이 된다.

출발선 다지기 : 모든 미래는 ‘지금의 나’에서 시작된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길을 잃지 않는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이 있느냐’ 고 물어본 적이 있다. 이 질문에 자신 있게 손을 드는 학생은 별로 없었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세 명의 학생이 나를 쫓아 나왔다. “제 장래가 너무 고민이에요.” “저도요! 뭘 해야 할지,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강의 중 던진 내 질문이 아이들의 가슴을 뛰게 한 모양이었다. “너희들이 정말 신나고 행복해서 하는 일이 있을 거야. 그게 뭔지 생각해봐.”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하라고 하는 건 열심히 하는데, 정작 자기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점점 늘어 앞으로는 120살까지 살 거라고 한다. 스무 살도 안 되는 고등학생이 앞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 명확히 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요즘 고등학생들은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할 기회도 빼앗기고 사는 처지 아닌가.

인생 로드맵의 기준은 언제나 ‘나 자신’

내가 강의하는 ‘컬러 앤드 디자인(color & design)’ 수업에서는 유독 우는 수강생들이 많다. ‘나에 대해 생각해보기’가 숙제로 나가고 수업 중에 이를 발표해야 하니 억지로라도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나는 수강생들이 마음을 최대한 열 수 있도록 들어주고 공감하고 격려하는 역할을 한다. 때로는 아주 친한 친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들도 눈물범벅이 된다.

가령 수강생 한 명이 꽃을 활용한 메이크업을 하고 싶다면서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하면 ‘꽃이 왜 좋은지, 꽃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등을 묻는다. 그러면 수강생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라 당황하면서도 천천히 기억을 더듬기 시작한다. “생각해보니까 꽃을 좋아하게 된 건 엄마 때문인 것 같아요. 엄마가 꽃을 워낙 좋아하셔서 집 안 곳곳에 늘 꽃을 꽂아두셨거든요.” 그러다 문득 수강생은 자기 인생이 늘 엄마의 영향력 안에서 움직였음을 깨닫는다.

평상시에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인데,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깨닫게 된 후엔 무척 놀라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수강생들은 남을 의식하는 시선, 자신을 억눌렀던 감정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기 자신과 대면한다.

우리가 길을 잃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목적지가 없어서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지도가 없어서라고 한다. 하지만 길을 잃는 진짜 이유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의 좌표를 알아야 어떤 방향으로 갈지 경로를 설정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누군지 모르면 아무리 인생 로드맵을 그럴 듯하게 그려도 길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니 내 인생 로드맵의 목적지가 어디든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내 안을 파헤치고 들어가 내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나를 관찰하고 나만의 고유성을 파악하는 것이 나의 핵심 가치를 만드는 첫걸음이다.

웃는 얼굴로 기꺼이 위기를 맞을 때 열리는 기회의 문

내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하기 시작한 건 1991년, 스물두 살 때였다. 당시만 해도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연예인을 따라 다니며 화장 고쳐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고단하고 가난한 직업이었다.

그나마 형편이 좀 나아진 건 여성 듀오 코코와 일하면서부터였다. 무엇보다 윤현숙과 인연을 맺은 것이 가장 감사한 일이다. 초짜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내게 그녀는 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그즈음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 이승연의 매니저에게서 연락이 왔다. 당시 이승연은 가장 유망한 라이징 스타이자 어떤 아이템을 걸치기만 하면 유행시키는 패셔니스타였다. 그러니 내게는 이 기회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하늘이 내려주신 동아줄과도 같았다.

햇병아리 아티스트에게 날개를 달아준 스크랩북

실제로 본 이승연의 얼굴은 화면에서 보던 것보다 더 이지적이고 서구적이었다. 그녀가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를 찍는 동안 나도 정말 신나게 펄펄 날아다니면서 일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행운은 오래 가지 않았다. 드라마가 끝나자 나는 백수 아닌 백수가 되었다. 이승연이 다음 드라마 촬영까지 휴식기를 갖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두 달이 흐르자 슬금슬금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연히 쇼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이승연이었다. 처음에는 멍했다가 금세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 메이크업은 누가 한 거지? 나도 모르는 새 내가 잘렸던 거야?’ 눈앞이 캄캄했다. 더는 물러설 데가 없다는 생각에 부리나케 청계천으로 달려가 고서적과 잡지들을 사서는 스크랩북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경쟁자로 꼽히던 여배우들과 이승연을 비교 분석하고, 이승연만의 매력을 돋보이게 할 전략을 제안하는 일종의 보고서 성격의 스타일북을 만든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분장실에 가 있었다. 의자에 앉아 와들와들 떨면서 녹화가 끝나길 기다렸다. 그렇게 네 시간 가량을 기다리자 마침내 녹화를 끝낸 이승연이 분장실로 들어왔다. “네가 여긴 웬일이니?” 간신히 고개만 숙여 인사하고는 불쑥 스크랩북을 내밀었다.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스크랩북을 받더니 탁자 위에 그대로 올려두고는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이승연이 탁자로 돌아와 스크랩북을 펼쳐 들었다. 내 얼굴 한 번 보고 스크랩북을 한 장 넘기고, 또 내 얼굴 한 번 보고 스크랩북을 한 장 넘기고…. 마침내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더니 손으로 내 팔꿈치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너도 참 대단하다. 그래, 가자. 우리 집에 같이 가.” 그날부터 나는 이승연의 전속 아티스트가 되었다.

