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며 간다》는 삶의 고통과 쓸쓸함, 선택과 갈등을 철학과 예술로 짚어내며 사유의 여정을 펼친다.

일상의 감정에서 시작해 정의와 우정, 용기의 본질까지 사려 깊은 문장으로 독자를 이끈다.

백일홍처럼 저력 있게 피어난 삶, 설강화처럼 단단히 견디는 존재들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다가온다.

사소하지만 본질적인 질문들 속에서 삶의 윤리를 되새기게 하며, 무겁지 않게 마음을 울린다.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이 책은 다시 걸을 수 있도록 등을 밀어주는 조용한 동행이 된다.

1968년 부산 강서구 가락에서 태어났다. 김해고, 경찰대학, 동아대 법무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4년 수필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2020년 첫 수필집 『나도 나에게 타인이다』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도서에 선정됐다.

경남 의령경찰서장, 부산경찰청 정보과장, 부산 북부경찰서장, 부산 동래경찰서장, 경남 자치경찰위원회 정책과장을 지냈다. 오랫동안 정보업무를 하면서 인간과 사회를 관찰했다. 경남 통영경찰서장으로 있다.

1장 birthday blue

birthday blue?참새의 하루?내가 부를 너의 이름?새들에게 묻는다?철쭉이 나를 바라보다?우리들의 따듯했던 방?인간의 서열?일장춘몸(一場春몸)?다시 돌아오지 않기를?약사님의 실수?말뜻을 헤아리다?

2장 덜 받은 봉급 값

눈물 반 방울과 한 방울 사이?언어에 대한 예의?여리박빙?덜 받은 봉급 값?호루라기?주례를 거부하라?별의 순간?비망록?결정은 용기의 신발을 신는다?그냥 해

3장 파도처럼 부서지며 왔다

파도처럼 부서지며 왔다?다정도 병인 양하여?아버지의 앞모습?아버지의 이름 +1?어버이날 풍경?고맙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사이?붓꽃의 꽃말?어머니?아름다운 항해

4장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

12월의 편지?인간의 조건?벚꽃 엘레지?눈물의 작은 새?문득 생각이 나서?장대한 사나이?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

5장 정의는 굼벵이의 속도로 온다

매화가 피었다?자네 같은 벗이 있지 않은가?수필에 울다?그들이 사는 곳은 어디인가?우리들을 위해서만 힘을 쓰는 착한 이?덩치값?정의는 굼벵이의 속도로 온다?사내?까마귀

삶은 종종 균열 속에서 진실을 드러낸다. 감정은 겉으로 드러나는 순간보다, 그 속을 견디는 과정에서 진정한 무게를 갖는다. 태어난 날조차 왜인지 모를 쓸쓸함이 밀려오는 생일, 익숙한 것들과 멀어져야 하는 주말부부의 고독, 유년 시절의 어떤 향기처럼 피어오르는 그리움은 모두 인간 내면에 드리워진 감정의 그늘이다.

이 감정들은 스쳐 지나가는 듯하지만, 그 안에 서린 의미는 생각보다 깊고,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삶의 감정과 철학, 그리고 예술은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다. 일상의 단면들이 문학, 철학, 음악과 맞닿을 때, 감정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렌즈로 작용한다. 고전의 문장들, 경전의 사유, 대중가요 속의 노랫말까지도 삶의 갈피를 짚는 실마리가 된다. 

고창 선운사의 무심한 풍경과 그 앞에 흐드러진 백일홍은, 저마다의 고독 속에서도 삶의 저력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의 존재와 닮아 있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는데 이 나무는 백날을 붉게 꽃피운다. 저력의 꽃이다."

삶도 저력을 다해 피어나야 한다.

"살아 있는 날은 나날이 생일이므로 저 백일홍처럼 활짝 웃어야겠다."

삶이 던지는 수많은 질문과 선택 앞에서 인간은 결정의 무게를 짊어진다. 작고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인생을 바꿀 중대한 결정까지, 이 주사위는 늘 던져지고, 그 결과는 책임이라는 형태로 되돌아온다.

"결정이라는 주사위는 늘 던져진다."

그 선택이 치졸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면의 단단한 기준이 필요하다.

