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청 도서요약

탈진실의 시대는 파시스트들과 포퓰리스트들에게는 축복의 시대입니다. 파시스트 지도자들이 어떻게 단순하면서도 혐오로 가득 찬 거짓을 진실로 왜곡하며 대중의 절대적 지지를 끌어냈는지 그 역사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파시스트 거짓말의 역사

신화가 진실을 압도할 때 - 파시스트 거짓말이 구축한 세계의 작동 방식

현대 정치의 가장 큰 균열은 진실이라는 개념이 더 이상 공통의 기반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데서 비롯된다. 거짓 정보가 넘쳐나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서로 완전히 다른 현실을 살고 있다고 느껴지는 지점에서 갈등이 증폭된다.

정치적 신화와 감정의 조작이 사람들의 인식 위에 덧칠되면 합의가 불가능한 세계가 만들어진다. 그 세계 속에서 힘이 사실을 정의하고, 진실의 자리는 점차 사라지게 된다.

“파시스트들이 진실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끔찍한 폭력을 통해 자신들의 거짓말을 현실로 바꿀 때마다 반향을 일으킨다”라는 서술은, 사실을 의미하는 ‘진실’이 어떻게 권력의 도구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허구의 신화가 공동체의 믿음으로 자리 잡는 순간, 현실은 더 이상 객관적 세계가 아니라 권력이 만드는 진실의 무대가 된다. 불안과 분노가 커질수록 사람들은 확인 가능한 경험보다 상상 속의 적과 영웅을 더 선명하게 받아들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허구의 장치는 정치적 폭력을 재생산하며 반복되는 역사를 이어간다.

지도자가 곧 ‘진실’이 되는 정치의 논리

파시즘은 지도자를 공동체 의지의 원천처럼 설정하며, 개인의 판단을 그 의지 아래 자연스럽게 종속시키는 구조를 만든다. 지도자의 말은 개인의 의견보다 우위에 놓이고, 제도는 지도자의 결정을 전달하는 도관으로 축소된다. “민중과 국가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존재”라는 신화적 이미지는 독재를 공동체적 선택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 순간 제도적 민주주의는 불필요한 절차로 취급되며 지도자 개인이 공동체의 의지를 직접 대변한다는 논리가 자리 잡는다.

이 신화적 구조는 포퓰리즘에도 자연스럽게 흡수되며 더 세련된 방식으로 재등장한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에 맞게 개조한 파시즘”이라는 설명처럼, 절차적 민주주의는 형식적인 외피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 권력은 지도자의 의지에 집중된다. 의회는 공동체의 의지를 왜곡하는 기관으로 공격받고, 언론은 공동체를 속이는 적대적 세력으로 낙인찍힌다. 그 과정에서 의심은 정치 전체로 확산되고, 최종 판단 권한은 오직 한 사람의 목소리로 수렴된다. 이렇게 정치적 현실은 점차 지도자의 언어 속에서만 존재하는 세계로 재편된다.

진실보다 믿음을 우위에 두는 세계

파시즘의 힘은 사실의 유연성을 이용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증거를 기반으로 한 사실을 신뢰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파시즘은 증명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현실을 받아들이는 신화적 운동이다.”

이는 사실의 자리에 믿음이 들어설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믿음은 반증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의 세계를 폐쇄적으로 유지하고, 그 안에서 지도자는 무오류의 상징이 된다. 그때부터 신화는 과학이나 역사보다 더 강력하게 작동한다.

진실 대신 믿음이 기준이 되면 대립의 양상도 완전히 달라진다. 반대 의견은 곧 배신이며,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은 공동체의 적으로 간주된다. “민주주의는 환상”이라는 주장과 함께 절차는 무용한 것으로 취급되고, 선택된 지도자가 공동체를 온전히 대변한다는 논리가 정당성을 얻는다.

이런 구조 속에서 민주주의의 토대인 합의·타협·상호 인정은 사라지고, 지도자의 감정과 신화만이 남는다. 결과적으로 공동체는 하나의 방향으로만 해석되는 세계관에 갇히게 된다.

