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청 도서요약

설탕을 향한 욕망이 유럽 제국주의 팽창과 맞물리며 전 세계로 퍼져 나간 파란만장한 여정을 따라간다. 또한 설탕 산업이 촉발한 노예제로 인해 잔혹하게 희생된 원주민과 흑인 노예의 역사를 조망하며, 설탕의 달콤한 맛 뒤에 드리운 인류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러낸다.

설탕 전쟁

달콤함 뒤에 숨겨진 민족 이동의 아픔

설탕은 한때 유럽 귀족들의 식탁을 장식하는 사치품이었다. 그 달콤함은 국경과 시대를 초월하여 엄청난 역사적 변화를 초래한다. 한 서양 귀부인이 ‘차이’ 혹은 ‘차아’라고 불리는 동방의 신비로운 음료에 대해 나누던 대화는, 차 한 잔이 가져올 미래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공주께서 마시는 저 음료, 무엇인지 아시나요? 아침부터 줄곧 저것만 드시더군요.” “‘차이’라고도 하고, ‘차아’라고도 부른다네요. 동방의 어딘가에서 왔다던데, ‘인디아’인지 ‘차이나’인지 확실하진 않지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 잔이며 주전자가 정말 예술이에요. 어제는 새하얀 것이었는데 오늘은 아름다운 꽃무늬가 그려져 있네요. 처음 보는 아름다운 문양이에요.”라는 감탄이 이어진다. “도대체 어떤 맛일까요, 저 ‘차이’라는 것은.” (중략)

포츠머스의 귀부인들이 궁금해하던 그 음료가 나중에 ‘티(tea)’라고 불리며 영국 문화의 한 뿌리가 될 줄을,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만들 실마리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차에 넣은 설탕에 아프리카인과 중국인, 인도인, 좀 더 이후에는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의 ‘민족 이동’과 아픔이 어려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인 대부분은 영국인, 프랑스인, 포르투갈인, 네덜란드인들이 운영하는 사탕수수밭에 팔려 왔던 노예들의 후손이다. 이처럼 설탕은 단순한 감미료를 넘어 인류의 고난과 이동이 얽힌 복잡한 역사의 상징이 된다.

문명의 발명과 제국의 수탈

설탕은 그 뿌리를 고대 인도에서 찾을 수 있는 '발명품'이었다. 설탕을 뜻하는 영어 ‘sugar’와 사탕을 가리키는 ‘candy’도 고대 인도로부터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설탕을 샤르카라(sharkara)라고 불렀다.

샤르카라는 본래 자갈이나 모래를 뜻하는데, 사탕수수즙을 끓여 정제한 설탕이 마치 모래알 같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샤르카라는 페르시아를 거쳐 아라비아어인 슈카르(sukkar)가 되었고 이 영향으로 영어의 ‘슈거(sugar)’가 탄생했다. 또한 ‘설탕 조각’을 산스크리트어로 칸다(khanda)라고 불렀는데, 이로부터 영어의 ‘캔디’가 생겨난 것이다. 설탕은 명실상부 고대 인도인들의 ‘발명품’이었다.

그러나 이 달콤한 발명품은 대항해시대를 맞이하며 유럽 열강의 탐욕을 자극하는 수탈의 도구가 된다. 열강들은 사탕수수 재배에 적합한 기후를 갖춘 카리브해와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플랜테이션을 조성했으며, 이 과정에서 원주민과 흑인 노예들에 대한 잔혹한 착취가 자행되었다.

포르투갈은 내륙 원주민을 노예화하기 위해 더욱 비열한 방법을 사용한다. 현지 관리인들은 내륙 원주민을 ‘합법적으로’ 노예화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했는데, 원주민을 일부러 도발해 분쟁을 일으킨 뒤 그들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이었다. 당시 원주민 사회에는 ‘전투에서 이긴 자가 패배자를 포로로 삼아 부릴 수 있다’는 오랜 전통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이 점을 이용해 패배한 원주민을 노예화한다.

이 밖에도 원주민을 몰래 납치해 광산이나 농장에 팔아 버리거나, 원주민에게 고리대금을 제공한 뒤 갚지 못하면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등 비열하고 야만적인 방식으로 원주민 착취가 이루어졌다.

심지어 브라질에서는 플랜테이션과 금광 개발이 겹치며 노동력 부족이 심화되던 시기, ‘노예 사냥꾼’이라는 직업이 생겼다. 이들은 원주민 사냥을 위해 팀을 꾸려 조직적으로 움직였으며, 노예 사냥을 위해 꾸려진 원정대를 ‘반데이라(bandeira)’라고 불렀다. 반데이라는 포르투갈어로 ‘깃발’이라는 뜻이다. (중략)

원주민에게 우호적이었던 예수회 선교사들과는 달리, 농장주나 광산업자들은 끊임없이 반데이라를 통해 예수회 선교사들이 개척한 내륙 마을의 원주민들을 납치해 노예로 삼았다. 결국 반데이라와 선교사는 마주치는 곳마다 충돌할 수밖에 없는 적대적 관계에 놓인다.

착취 속에서 탄생한 문화와 지워진 업적

설탕 산업은 막대한 인구 이동을 초래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문화적 산물을 낳기도 했다. 럼은 사탕수수즙이 원료인 술로, 카리브해의 대규모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농장에서 일하던 아프리카 노예들이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사탕수수즙으로 몰래 술을 만들어 마셨던 것이다. 곡물이나 과일을 이용해 알코올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인류가 오래도록 공유해 온 지식이었고, 흑인 노예들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중략) 쿠바 사탕수수 농장에서 럼이 탄생했듯, 세계 각지의 술들 또한 삶의 깊은 고단함과 눈물 속에서 빚어졌을지 모른다.