"결론은 품격이다. '좀 더 바람직한 행위'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미래에 뼈저린 후회의 청구서가 날아올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매순간, 자기 자신과의 고투 속에서 살아간다. 삶은 누구에게나 결핍을 지니고 있다. 누구나 짐을 지고 살아가며, 그 짐을 지는 태도에 따라 삶의 품격이 갈린다.

"겉으로 뻔쩍거리는 삶을 사는 듯 보여도 누구나 결핍이 있고 짐이 있다."

결핍을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것과 동행하며 인내로 견뎌내는 사람은 마치 설강화처럼 단단한 아름다움을 지닌다.

"그 짐과 일체가 되어 오는 사람은 설강화처럼 아름답다."

우정 또한 그런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은밀한 동행자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으며, 공감과 연대 속에서 정서적 생존을 도모한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우정을 "음모"라고 표현했다. 이는 공감의 진지라는 뜻이다.

"우정에는 이런 공감 마인드가 뼈대로 서야 한다. 이를 작당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친구란 서로의 등을 밀어주고, 때로는 등을 지고 가는 존재다.

"유사 이래의 이 작당은 강령도 당수도 없다. 눈치껏 함께 노를 젓는다."

낄낄거리며 웃을 수 있는 편안함이야말로 유일한 강령이다. 이 느슨한 유대는 공식이나 원칙이 아닌 감각과 공감으로 운영되며,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이해, 말 없이도 함께할 수 있는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한다. 그리하여 우정은 삶의 결핍을 메우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된다. 공모하듯 꾸미는 일상의 대화, 말없이 나누는 침묵의 시간은 어떤 철학보다 깊은 진리를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삶의 맨 밑바닥에는 용기가 있다. 용기는 전쟁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아주 사소한 행동들 속에 존재한다.

"약자의 등을 어루만지는 것, 억울한 사람을 두둔해 주는 것, 얌체에게 한소리 하거나 한번 째려봐 주는 것, 확신 없이 동조하지 않는 것, 강자에게 알랑거리지 않는 것, 사과할 줄 아는 것, 자랑하지 않는 것, 비밀을 지키는 것, 가기 싫어도 가는 것, 견디기 힘든 시간을 견디는 것, 내가 불편한 것을 감수하는, 이러한 모든 심리가 바로 용기이다."

이처럼 용기는 도덕적 선택이자 실천적 의지이며, 인간됨의 조건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세상의 기준이 흔들릴 때, 용기는 내면에서 조용히 울리는 윤리의 종소리이기도 하다.

정의는 빠르지 않다.

"굼벵이 같은 그 정의라는 것이 늦은 밤 묵직한 심판자로 그대의 방문을 노크할 수 있다."

그 정의는 무도한 세계에 대항하는 마지막 성채이며,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한 유일한 월계관이다. 비록 그 속도가 더디고 즉각적인 보상을 주지 않더라도, 정의는 결국 제 자리를 찾는다.

그것은 마치 깊은 밤을 지나 새벽이 오듯, 느리지만 확실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정의는 외부로부터 강요되는 질서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도덕성과 양심이 부른 응답이다. 삶의 어두운 순간마다 정의를 지키려는 노력은 결국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한 사람의 생은 결국 흔들리는 갈대처럼, 꺾이고 부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반복의 연속이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제자리를 지키는 갈대처럼, 인간은 수없이 흔들리며 균형을 잡는다. 그것이 삶이다. 삶은 늘 예기치 않은 갈등과 실망, 때로는 불의와 맞서야 하는 고통의 연속이지만, 그 안에서도 정의와 연대, 공감과 용기는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

이런 성찰은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닿아 있다. 누구나 언젠가는 부서질 것이다. 그러나 부서지며 간다는 것은 무너짐이 아니라 단단한 인간됨의 과정이다. 감정과 철학, 예술과 공감, 그리고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이름으로 이 세상을 건너갈 수 있다. 삶은 아름답고, 견디는 이에게만 그 진실을 허락한다.

삶은 고독과 결핍, 선택의 무게 속에서도 끊임없이 나아가야 하는 여정이다. 진정한 용기란 일상 속의 작고 조용한 행동에 숨어 있으며, 정의는 느리지만 반드시 도착한다. 우정, 공감, 철학, 예술은 삶을 버티게 하는 본질적인 힘이다.

삶의 본질을 고요히 응시하고 싶은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성찰의 기록. 부서지기 쉬운 세상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내면의 힘을 되새기게 한다.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을 두드리며, 일상의 철학을 깨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