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청 도서요약

거대 서사로서 서양 문명이 지닌 역사적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 서양의 기원을 검증함으로써 문화적으로 순수하고 온전한 선형적 족보라는 환상을 벗겨 낼 것이다. 첫 두 인물은 서양의 출생지라 여겨지는 고전 세계 출신으로 고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 모두 배타적인 서양 혹은 유럽 정체성을 지니지 않았음을 밝힐 것이다.

만들어진 서양

만들어진 서양: 문명의 경계를 다시 그리다

우리는 서양사를 단일하고 선형적인 이야기로 배워왔다. 고대 그리스에서 로마로, 르네상스, 계몽주의, 산업 혁명과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익숙한 줄기. 이 연대기는 곧 문명의 기준이 되었고, '서양'이라는 이름은 진보와 합리성, 보편의 가치를 상징하는 듯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서양 문명사는 아무런 비판 없이 우리 혹은 모두의 주요한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아는 서양은 순수하고 온전한 하나의 계보를 지닌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서양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깊이 탐구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역사적 맥락과 권력 관계를 밝히는 데서 시작한다.

서양 문명의 기원 재해석

서양 문명이라는 거대 서사는 고대 그리스 세계를 서양의 기원으로 간주하지만 헤로도토스, 호메로스, 투키디데스가 묘사한 고대 그리스 세계는 그와 달리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세계였다. 고대 그리스는 지중해와 근동 지역의 다양한 문화와 끊임없이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았다. 페리클레스와 같은 아테네 정치가들이 장려한 세계관은 제국주의적 팽창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우리'와 '그들' 사이의 크나큰 차이에 의해 세계가 갈라졌다는 시각을 고수했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아테네의 패권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지만, 실제 고대 그리스 사회는 훨씬 더 복합적이고 개방적이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인의 후손이자 그들로부터 서양 문명의 계보를 이었다고 여겨진 자들은 정작 이러한 시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서양 문명이 지닌 역사적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 서양의 기원을 검증함으로써 문화적으로 순수하고 온전한 선형적 족보라는 환상을 벗겨 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 모두 배타적인 서양 혹은 유럽 정체성을 지니지 않았음을 밝힌다. 그들은 자신들을 특정 지역이나 혈통에 묶인 존재로 여기기보다는, 광범위한 지중해 세계의 일부이자 다양한 문화가 혼재된 환경 속에서 발전한 문명의 주체로 인식했다.

고대 세계의 다채로운 계승자들

중세기는 사그라진 고대 그리스-로마라는 횃불을 유럽에서 조심스럽게 보존하여 후대에 다시 빛을 발하기를 기다린 암흑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중세는 고대 유산이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 흡수, 발전된 역동적인 시기였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별개의 존재로 생각되었고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유산을 차지하고 있었다. 서양 문명이라는 서사에서는 우리가 서양과 밀접히 관련된 지역으로 여기는 중유럽과 서유럽이 고전기 문화의 주요한 계승자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고대 로마와의 연속성은 유지되었던 반면 고대 그리스에 대한 관심이나 접촉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유럽은 로마법과 라틴어 전통을 계승했지만, 그리스어 문헌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은 제한적이었다.

반대로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에서는 로마의 정치, 문화, 혈통상의 상속이 명백히 주장되었고 고대 그리스와의 지적인 접점 역시 지속되었다. 비잔티움은 동로마 제국의 후예로서 로마의 법률, 행정 체계, 예술적 전통을 계승하며 고대 유산을 보존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그리스어가 공용어였기에 고대 그리스 철학, 과학,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이 비잔티움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보존되었으며, 이는 훗날 서유럽으로 다시 유입되어 르네상스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서양 문명이라는 서사에서 누락되곤 하는 이슬람 세계에서 사람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고대 그리스의 유산 상속을 주장했고 지적 전통이나 문화적 연속성뿐만 아니라 신화적 족보를 그 근거로 삼았다. 이슬람 학자들은 그리스어 문헌을 아랍어로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 보존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수학, 천문학, 의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예를 들어, 알-콰리즈미는 대수학의 기초를 다졌고, 이븐 시나는 의학 백과사전을 저술하여 유럽 의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학문적 성과는 훗날 유럽 르네상스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만일 우리가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시작되는 가계도를 그려 본다면 중세기의 이슬람 세계는 가장 굵고 무성한 가지일 것이다. 중세는 결코 암흑기가 아니었으며, 다양한 문명이 고대 유산을 각자의 방식으로 포용하고 재해석하며 발전시켰다. 이는 문명의 계승이 특정 지역이나 집단에 국한되지 않고, 상호작용과 교류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서양' 개념의 탄생과 인종화