한편, 설탕 무역은 북아메리카의 지형마저 바꿀 정도로 거대했다. 북아메리카 동부 연안 항구에는 미국이 독립하기 이전인 1720년대부터 이미 무역선들이 줄지어 드나들었다. 당시 카리브해 식민지에서는 사탕수수를 재배해 당밀과 설탕을 생산하고 이를 유럽에 판매하며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있었다.

특히 본국의 최대 수입원이었던 바베이도스와 자메이카(영국령), 생도맹그(프랑스령)는 북아메리카 동부 연안에도 설탕을 판매하고 필요한 물품을 공급받았다. 뉴욕항에 드나드는 선박 중 절반이 카리브해에서 온 무역선이었다. 이 무렵 뉴욕에 세워진 가장 큰 건물이 지금도 관광 명소로 유명한 트리니티 교회와 이에 버금가는 규모를 자랑했던 허드슨강 코너에 세워진 설탕 창고였다.

하지만 이 거대한 산업의 성과 뒤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루이지애나에서 설탕 사업에 성공한 보레에게 생도맹그 출신의 자유 흑인 앙투안 모랭(Antoine Morin)이라는 인물이 큰 도움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노예 출신인지 태어날 때부터 자유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모랭은 파리의 유명 대학을 졸업한 뒤 뉴올리언스에서 명성을 얻은 화학자이자 식물학자였다. 모랭은 보레가 인디고 농장에서 사탕수수 농장으로 전환할 당시 설탕 결정화 기술 개발에 결정적 도움을 주었고, 이 기술 혁신 덕분에 보레는 고운 흰 설탕을 성공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레의 손자이자 루이지애나의 역사학자인 샤를 가에르(Charles Gayarré)는 보레 가문의 설탕 산업 연혁을 다룬 책을 쓰며 모랭의 업적을 일부러 기록하지 않았다. 이는 설탕의 역사가 어떻게 승리자의 시각에서 기록되고, 수많은 기여가 지워졌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디아스포라의 궤적과 한인의 발자취

설탕의 역사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강제 이주라는 비극을 낳았지만, 그 후손들은 절망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우사인 볼트, 일레인 톰슨, 세리카 잭슨 등 오늘날 세계 단거리 육상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는 자메이카 선수들의 경기를 보며, 우리는 종종 사탕수수밭에서 혹사당했을 그들의 선조들을 떠올리곤 한다.

해적기(海賊旗)를 나부끼며 바다를 누빈 영국의 프랜시스 드레이크와 두 다리로 트랙 위를 질주하는 자메이카의 육상 선수들, 과연 ‘진짜 영웅’은 누구일까?

카리브해 지역은 인종 구성에서도 설탕 산업의 영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쿠바에도 한때 노예 무역을 통해 백만 명의 아프리카 흑인 노예가 유입되었지만, 그들이 쿠바의 ‘주인’이 되지는 않았다. 가장 최신 자료인 2012년 기준 쿠바의 인종 분포를 살펴보면 백인 64.2퍼센트, 혼혈 인종 26.6퍼센트, 흑인 9.2퍼센트, 아시아계는 1퍼센트 미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티와 자메이카와는 달리 쿠바는 백인과 혼혈 인종 중심의 사회인 것이다. (중략)

1998년 사업차 쿠바 엑스포에 참가했을 때, 피부색이 짙은 흑인은 적고 혼혈이나 백인처럼 보이는 얼굴이 대부분인 사람들을 관찰하며 그 사실을 새삼 체감했다. 이들 속에서, 한국 부스를 찾아온 두 명의 한인계 소녀들과 만난 일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소녀들은 20세기 초 쿠바 사탕수수밭에서 일하기 위해 멕시코를 통해서 이주해 온 한인 여성과 현지인 남성의 후손이었다. 이처럼 설탕 산업은 카리브해를 넘어 20세기 초 하와이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으로 향했던 한인 이민자들의 삶과도 깊이 연결된다.

장인환과 전명운의 스티븐스 저격 사건은 미주 한인들의 독립운동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전역에 산재했던 10여 개의 한인 독립운동 단체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대한인국민회가 창립되었고, 미주 독립운동의 핵심 조직이 된 것이다.

장인환은 당시 32세, 전명운은 겨우 24세였다. 두 사람 모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온 이민 노동자 출신이었다. 두 젊은이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철도 노동자와 어부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 가던 중, 조국의 독립을 향한 뜨거운 가슴을 안고 거사를 감행한 것이다. 사탕수수밭의 노동자였던 이 청년들의 숭고한 희생은 설탕을 향한 열강의 욕망이 만들어낸 고난의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이 남긴 가장 분명하고 굳건한 발자취 중 하나이다.

핵심 메시지

설탕의 달콤함은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적 탐욕을 부추겼으며, 이는 아프리카 노예 무역과 원주민 착취를 동반한 대규모 인류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설탕 산업은 한 국가의 인종 구성과 문화는 물론, 하와이로 이주한 한인 이민자의 독립운동사에까지 깊숙이 관여한 역동적인 세계사의 핵심 동인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는 설탕 한 조각에는 수많은 민족의 고난과 희생, 그리고 억압 속에서도 피어난 저항의 의지가 서려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추천 글

이 책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설탕이라는 물질을 통해 세계사의 어두운 단면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카리브해 사탕수수밭의 잔혹한 노예 착취부터 브라질 '반데이라'의 야만적인 원주민 사냥, 그리고 억압된 민족들의 문화적 저항(럼주)까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특히 하와이 이민을 통한 한민족의 디아스포라와 독립운동까지 설탕 역사와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역사적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