폭력과 거짓말이 결합할 때 나타나는 결과

폭력은 파시즘에서 단순히 억압의 수단이 아니라, 신화적 세계를 현실로 전환시키는 실행 도구였다. 지도자들은 폭력을 ‘정화’나 ‘구원’처럼 포장하면서 공동체의 적을 제거해야 한다는 감정적 명령을 부여했다.

“정치를 유사 종교적 전쟁의 장으로 보는” 사고방식 속에서 타협은 연약함의 표식이 되고, 상대는 제거해야 할 악으로 규정된다. 이때 폭력은 공동체 내부의 일상적 감정으로 흡수되면서 점차 정상화된다.

보우소나루가 1964년 쿠데타를 ‘민주주의의 확립’이라고 재해석하려 했던 사례는 역사를 왜곡함으로써 미래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은 포퓰리즘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과거가 재구성되면 현재의 폭력도 공동체적 사명처럼 읽힌다. 왜곡된 기억은 새로운 폭력의 씨앗이 되고, 거짓말은 결국 현실을 다시 한 번 파괴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렇게 진실의 왜곡과 폭력의 결합은 민주주의의 기반을 가장 빠르게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리더의 광기보다 체계가 더 위험한 이유

극단적 지도자를 단순한 ‘미치광이’나 ‘사기꾼’으로 규정해버리는 시선은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는 경향이 있다. 그런 프레임 속에서는 개인의 이상한 태도나 말투만 부각되고, 그 뒤에서 신화적 구조를 뒷받침하는 정치적 조건들이 보이지 않게 된다.

“체계적인 정치와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즉, 문제는 개인적 광기가 아니라 그 광기를 지지하는 수많은 사회·문화·경제적 구조다. 지도자의 거짓말이 공동체의 믿음으로 변환되는 과정은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시스템의 허점에서 비롯된다.

정치적 광기에만 초점을 맞추면 그 지도자가 동원하는 알고리즘적 장치, 불안 심리를 자극하는 메시지, 이미지 정치 등의 구조적 요소들을 놓치게 된다. 그 구조는 한 지도자가 사라져도 다음 지도자가 그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위험하다.

실체를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비난을 넘어 구조를 이해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극단주의는 다른 얼굴로 매번 돌아오게 된다. 결국 민주주의의 방어선은 구조적 이해 위에서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21세기의 파시즘은 과거보다 더 은밀하고, 더 기민

21세기의 정치 환경에서는 과거의 파시즘처럼 노골적인 폭력이나 대규모 군중 선동이 중심이 되지 않는다. 대신 알고리즘과 SNS, 이미지 정치가 결합해 훨씬 은밀하고 빠르게 신화적 거짓말을 확산시킨다.

이는 오늘날 파시즘이 기술적 환경과 결합해 새롭게 변형된 형태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눈에 보이는 상징보다 데이터 흐름 속에서 조용히 구조를 바꾸는 방식이 더 위험해진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환이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알고리즘을 감시하고, 역사를 정확히 기억하며, 왜곡된 언어를 바로잡는 일상의 노력들이 쌓이면 신화적 정치의 확장 속도를 늦출 수 있다. 민주주의는 거대한 구호가 아니라 작은 사실들이 모여 유지되는 체제이며, 그 체제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끈질긴 기록과 반복적인 확인이다. 진실의 자리를 다시 회복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며, 그 노력이 이어질 때만이 또 다른 파시즘적 충동에 저항할 수 있다.

진실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필요한 마음

파시스트 거짓말의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복기하는 과정이 아니라, 현재의 혼란을 이해하기 위한 렌즈다. 진실이 사라지는 순간 민주주의는 스스로의 기반을 잃기 시작하며, 공동체는 신화적 지도자의 말에 흔들리기 쉬워진다. 이를 되돌리기 위한 방법은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꾸준한 탐구, 기록, 그리고 차분한 경계다. 이런 태도들은 드러나지 않기에 과소평가되지만, 사라지고 나면 민주주의의 기초가 함께 무너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거짓말이 힘을 얻는 시대일수록 진실은 더 조용하게 움직이지만, 그 조용함이야말로 민주주의가 버티는 방식이다. 신화를 걷어내고 현실을 직시하려는 태도 속에서만 반복되는 과오와 새로운 위협에 맞설 힘이 생긴다. 결국 진실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길은 길고 느리지만, 그 느림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민주주의의 호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