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허문 21세기 신고전!!

누가 누구를 길들이고 이용하는가?

5월 어느 날, 꿀벌들이 윙윙거리는 사과나무 옆에서 씨감자를 심던 폴란은 이런 생각을 했다. 부지런히 사과 꽃 여기저기를 들락거리며 사과 유전자를 퍼뜨리고 있는 저 벌들과 정원의 주인이라는 자부심에 가득 차서 씨감자를 땅에 묻고 있는 나는 뭐가 다를까? 먹이를 얻는 대가로 특정 식물 개체의 유전자를 퍼뜨려주는 꿀벌과 나는 같은 처지가 아닐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익숙하던 주변 풍경이 일순 새롭게 보였다. 지금껏 욕망의 객체로만 여겨온 식물들이 인간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영리한 생명체일 수 있다는 깨달음이 찾아온 것이다.

이 책에서 폴란은 사과와 튤립, 대마초와 감자를 통해 식물과 인간이 함께해온 기나긴 공진화 역사를 추적한다. 인간이 ‘길들인’ 대표 작물들이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그 어떤 식물 종보다 능동적으로 인간을 이용해온 존재들이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변덕에 맞춰 변신을 거듭한 대가로 그들이 얻은 것은 생존과 번성, 그리고 각자의 황금시대였다. 얼마나 교묘하고 영리한 전략인가.

달콤함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매개로 진화하며 전 세계로 퍼진 사과. 인류의 탐미 본능을 자극해서 한 나라의 경제와 문화를 주무르는 주인공이 되었던 튤립. 향정신성 물질로 인간의 의식작용에 관여하며 온갖 박해 속에서도 끊임없이 잡종을 탄생시키는 대마초. 그리고 세계인의 주요 식량으로 부상한 후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 욕망의 투사물이 된 감자. 자신의 텃밭에서 카자흐스탄 산속, 안데스산맥과 아일랜드를 거쳐 네덜란드와 미 중서부를 분주히 오가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폴란의 글은 ‘눈이 부실 만큼 매혹적인’ 재미와 통찰로 가득하다. 식물학과 인류학, 철학과 문학, 지리학과 생명공학을 넘나들며 식물과 인류가 함께한 기나긴 역사를 들려주는 이야기는 수많은 독자로 하여금 문명과 자연, 욕망과 윤리, 과거와 미래를 보는 관점을 재조정하고 시야를 확장하게 도왔다.

마이클 폴란 Michael Pollan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저술가이자 학자, 환경운동가. 30년 넘는 시간 동안 인간 문명과 자연 세계가 교차하는 지점에 관해 탐구하며 글을 쓰고 있다. 그가 낸 책 8권 중 무려 6권이 〈뉴욕타임스〉와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1991년 첫 책 《세컨 네이처Second Nature》로 ‘뉴 비전스’ 상을 수상하며 베스트셀러 저자로 이름을 알린 폴란은 이 책 《욕망하는 식물》이 미국 서점연합회와 아마존닷컴이 각각 선정하는 ‘올해의 책’에 오르며 21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저술가로 부상했다. 뒤이어 출간한 《잡식동물의 딜레마The Omnivore’s Dilemma》가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선정한 2006년 10대 도서로 선정되는 등 폴란은 내는 책마다 화제를 모으며 여러 개의 상을 받았다.

2013년에 출간한 《쿡드Cooked》와 2018년에 출간한 《마음을 바꾸는 방법How to Change Your Mind》은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제작돼 현재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이고, 《음식을 옹호하며In Defense of Food》를 원작으로 제작한 2시간짜리 다큐멘터리가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 최근작으로 《당신의 뇌와 식물This Is Your Mind on Plants》과 《세계가 열리다A World Appears》가 있다.

