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역인문학의 시선』은 바다를 통해 문화와 언어, 사람의 교류를 탐구하는 인문서입니다.

해양을 단순한 경계가 아닌 소통의 공간으로 바라보며, 해역을 중심으로 한 언어의 흐름을 분석합니다.

고구마, 농어 같은 일상적 소재를 통해 물질과 명칭의 이동사를 살펴봅니다.

인천, 샤먼, 니가타 등 개항장 도시들의 언어문화 비교도 흥미롭게 다뤄집니다.

해양인식 조사와 교육의 방향까지 제시하며, 지속 가능한 해양 문화를 위한 실천적 제안을 담고 있습니다.

1972년 출생. 전주대학교 일어교육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 도쿄(東京)외국어대학 석사과정을 거쳐 도호쿠(東北)대학 문학연구과 박사과정을 졸업하였다.

저서로는 일본에서 출판된 『일본어 변이론의 현재』(공저, 2024), 『일본어 어휘로의 어프로치』(공저, 2015), 『외래어 연구의 신전개』(공저, 2012)가 있다. 국내에서는 『바다를 건넌 물건들 I, II』(공저, 2022, 2023), 『바다를 건넌 사람들 I』(공저, 2021), 『동북아해역과 인문학』(공저, 2020), 『동북아해역과 인문네트워크』(공저, 2019), 『소통과 불통의 한일 간 커뮤니케이션』(공저, 2018) 등이 있다.

그리고 역서로는 『경제언어학-언어, 방언, 경어』(공역, 2015)이 있다.

현재 국립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HK조교수(일본어학, 사회언어학, 언어지리학 전공)로 재직 중이고, 국립국어원 공공용어 번역 표준화 위원회 일본어 자문위원, 한국방언학회 연구이사이며, 부산교통방송(TBN) 부산사투리 ‘배아봅시데이’ 코너에도 출연하고 있다.

책을 펴내며

서장 | 해역인문학의 시작

1부 이론으로서 해역인문학

1장 해역언어학의 개념과 정의

2장 해역인문학의 학문적 자리매김

2부 자료로서 해역인문학

3장 기록 속에서 본 해역 언어의 흔적

4장 현장에서의 해역 언어

5장 해역을 따라 흐르는 사투리

6장 전쟁 속에서 피어난 음식문화: 장소성과 시대성의 융합

7장 물고기 이름을 통해 본 해역언어학

3부 문화로서 해역인문학

8장 동북아해역과 언어문화

9장 해역 위의 언어풍경: 변천과 현재

4부 해역인문학의 미래

10장 의식조사를 통해 본 해역인문학의 현재와 미래 가능성

11장 지속 가능한 해역인문학의 발전 전략

종장 | 해역인문학의 미래를 향한 제언

저자 후기

참고문헌

찾아보기

땅은 경계를 나누지만, 바다는 사람을 이어왔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에서 펼쳐진 이 푸른 장(場)은 단순한 수역이 아닌 삶의 통로였다. 조선과 일본, 중국의 해안선은 수천 년 동안 문물과 언어, 식물과 사람을 실어나르며 ‘말 없는 대화’를 이어왔다. 최근 등장한 ‘해역인문학’은 바로 이 바다를 매개로 하는 인간 문화의 흐름을 읽어내는 시도이다.

전통적으로 인문학은 땅과 국경을 중심으로 문화를 이해해 왔다. 그러나 해역인문학은 이 지리적 상식을 뒤집는다. 바다는 단절이 아니라 연결의 공간이며, 문화가 스며드는 통로다. 국가 중심의 역사 해석에서 벗어나 바다라는 유동적 공간을 중심에 놓는 이 접근은, 인문학을 보다 역동적이고 열린 관점으로 확장시킨다.

예컨대 고구마 하나만 보더라도, 그 이름의 여정은 대륙을 가로지른다. 원산지는 중남미지만, 유럽을 거쳐 아시아에 전파되며 각 지역의 언어와 만나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한자어 ‘감저(甘藷)’는 한국, 일본, 중국에서 공통적으로 쓰였지만, 한국에서는 ‘감자’와의 발음 충돌을 피해 ‘고구마’라는 이름으로 안착했다. 흥미롭게도 이 단어는 일본 방언의 ‘효행 고구마(コウコウイモ)’에서 유래했다. 이 작은 변화 속에는 문화 간 접촉과 언어의 혼종성이 녹아 있다.

해역을 따라 이동하는 것은 물자나 사람만이 아니다. 이름도 함께 떠돌며 정착하고 변형된다. 예를 들어 작은 농어를 한국에서는 지역에 따라 ‘껄더기’, ‘깔대기’, ‘보껄더기’ 등으로 부른다. 일본에서는 같은 물고기를 성장 단계에 따라 ‘세이고’, ‘훗코’, ‘스즈키’, ‘오타로’로 세분화한다. 이처럼 생명체에 붙은 이름 하나에도 바다를 사이에 둔 언어문화의 미묘한 차이와 공통점이 공존한다.

해양도시는 이러한 언어와 문화의 교차점으로 기능해왔다. 개항 이후 세계로 열린 창이 된 인천은, 판잣집이 즐비한 어촌에서 조선 최초의 서양식 호텔 ‘대불호텔’을 품은 국제도시로 변화했다. 이곳의 차이나타운은 청나라 조계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화교 문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중국의 샤먼과 일본의 니가타 역시 해역도시로서의 삶을 오랜 시간 동안 담아왔다. 샤먼은 동남아시아와 유럽 영향을 받은 건축으로 다문화적 풍경을 보여주며, 니가타는 조선인 노동자 학살 사건 같은 비극적 역사까지도 끌어안은 바다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오늘날 거리의 간판, 항구의 표지판, 어민의 방언은 해역 언어의 흔적이자 생생한 자료이다. 언어경관(Linguistic Landscape) 분석법은 이러한 물리적 텍스트들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 접촉의 흔적을 추적한다. 육지의 언어와 바다의 언어는 다르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한다. 바다 위에서 탄생한 언어는 전통적 분류의 경계를 넘어선다. 이는 언어학이 아니라 문화의 움직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해양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국내의 해양인식 조사를 종합한 ‘부경해양지수’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해양교육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현재 교육 수준에는 불만족을 표했다. 이는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바다와의 관계를 체험적으로 형성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신호로 읽을 수 있다. 즉, 해양을 이해하는 일은 해양을 ‘경험’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해역인문학은 단지 바다를 연구하는 새로운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본 인간들의 감정, 언어, 기억, 이름의 잔해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과정이다. 해역은 군사적 전략지이자 생존의 터전이었으며, 지금은 국제 협력과 기후위기 대응의 최전선이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이 공간은, 우리가 물러설 수 없는 문명의 해안선이기도 하다.

고요한 물결 아래 숨은 언어의 움직임은 우리에게 말한다. 바다는 잊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읽을 수 있느냐가 문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