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AI의 시대다. 지금까지 우리는 과학 기술을 활용하여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해 왔고, 그 결과로 하루가 다르게 기술의 한계가 갱신되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어떠한가. 이제 인간은 AI와 과학 기술의 도움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앞으로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소외될 것이며, 사람들은 AI와 기술에 의존하여 환경과 생명을 제어하는 일에 무뎌질 것이다. ‘응용윤리학’은 이러한 경향이 점점 심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1960년대, 환경운동과 과학기술 비판 속에서 태동한 응용윤리학은 이제 생명, 환경, 정보와 AI 로봇, 신경, 기술·연구윤리로 분화해 우리의 일상과 결정에 개입한다. 병실의 동의서, 연구실의 작업물, 개발자의 코드 한 줄, 정책의 한 문장까지, 우리의 모든 결정은 윤리를 호출한다. 이 책은 응용윤리학의 형성과 오늘의 쟁점을 가볍게 스치지 않고, 각 딜레마 상황에서 핵심 질문을 다루어 독자가 자신만의 판단 기준을 스스로 구축하도록 이끈다. 발전하는 기술과 흔들리는 가치관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이 책은 그 실마리를 제시하고, 사회구성원의 책임 있는 결정을 돕고자 한다.

김상득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응용윤리학 방법론 연구」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서울교육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Post-Doc. 과정과 연구강사를 역임하였고,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케네디윤리학 연구소(Kennedy Institute of Ethics)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현재 전북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생명윤리, AI 로봇의 윤리, 사회정의 등에 관심을 두고 연구한다. 저서로 『생명과 자유는 어떻게 서로를 반대하는가: 임신중절의 윤리적 논쟁』(2024), 『AI 로봇 윤리』(2024), 『알기 쉬운 윤리학』(2013), 『유전자윤리학』(2009), 『생명의료윤리학』(2000)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AI 로봇의 책임 공백에 관한 윤리학적 연구」(2024), 「Gen AI와 연구윤리」(2024), 「낙태법 관련 헌법재판소 결정에 관한 ‘윤리 법정’」(2023), 「기계의 메타 윤리학」(2020), 「소수집단 우대조치에 관한 윤리학적 연구」(2017) 등이 있다.

들어가는 말: 과학은 윤리로부터 자유로운가

제1장 임신중절의 윤리: 임신중절 권리는 여성 해방에 도움이 되는가

제2장 대리모의 윤리: 대리모의 윤리적 문제는 무엇인가

제3장 배아입양의 윤리: 배아입양은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가

제4장 유전자 편집의 윤리: 유전자 가위를 윤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제5장 인간복제의 윤리: 체세포복제술을 이용한 자녀 출산은 가능한가

제6장 안락사의 윤리: 인간은 죽음의 권리를 갖는가

제7장 환경윤리: 환경을 왜 그리고 어떻게 보전해야 하는가

제8장 사이버윤리: 가상 공간에서도 윤리적이어야 하는가

제9장 로봇윤리: AI 로봇도 윤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제10장 신경윤리: 자유의지는 정말 존재하는가

제11장 기술윤리: 기술은 윤리 구현의 도구에 불과한가

제12장 연구윤리: 연구에 왜 윤리가 필요한가

부록 1 응용윤리학은 어떠한 학문인가

부록 2 생명윤리학은 어떻게 탄생하였는가

실천적인 문제를 다루는 윤리학을 고전적인 규범윤리학과 구별하여 응용윤리학(applied ethics) 혹은 실천윤리학(practical ethics)이라 부른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달이 응용윤리학의 태동은 물론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즉, 과학기술의 발달에 함의된 새로운 윤리적 문제들이 응용윤리학의 부흥을 가져다주었다. 오늘날 응용윤리학은 단순한 도덕적 원칙의 선언을 넘어, 생명, 환경, 정보, 로봇, 신경 윤리 등으로 분화하며 “무엇이 옳은가”를 묻기보다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라는 실제적 질문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기술이 인간 행위와 관계, 더 나아가 도덕 자체를 미시적 혹은 거시적 차원에서 '매개'하는 현 상황에서, 이 책은 독자가 일관된 판단 기준을 구축하도록 안내하는 사고의 틀을 제공한다.

생명윤리학은 태아가 지닌 잠재적 지위와 개인의 자유가 첨예하게 맞서는 지점을 다룬다. 임신중절 논쟁에서 권리 담론은 종종 임신중절 선택권을 요구하는 여성들을 ‘나쁜 이기주의자’로 몰아가려는 ‘도덕적 비아냥거림’ 내지 ‘도덕적 조소’가 담겨 있다고 지적된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태아와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도 상호의존적인 존재라는 점이다.

