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청 도서요약

페미니즘은 강의실이 아니라 작업장에서 다시 태어납니다. 그곳에서 땀과 언어로 싸워온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하나의 사상으로 자라났는지를 보여줍니다.

작업장의 페미니즘, 산업사회 속 여성 주체의 재구성

산업 공간의 젠더 구조

『작업장의 페미니즘』은 산업 현장을 젠더 권력의 구조로 바라본다. 철도, 자동차, 건설과 같은 중후장대한 사업장에서 여성은 늘 주변에 위치해왔다. 저자는 “안전모에 작업화, 커다란 공구를 든 여성 노동자를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지만 철도와 자동차, 건설 대형사업장에 이런 여성 노동자들이 소수 존재한다”고 말한다.

노동의 세계에서 여성은 통계적으로 소수이며, 문화적으로는 예외로 존재한다. 작업장은 생산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차별의 질서가 반복되는 공간이다. 여성은 노동력으로서 필요하지만, 언제나 남성의 체계 안에 놓인다. 그 체계는 여성의 능력보다 ‘성별에 맞는 일’이라는 규범을 우선시한다.

현장의 언어는 여성에게 침묵을 요구하고, 침묵은 곧 생존의 기술이 된다. 그러나 침묵이 길어질수록, 그 속에서 자각이 자란다. ‘작업장의 페미니즘’은 바로 그 자각의 이름이다.

위기의 시대, 되풀이되는 퇴출의 역사

한국 사회의 경제 위기에서 여성은 언제나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었다.

“IMF 이전부터 단순노무직, 판매, 서비스업에 주로 종사했던 여성들은 IMF 경제 위기와 2008년의 경제 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 증가한 ‘나쁜 일자리’에 주로 고용되어 일하다가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었다.”

위기와 구조조정은 자본의 논리로 설명되지만, 실제로는 젠더의 문제이기도 하다. 불황의 시기마다 여성의 노동은 불필요한 비용으로 간주되었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기업은 가장 취약한 고리를 끊어냈고, 그 고리의 끝에는 늘 여성이 있었다.

“코로나19 위기 국면에 처하자 여성 노동자는 셧다운된 사회와 시장을 대신하여 돌봄노동을 떠맡아 가장 먼저 가정으로 되돌아가거나 실업, 해고 상태에 놓였다.”

사회가 멈출 때, 여성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생산의 공간이 멈추면, 여성은 재생산의 공간으로 호출된다. 돌봄과 가족은 위기 때마다 여성의 이름으로 재배치되는 의무였다.

여성은 그 반복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되었다.

“여성 노동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인식했고, 성별 분업을 전제하는 체제에서 여성 노동이 어떻게 착취당하고 가격이 정해지는지 확인했다.”

배제의 경험이 인식으로, 인식이 학습으로 이어졌다. 그 학습이 곧 페미니즘의 시작이었다.

노동조합, 또 하나의 질서

노동조합은 평등을 주장하는 조직이지만, 내부 구조는 사회의 위계를 그대로 반영한다.

“남초 사업장의 여성활동가는 매우 드문 존재이다. 노동조합 간부는 압도적으로 남성이 다수다. 여성에게는 주어진 역할도 제한적이고 극단적으로는 여성이 노동조합 안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아도 노동조합은 ‘정상적’으로 유지된다.”

노동조합 안에서 여성은 보조의 위치에 놓인다. 회의는 남성의 언어로 진행되고, 여성의 참여는 예외로 간주된다. 노동조합이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면, 그 내부의 젠더 질서는 여전히 비민주적이다. 여성의 존재가 사라져도 조직이 흔들리지 않는 구조, 그것이 노동의 또 다른 모순이다.

“여성활동가는 의식적으로 노동조합으로부터 자율성과 독자성을 확보해야 한다.”

여성의 자율성은 조직 분리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부의 균형을 되찾기 위한 시도이며, 민주주의의 완성을 향한 과정이다. 노동조합 안에서의 페미니즘은 투쟁이 아니라 조정의 언어로 작동한다.

여성성과 계급의 교차

여성 노동자는 두 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다. 성별로서의 여성, 그리고 계급으로서의 노동자다.

“여성 노동자의 결연한 역사적 투쟁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노동자, 노동자로서의 여성이라는 이중적 존재이다.”

이중의 존재는 이중의 억압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품는다. 여성은 계급의 내부에서 성별의 차별을 경험하고, 성별의 내부에서 계급의 차별을 경험한다. 그 경계 위에서 두 세계를 동시에 인식하게 된다.