베팅턴 칼리지와 옥스퍼드대학교,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공부한 폴란은 2003년부터 UC 버클리에 재직하며 저널리즘을 강의하고 있으며 2017년부터 하버드대학교 비소설학 교수이자 르위스 챈 특별 강연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개정판 편집자의 말 8

서장 _ 인간 꿀벌 15

1장 _ 달콤함의 욕망 ㆍ 사과 35

2장 _ 아름다움의 욕망 ㆍ 튤립 117

3장 _ 도취의 욕망 ㆍ 대마초 185

4장 _ 지배의 욕망 ㆍ 감자 273

에필로그 351

인류는 오랜 시간 정원에 파종할 씨앗을 고르고 식물을 가꾸는 행위를 절대적인 통제권이라 여겨왔다. 하지만 만약 그 주체가 뒤바뀌어, 식물들이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감정을 역이용해 스스로의 생존과 번성을 보장받는 영리한 주체라면 어떨까? 마치 꿀벌이 꽃의 유전자를 퍼뜨리듯, 인간이 식물의 생존을 위한 '인간꿀벌'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는 생각은 정원과 문명 전체를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만든다. 식물과 인간이 단순히 '길들임'과 '길들여짐'의 관계가 아닌, 서로의 욕망에 깊숙하고 복잡하게 뒤엉킨 '공진화'의 역사를 추적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다.

달콤함은 혀에서 시작되는 욕망이지만, 이 욕망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완벽함’이라는 단어를 대신할 만큼 원초적인 끌림을 가진다. 18세기의 미국에서는 설탕이 귀했다. 카리브 해 연안에 사탕수수 농장이 들어선 뒤에도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설탕은 쉽게 얻을 수 없는 사치품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대부분 사람들이 단맛에 대한 갈증을 주로 과일의 육즙에서 채웠으며, 미국에서 그 과일은 바로 사과였다.

이처럼 귀하고도 필수적인 달콤함을 가장 자유분방하게 퍼뜨린 인물이 있었다. 속을 파낸 한 쌍의 통나무를 엮은 것으로 카누와 오토바이의 사이드카를 합쳐놓은 듯한 모양이었다. 통나무 하나에는 서른 살쯤으로 보이는 바싹 마른 남자가 비스듬하게 앉아 있었다. 남자는 커피 자루를 윗옷 삼아, 양철 냄비를 모자 삼아 쓰고 있었다. 제퍼슨 카운티의 남자가 우연히 이 풍경을 보고 기록을 남겼다. 기록에 따르면 배에 탄 이 남자는 세상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물 흐르는 대로 배를 맡기고 그저 평온하게 낮잠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속을 파낸 통나무, 즉 그 배의 사이드카에는 어떤 식물의 씨가 가득 실려 있었다. 이 인물, 조니 애플시드(존 채프먼)는 사과나무를 접목하지 않고 씨앗 그대로 심어 유전적 다양성을 폭발적으로 확장했다. 나는 이제야 내가 기대하던 채프먼의 모습을 선명하게 본 것 같았다. 조니 애플시드는 기독교 성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리고 나는 그를 기독교 성인으로 추앙했기 때문에 그가 신화 속에서 상징했던 수많은 내용들을 놓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바로 미국의 디오니소스라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분명히 깨달았다. 씨앗의 무작위성은 야생의 아우성, 즉 '디오니소스적 성향'이었고, 이는 사과를 서부 개척의 증표이자 정복의 첨병으로 만드는 강력한 전략이었다.

아름다움과 도취를 향한 인간의 욕망은 식물의 유전자에 파격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광풍을 일으켰던 튤립은 그 완벽한 형식미 때문에 ‘디오니소스가 주재하는 정원에 핀 아폴로의 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사람들을 열광시킨 것은 오히려 질서정연함에서 벗어난 '터진 튤립'이었다. 이 화려하고 파격적인 모양은 사실 알뿌리 바이러스 때문에 생긴 변칙이었는데, 그 아름다움이 커다란 저택 한 채와 맞먹는 가격에 거래될 정도였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실체를 알게 되자 인간의 변덕스러운 욕망은 튤립을 정원에서 몰아냈고, 튤립은 결국 평면적이고 소박한 꽃이 되어버렸다.

