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청 도서요약

일제 강점기 조선 지역에 살게 된 일본인 어린이들의 세계와 토박이 조선 어린이들의 세계를 함께 선보인다.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대조되는 이 두 세계를 바라보면서 어린이가 출신 사회와 배경의 차이에 따라 어떻게 다른 세계관을 학습하게 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제국의 어린이들

제국이 길러낸 아이들, 역사가 만든 감정의 풍경

제국의 어린이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전쟁과 폭력의 한가운데서 자라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이다. 어른의 언어로 쓰인 역사 서술 뒤에는 언제나 이름 없는 아이들의 숨, 공포, 호기심, 그리고 부끄러움이 겹겹이 쌓여 있다. 이 책이 소환하는 것은 연표 속 사건이 아니라, 그 사이 틈에서 자라난 한 세대의 눈빛이다.

아이들은 늘 미래를 상징한다고 말하지만, 제국의 시대에 아이는 동시에 가장 손쉬운 도구였다. 교과서와 노래, 깃발과 교복은 아이들의 몸과 생각을 한 방향으로 모으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장치였다. 제국이 바란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시민이 아니라, 주어진 역할을 기꺼이 수행하는 순응형의 몸이었다. 이 책은 그 과정을 따라가며 묻는다. 그때 길들여진 감정과 습관은 오늘 우리의 삶과 어느 지점에서 이어져 있는가.

국가가 만든 기억, 어린 시절의 표정을 바꾸다

어린이는 세상을 먼저 몸으로 배운다. 운동회에서 외치게 되는 구호, 매일 아침 읊게 되는 맹세, 교실 벽을 가득 메운 지도와 포스터는 말없이 세계를 설명한다. 그 반복 속에서 아이들은 무엇이 자연스럽고, 무엇이 위험하며,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익힌다. 제국의 어린이들은 그렇게 국가가 짜놓은 거대한 무대 위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배우가 되어갔다.

이때 기억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감정의 묶음이 된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알 수 없는 뭉클함이 밀려오고, 특정 기념일이 다가오면 막연한 의무감이 고개를 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국은 바로 이런 감정을 설계하는 데 탁월했다. 감동은 애국심으로, 두려움은 침묵으로, 소속감은 복종으로 번역되었다. 아이들의 기억은 곧 제국의 서사가 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억은 세대를 건너 오늘까지도 잔향을 남긴다.

제국의 언어에 갇힌 말들, 침묵으로 남은 이야기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은, 패자의 언어가 얼마나 쉽게 삭제되는지를 말해준다. 그러나 제국의 시선으로 쓰인 문서 속에도 지워지지 않는 자국이 있다. 교사의 비망록에 남은 한 줄, 사진 속 구겨진 표정, 검열을 피해 돌려쓰던 일기 같은 것들이다. 이 책이 하는 일은 바로 그 작은 균열들을 확대해서 들여다보는 일이다. 당대의 통계나 정책만이 아니라, 그 틈새에서 불편하게 일렁이던 감정들을 복원해내려는 시도다.

아이들은 언어가 부족할 때 몸으로 항의한다. 엉겁결에 튀어나온 장난, 이유 없이 반복되는 웃음, 아무 말 없이 멈춰버린 눈물 말이다. 그것은 국가가 허용하지 않은 감정의 언어다. 제국은 아이들에게 애국과 충성을 가르쳤지만, 아이들은 그 사이에서 수치심과 혼란, 미묘한 저항을 동시에 배워야 했다. 이 책이 묻는 것은 바로 이런 질문이다. 그 말해지지 못한 감정들은 어디로 갔는가, 그리고 그 감정의 잔여는 오늘의 우리에게 어떻게 전이되었는가.

집단의 꿈과 개인의 상처 사이에서

제국의 시대에 학교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것은 철저히 설계된 감정 훈련소였다. 아이들은 여기서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훈련받았다. 하나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존재에 대한 사랑, 곧 국가와 황제에 대한 경외감이다. 다른 하나는 구체적이고 가까운 존재에 대한 거리두기, 곧 이웃 민족과 약자에 대한 냉담함이다. 이 두 감정이 균형을 잃을 때, 아이들은 쉽게 분열을 경험한다.

한편으로는 소속감을 얻고 싶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을 품게 되는 것이다. 이때 많은 아이들은 선택한다. 의심을 거두고 집단의 꿈에 자신을 맞춘다. 그 편이 훨씬 안전하고, 덜 아프기 때문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 지점에서 생기는 작은 균열들이다. 모두가 같은 구호를 외칠 때 혼자 입술을 달싹이지 못하던 아이, 전쟁 영웅의 이야기에 박수치면서도 밤에는 악몽에 시달리던 아이의 얼굴 말이다.

과거의 아이들을 이해하는 일, 오늘의 우리를 다시 묻는 일

제국의 어린이들은 이미 어른이 되었고, 많은 이들은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들의 어린 시절에 새겨진 감정의 구조는 여전히 다양한 형태로 현재를 관통한다. 권위 앞에서 쉽게 위축되고, 집단에서 튀지 않으려 애쓰며, 국가의 언어를 사적인 양심보다 우선시하는 습관은 한 세대의 선택이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축적된 결과다. 이 책이 제국의 어린이들을 다시 불러내는 이유는, 과거의 피해를 열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서다. 우리는 더 이상 제국의 국민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경쟁과 서열, 효율과 성과의 언어가 아이들의 마음을 규정하고 있다. 제국의 어린이들을 둘러싼 풍경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형태만 달라졌을 뿐, 아이들을 둘러싼 압력의 구조는 생각보다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이런 물음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기억의 구조를 물려주고 있는가.

역사를 다시 쓰지 못해도, 기억을 다시 읽을 수는 있다

과거의 비극은 돌이킬 수 없지만, 그 의미를 해석하는 방식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제국의 어린이들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영웅과 가해자, 피해자와 방관자의 단순한 구도를 넘어 그 모든 범주 사이를 오가야 했던 실제 인간의 얼굴을 떠올리는 일이다. 한 아이는 동시에 피해자이자 동조자였고, 가르치는 어른 역시 제도의 희생자이자 재생산자였다. 이 복잡한 층위를 직시할 때, 우리는 지금의 자신을 향해서도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다.

이 책이 던지는 마지막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어떤 세계에서 아이들을 자라나게 할 것인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자라난 세계는 어떤 곳이었는가. 제국의 어린이들을 둘러싼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결국 자신의 어린 시절, 그리고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잔해와 마주하게 된다. 역사는 먼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 안에서 숨 쉬는 현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핵심 메시지
제국의 어린이를 바라보는 일은, 국가가 개인의 감정과 기억을 어떻게 설계해왔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아이들의 일상과 표정 속에 스며든 제국의 논리를 읽을 때, 우리는 오늘의 권위와 경쟁의 구조 또한 새롭게 보게 된다.
역사를 다시 쓰지 못하더라도, 그 역사를 겪은 마음의 풍경을 다시 읽는 순간, 다음 세대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달라질 수 있다.

독자 추천글
전쟁과 제국을 다룬 수많은 역사서 사이에서, 이 책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계를 다시 그려내 독자로 하여금 깊은 숨을 쉬게 한다.
통계와 연표가 아닌 일상의 장면들로 제국의 실체를 드러내어, 역사에 서투른 독자도 자연스럽게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과거의 아이들을 이해하는 과정이 곧 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위로하는 시간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조용하지만 단단한 사유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