더 나아가 배아입양이나 유전자 편집과 같은 주제는 생명의 시작점에 대한 윤리적 사유를 심화시킨다. 배아는 비록 도덕적 지위를 지니지 않아도, 그래서 지금은 이해관계 당사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미래의 자신에 대해서는 ‘미래 이해관계’를 지닌다. 그리고 우리는 타인의 미래 이해관계에 대한 도덕적 의무를 지니기에, 발달하여 아이로 태어날 태아에게 해악을 입히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기술이 생명에 직접 개입하는 유전자 편집의 윤리는 더욱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유전자 편집이 우리 인류에게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무한한 존재인 신 내지 자연에 비해 인간은 유한하기에, 우리 인류에게조차 득이 되는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장담하지 못한다. 누가 책임을 지는가에 대한 물음은 기술의 진보 속에서 피할 수 없는 딜레마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인간복제와 안락사의 윤리는 '개체동일성(personal identity) 및 개성(individuality)'이라는 철학적 문제와 '죽음에 대한 권리'를 탐구한다. 체외수정을 통해 출생한 존재는 자연적으로 태어난 존재와 존재론적 차이가 없지만, 복제인간은 유전자의 동일성으로 인해 개성의 물음을 제기한다. 또한, 안락사는 대개의 경우 환자 자신이 죽음을 원한다는 자살의 요소를 갖지만, 의사가 죽음을 실제로 행한다는 타살의 요소를 갖기에 제3자가 개입된 행위로서 윤리적 문제를 안게 된다.

2부는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새로운 정의의 영역을 탐구한다. 환경윤리는 환경을 왜 그리고 어떻게 보전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넘어 정의의 외연 확장, 즉 생태적 정의(ecological justice)를 주장하며 동물까지도 정의의 주체 자격을 지닌다고 본다. 이는 개인이요, 국가요, 미래 세대요, 동물이라는 네 주체에게 환경적 재화를 정의롭게 분배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가상 공간에서 발생하는 사이버 윤리 문제는 사이버 공간이 하나의 ‘가상적 공간’에 불과한데 왜 이러한 윤리가 적용되어야 하는가라는 존재론적 물음을 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제 공간의 윤리를 사이버 공간에도 적용시켜 책임의 소재를 현실의 '나'에게 묻는다.

가장 첨예한 쟁점은 로봇 윤리와 신경 윤리이다. AI 로봇의 윤리적 결정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인간성으로부터의 일탈, 즉 도덕적 능력의 ‘탈숙련화’(deskilling)를 가져온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물론 이는 미끄러운 언덕길 논증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만, AI 로봇이 가진 다중 정체성은 AI의 편향성, 오류, 악용, 개인정보 보호, 킬러 로봇 문제 등 '인공지능 윤리의 5대 문제'를 통해 디자인 윤리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 신경 기술은 뇌와 자아간의 관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유전학이 결코 시도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개인 주체성 사이의 역동성, 책임과 자유의지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는다.

이러한 기술 윤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 윤리에서는 과학의 민주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과학자는 과학의 전문가이지 윤리의 전문가가 아님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인문사회과학자 및 일반인과 함께 과학윤리 내지 연구윤리를 논의하는 '숙의 과정'이 요청된다. 이러한 과정 없이는 과학적 연구 활동 자체가 ‘더러운 손’(dirty hands)의 문제에 봉착하여 손상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 사회에서 핵심은 기술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기술이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이다. 응용윤리학은 이처럼 첨예하고 실천적인 딜레마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각 쟁점에 대해 일관된 논거를 바탕으로 판단 원칙을 세울 수 있도록 안내한다. 대학 강의실을 넘어 병원, 연구실, 기업, 행정 현장에서 작동하는 윤리로 이어질 때, 이 실천적 전환은 완성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더 나은 결정을 설계할 언어와 도구를 얻게 될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등장한 응용윤리학은 임신중절, 유전자 편집, 안락사 등 생명윤리적 딜레마와 AI, 신경기술 등 기술 매개에 따른 책임 문제를 다룬다. 정의의 개념을 동물(생태적 정의)이나 미래 세대로 확장하며, 과학자가 윤리적 숙의 과정에 참여하는 '과학의 민주화'를 통해 윤리적 위험에 대비할 것을 요구한다. 이 책은 기술이 인간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독자가 스스로 판단 기준을 구축하도록 안내한다.

이 책은 단순히 윤리적 쟁점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각 논쟁의 층위를 해부하고 일관된 판단 기준을 구성하는 논거를 제시한다. 생명과 자유, 지배와 책임의 긴장 속에서 당신의 도덕적 사유 능력을 '탈숙련화'하지 않도록 돕는 실제적인 도구가 될 것이다. 임신중절 권리의 복잡성부터 AI 로봇의 도덕적 결정 능력에 대한 우려까지, 이 책을 통해 기술이 매개하는 미래를 윤리적으로 설계할 언어와 지혜를 얻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