열일곱 아르바이트생, 스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다

이후로는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걸으며 뻗어나갔다. 드라마든 광고든 이승연의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을 내가 전적으로 책임졌다. 그러다 1995년 드라마 <거미>에서 선보인 이승연의 메이크업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전성기가 찾아왔다. 그때부터 일거리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이승연의 소개로 당대 최고의 여배우 김희선, 고소영, 김지호 등과 일하기 시작했다.

“당신 해고야.”라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한 채 부지불식간에 백수가 된 내게 어떻게 2년 만에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남다른 노력과 대담한 도전이 가져다 준 선물이었다. 첫째, 나를 증명할 사람은 나 자신뿐이라는 절박함으로 매순간 철저하게 준비하고 연구했다. 나는 어떤 작업이든 콘셉트 단계에서 철저하게 조사하고 연구해 스크랩북을 만들었다. 촬영 현장에서도 어떻게 하면 배우의 매력을 자연스럽게 돋보이게 할지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둘째, 다른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관찰해 그들과 반대 전략을 세웠다. 당시 다른 배우들의 스타일리스트, 헤어디자이너,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은 대개 짙은 화장에 아찔한 스틸레토 힐을 신은 모습이 마치 연예인 같았다. 나름 자신의 감각을 뽐내자는 전략이었겠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빛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내가 스타일링한 배우다. 나는 늘 화장기 없는 얼굴에 운동화와 청바지, 맨투맨 차림으로 현장에 갔다.

당시 나는 메이크업뿐 아니라 헤어와 스타일링까지 1인 3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승연과 함께 촬영장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그려가 촬영을 끝낸 뒤에도 나는 다음 날 촬영 준비로 여기저기 뛰어다녀야 했다. 촬영 현장은 시간에 쫓기게 마련이라 늘 일손이 부족했다. 다른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은 내 할 일만 하면 끝이라는 듯 팔짱끼고 앉아 있었지만, 나는 달랐다. 지금 생각하면 1인 3역이 아니라 1인 5역, 6역 정도는 했던 것 같다.

역경은 장애물이 아닌, 아직 받아들이지 않은 기회다

나는 역경을 또 다른 기회로 만든 사람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에이미 멀린스(Aimee Mullins)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태어날 때부터 양쪽 다리의 종아리뼈가 없었던 에이미는 의족을 신은 채 모델과 영화배우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 장애인 올림픽에 미국 국가대표로 출전해 100미터, 200미터 단거리 육상 대회와 멀리뛰기에서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다.

그녀가 태어났을 때 의사는 “이 아이는 절대로 걷기도, 운동하지도 못할 것이고, 타인의 도움 없이는 살지도 못할 겁니다.” 라고 예단했다. 하지만 에이미의 할머니는 그녀에게 다른 말을 들려주었다. “에이미, 홍수가 나면 손을 높이 들려무나. 그리고 머리 위에 있는 무언가를 힘껏 움켜잡아.” 에이미는 할머니의 말씀을 잊지 않고 늘 새로운 기회를 움켜잡으며 살았다. 의사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도 의족을 낀 두 다리로 국가대표가 되어 트랙 위를 달렸고, 세계적인 모델이 되어 런웨이를 걸었다.

누구에게나 역경은 찾아온다. 그리고 역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역경과 싸워 이기려는 사람은 좌절하거나 상처 입는다. 그러니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기고 춤추자. 그러다 보면 다음 춤곡에서 역경이 아닌 기회의 손을 잡고 춤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자존감 높이기 : 인생 로드맵에서 지름길을 찾는 방법
나를 믿는 순간 꿈은 확신이 된다

“유학? 말도 안 돼.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유학을 가?” “왜 말이 안돼? 내가 보기엔 못 갈 이유가 전혀 없는데?” 남편이 처음 유학 이야기를 꺼냈을 때만 해도 나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2006년 당시는 내 커리어의 정점을 찍는 시기였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메이크업 예약이 빠듯하게 잡힌 와중에 틈틈이 CF와 드라마 작업을 소화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나더러 유학을 가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물론 남편이 내게 유학을 권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내 건강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브러쉬를 들 때마다 팔이 떨어져 나갈 듯이 아팠고, 척추 측만증이 갈수록 심해졌다. 가장 심각한 것은 수시로 오는 반신마비였다. 왼쪽 팔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어 새벽에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여러 번이었다. 일을 줄이고 쉬는 게 최선이었지만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일거리를 두고 나 몰라라 할 수가 없었다.