“여성의 이중적 정체성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여성 노동자는 여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고 노동자로서의 여성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정체성의 확립은 선언이 아니라 구조의 이해다. 여성은 노동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노동자는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 그 교차점에서 탄생하는 언어가 바로 ‘작업장의 페미니즘’이다.

조직 내부의 변화

여성활동가는 조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내부의 동력으로 제시된다.

“여성활동가 실천의 목표는 여성을 노동조합 안에 양적으로만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수적 확대는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 변화는 언어와 절차, 사고의 틀을 다시 세울 때 가능하다.

“현실적으로 여성활동가들이 현장에서 노동조합이라는 토대 없이 조직적으로 활동하고 실천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여성은 조직 안에서 싸우면서 동시에 조직을 유지해야 한다. 분리보다 재구성이 중요하다. 남성 중심 조직의 내적 관성을 변화시키는 주체는 내부에서 성장한 소수의 여성들이다.

‘페미니즘 리부트’는 새로운 운동이 아니라, 기존의 운동 언어를 다시 쓰는 과정이다. 노동의 언어와 젠더의 언어가 만나 새로운 문법을 만든다. 노동의 문제를 성평등의 문제로, 성평등의 문제를 노동의 문제로 다시 읽는 과정이 그 핵심이다.

위기의 학습, 인식의 전환

“여성 노동자는 더 이상 위기 때마다 속수무책으로 희생당하던 일을 다시 또 겪지는 않을 것이다.”

위기의 반복은 여성에게 패배의 역사가 아니라 학습의 시간이 되었다. 노동의 구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상황에서 여성의 일이 먼저 잘려나가는지를 알게 된 뒤, 그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았다.

“위기 상황마다 반복되었던 여성 노동자 퇴출과 배제, 독박의 경험 속에서 여성 노동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인식했고, 성별 분업을 전제하는 체제에서 여성 노동이 어떻게 착취당하고 가격이 정해지는지 확인했다.”

인식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구조를 안다는 것은 그 안에서 움직이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여성 노동자는 피해의 언어 대신 분석의 언어를 얻었다.

“그것은 페미니즘 학습과 페미니스트로의 정체화를 통해서 가능했다.”

학습은 조직의 틀을 넘어선다. 일터의 일상적 대화와 경험 속에서 여성은 스스로의 언어를 형성했다. 그 언어는 이론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다.

자율성과 재생산의 조건

“노동조합의 관료주의 혁신, 가부장성 타파, 위계와 서열을 벗어난 수평적 구조의 추구, 기득권의 포기 등 현재 노동조합이 보여주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극복해나갈 주체는 바로 여성활동가들이다.”

여성의 실천은 단순한 참여를 넘어, 조직의 윤리를 재구성하는 행위로 제시된다.

조직의 혁신은 제도보다 관계의 문제다. 신뢰와 감정노동, 돌봄의 가치가 인정될 때 비로소 조직은 수평성을 가진다. 여성활동가들은 이 새로운 감수성을 조직 내부에 확산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여성, 여성의 길잡이”라는 말은 단순한 연대가 아니라 지식의 공유를 의미한다. 여성활동가가 서로의 경험을 학습하고, 그것을 제도화할 때 조직의 재생산이 가능해진다. 지속 가능한 활동이란 경제적 안정이 아니라 관계적 지속성의 문제로 정의된다.

노동과 여성의 재인식

“여성과 노동이 함께 재인식되어야 한다.”

노동을 젠더화하고, 젠더를 노동의 맥락 안에서 다시 읽는 일은 현대 사회의 구조적 이해를 새롭게 만든다. 여성의 노동은 단지 경제적 활동이 아니라 사회적 질서의 반영이다.

작업장은 인간의 손이 움직이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사회의 규범이 작동하는 장소다. 그 속에서 여성의 몸은 생산의 수단이자 상징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 그 몸이 스스로의 언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작업장의 페미니즘』이 보여주는 변화는 거창하지 않다. 그것은 한 명의 여성 노동자가 스스로의 경험을 언어화하는 순간에 이미 시작된다. 말하지 못하던 사람이 말하기 시작할 때, 사회의 구조는 미세하게 움직인다.

“여성 노동자는 더 이상 위기 때마다 희생당하지 않는다”는 말은 선언이 아니라 방향이다. 변화는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반복되는 시도의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