한편, 처음엔 평범한 옷감 재료였던 대마초는 도취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식물로 변모했다. 이 금단의 식물은 레이건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을 피해 실내 정원으로 숨어들었고, 과도한 빛과 이산화탄소 환경에서 악착같이 자신을 변화시켰다. 놀랍게도 그 결과는 향정신성 물질 THC(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 함량이 2~3%에서 20% 이상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품종의 탄생이었다. 대마초는 인간의 뇌 속에서 향정신성 물질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카나비노이드'를 분비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식물이 수동적인 욕망의 수용자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 작용에 직접 관여해온 주체임을 증명했다.

인간이 식물에 대해 가진 가장 큰 욕망은 '지배'다. 감자는 이 지배욕의 결과가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선명한 사례다. 17세기 아일랜드에서 감자는 척박한 토양에서도 풍성하게 결실을 맺는 신의 축복이었고, 불과 100년 만에 인구를 두 배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며 '감자의 왕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현대 고도화된 자본주의는 맥도널드의 프렌치프라이처럼 단일 품종인 ‘러셋 버뱅크’의 재배를 강요했다. 계속된 단일 재배는 감자를 자연 앞에 취약하게 만들었고, 인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살충성분을 생성하도록 유전자가 조작된 ‘뉴 리프’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냈다. 이는 진화에 대한 식물들의 발언권마저 박탈한 행위다. 그러나 단 한 종류의 잎마름병으로 모든 감자가 썩어나갔던 17세기 아일랜드의 감자 기근이 증명하듯, 잘못된 지배 욕망은 식물과 인간 모두의 미래를 위협하는 부메랑이 될 것이다.

나는 제네바 과수원에서 야생 사과 몇 개를 집으로 가지고왔다. 내 눈을 사로잡았던 빨갛고 큰 사과 두 개와 올리브 열매만한 작고 둥근 사과 하나였다. 작은 사과는 책상 위에 올려두었는데, 몇 주가 지나자 쭈글쭈글해졌다. 나는 이 사과를 잘라서 씨를 긁어냈다. 반들반들한 광택이 나는 다섯 개의 갈색 씨 안에는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신비로운 힘이 담겨 있을 터였다. 이 씨에서 자란 사과나무가 어떤 사과를 맺을지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정원은 인간의 애초 설계와 질서가 사라진 '녹색의 쑥대밭'이 되었지만, 이 야생의 무질서야말로 식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진화를 계속하고 인간에게 새로운 열매를 선사하는 축제의 장이다.

식물들은 인간의 달콤함, 아름다움, 도취, 지배라는 네 가지 근원적 욕망을 역이용하여 스스로의 생존과 번성을 도모하는 영리한 진화 전략의 주체였다. 사과, 튤립, 대마초, 감자 이야기는 인간이 식물을 통제한다는 통념을 깨고, 두 종의 욕망이 얽힌 복잡하고 공진화적인 역사를 증명한다. 인간의 변덕스러운 욕망과 과도한 통제는 식물의 유전자를 변화시키는 동시에, 때로는 아일랜드 기근과 같은 비극을 초래하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이 에세이는 인간의 네 가지 원초적 욕망을 사과, 튤립, 대마초, 감자라는 네 가지 식물의 역사를 통해 해체하고 분석하는 독특한 시각을 제공합니다. 마이클 폴란은 과학, 역사, 문학을 넘나드는 지적 글쓰기로 식물들이 인간을 어떻게 이용해왔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며, 독자로 하여금 정원과 식탁 위의 모든 생명체를 새롭게 바라보게 합니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오만을 버리고, 복잡하게 얽힌 공진화의 관계 속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모색해야 한다는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