20년을 돌고 돌아 마침내 나의 길을 찾다

그러던 차에 해외 출장이 잡혔다. 프랑스 프로방스에서 송혜교와 이니스프리 광고를 찍고, 곧바로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 전지현, 이효리와 함께 애니콜 광고를 촬영하는 일정이었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끝낸 이튿날 아침, 도저히 눈이 떠지질 않았다.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리고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행기 탈 기운도 없으니 여기서 딱 3일만 쉬었다 가겠다고. 그렇게 꼬박 만 하루를 자고 일어났다. 달콤했던 숙면 덕분에 간만에 몸이 깃털같이 가벼웠다.

정신을 차리고 호텔을 나섰다. 샌프란시스코의 모든 거리가 내겐 천국과도 같았다. 어딜 가든 거리에서 예술가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특히 그라피티 아티스트들의 역동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눈길 닿고 발걸음 머무는 모든 곳에 예술, 또 예술이 있었다. 오랫동안 묻어둔 순수미술을 향한 열망이 다시 꿈틀대는 걸 느꼈다. 이런 곳에서 몇 년, 아니 단 1년이라도 공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정을 누비며 그림을 그리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행복해졌다.

나의 한계를 정할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유학의 경험과 자신감으로 완성시킨 ‘정샘물 브랜드’

2017년도에는 가로수길에 플래그십 스토어 ‘정샘물 플롭스’를 오픈했다. 정샘물 브랜드의 모든 제품을 직접 체험하고 구매하는 동시에 아티스트들의 다양한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역시 순수미술을 배우지 않았다면 구상하기 어려운 계획이었을 것이다.

늦깎이 나이에 변변치 못한 영어 실력으로 유학을 떠난 4년 6개월을 지내보니 세상에 못 할 게 없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런 자신감은 이후 내 모든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내가 유학을 한 표면적인 이유는 메이크업 이론을 확립하고 내 이름을 내건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전문성을 갖추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은 이런 이유보다 ‘그냥 하고 싶다’ 는 마음이 컸다. 유학을 하고 싶은 마음이, 미국으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렇게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니 내가 생각지도 못한 위치에 서 있었다. 전 세계가 내 메이크업 철학과 이론에 귀 기울이고, K뷰티를 선도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인정해주었다. 유학 전에는 ‘정샘물’ 이라는 세 글자가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인생 로드맵에 찍힌 오랜 꿈을 실현했을 뿐인데, 이 도전이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나는 내가 얼마나 더 발전할지 너무너무 기대돼

내가 유학이라는 쉬지 않은 일에 도전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나의 한계는 오직 나만이 정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유학을 고민할 때 주변에서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네가 없으면 사업은 어떻게 되겠느냐, 그까짓 순수미술 배고프기만 하지 배워서 뭐하느냐, 그 나이에 혼자 타지에 나가 왜 사서 고생하려고 하느냐, 심지어 혼자 남을 남편이 불쌍하지도 않느냐’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슬슬 오기가 생겼다. 왜 내 한계를 자기들이 나서서 결정하지? ‘그냥 나 좀 내버려두세요. 내 한계는 내가 알아서 결정하게 해주세요.’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내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들과의 연락을 모두 끊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과 억지로 인연을 이어갈 이유가 없었다. 대신 내게 긍정적인 기운을 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남편을 비롯해 많은 친구들이 유학을 떠나려는 나를 축하해주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어디 안 가고 기다리겠다는 말도 고마웠지만, 정말 눈물 나게 감동적이었던 말은 따로 있었다. “나는 네가 유학을 통해 얼마나 더 발전할지 너무너무 기대돼.”

유학 생활 도중에 가끔 지치고 힘들 때, 피곤할 때, 누구 말마따나 괜히 유학을 와 사서 고생인가 싶을 때, 이 말 한마디를 떠올리면 기운이 났다. 누군가 나만을 위해 차려준 따뜻한 밥 한끼를 먹은 것처럼 든든했다. 힘든 도전일수록 주변에 이런 치어리더 같은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내가 아무리 강하고 심지가 굳어도 혼자서는 힘들다. 나는 믿어준 이들이 있었기에 나는 무사히 유학이라는 도전을 마치고 커리어의 대전환기를 맞을 수 있었다. 그러니 나 역시 도전하는 당신을 응원한다. 나는 당신이 새로운 도전을 통해 얼마나 더 발전할지 너무너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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