거대 서사가 16세기에 잉태되어 17세기에 탄생했다면 그것이 성숙하는 데는 18세기 후반까지 기다려야 했다. 서양 문명이라는 이야기가 대중성을 얻고 새로운 국민 국가의 정치적 수사에서 주류로 들어온 것은 이 무렵의 일이었다. 이 시기,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다른 문명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서양'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는 민족주의의 부상과 식민주의 팽창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있었다. 부분적으로는 그것이 정치적 유용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새로운 미합중국은 문명의 이동에 근거해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 유럽 문명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신대륙에서 새로운 문명을 꽃피웠다는 주장은 독립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었다. 이는 '문명화 사명'과 같은 개념으로 발전하여 서구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용하기도 했다.

18세기 후반부는 서양 문명이 인종화된 시기이기도 했다. 계몽주의 시대의 이성적 분류 체계가 인간에게 적용되면서 과학적 인종주의가 대두했고, 인종 간의 위계가 설정되었다. 이는 식민주의와 노예제를 정당화하는 데 악용되었다. 비서양인 인구 집단에 대한 억압은 자연적이고 생물학적인 분류에 따른 범주화뿐만 아니라 서양 문명의 문화유산에 온전히 참여할 능력의 부재를 통해 정당화되었다. '서양 문명'의 계승자로 백인 유럽인이 선택되고, 다른 인종들은 그 문명의 수혜자가 될 수 없거나 열등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아프리카인들은 노예로, 아시아인들은 정복의 대상으로 여겨지며 서양 문명의 발전에서 배제되거나 종속되는 위치에 놓였다. 지금의 인종 분류는 과거의 문화적 족보의 지도를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다. '서양'이라는 개념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재구성되고 해석되며 하나의 권위로 정착했고, 이 과정에서 인종적 배제가 이루어졌다. 이는 문명이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특정한 목적을 위해 구성된 사회적 산물임을 시사한다.

문명의 전파성과 유동성

전파성과 유동성은 어떤 방식으로든 서양이라는 개념과 관련하여 문명의 계승을 이야기하는 모든 거대 서사의 핵심에 놓여 있다. 이 모든 거대 서사에서 문명은 움직인다. 문명은 사람들 사이를 오가기에 어떤 단일한 인구 집단도 그것에 대한 독점권을 주장할 수 없다. 문명은 장소 사이를 왕래하기에 어떤 단일한 장소에 배타적으로 속해 있지 않다. 문명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지식, 기술, 사상, 예술 등이 끊임없이 교류하고 융합하며 발전하는 과정이다. 실로 우리가 서양 문명을 '금덩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금덩이란 문화적 전파성과 유동성의 원칙이 될 것이다. 이 '금덩이'는 특정 지역이나 민족의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지적 유산이 상호작용하며 축적된 결과물이라는 의미다. 이 핵심 원칙을 바탕으로 서양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나타나야 하고 서양사에 대한 새로운 거대 서사를 써야 한다. 문명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화하며 상호작용하는 유동적인 개념이다. 이러한 이해는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며, 미래의 문명 발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 핵심 메시지

우리가 보편적이라 여겨온 서양 문명사는 사실 특정 시기와 정치적 필요에 의해 구성된 서사이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유산은 유럽뿐 아니라 이슬람 등 다양한 문명에 의해 계승되고 재해석되었다. 문명은 단일한 혈통이나 지역에 묶이지 않는 유동적이고 전파 가능한 개념임을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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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양 문명이라는 거대한 이야기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 우리가 가진 인식의 기반을 흔든다. 서양을 맹목적으로 흠모하거나 반발하는 대신,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올바른 시선으로 세계를 읽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통해 만들어진 서양의 민낯을 마주하고 새로운 문명의 경계를 그려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