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생각의 힘

저   자
이나모리 가즈오(역:양준호)
출판사
한국경제신문
출판일
2018년 06월
서   재







  • 이나모리 가즈오는 능력과 열의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바로 ‘사고방식’이라 강조한다. 이 사고방식 하나 때문에 인생이 단숨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세기 이상 일에 몰두해 많은 사업을 육성해온 그의 성공 신화는 이 책에서 다시금 그의 생각과 말들과 더불어 빛을 발한다. 사업을 준비하거나 경영자의 길을 걷고 있거나, 또는 앞으로 그 길을 가려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돌아보면서 다른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보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것이다.



    생각의 힘


    인생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인생을 결정하는 세 가지 요소

    저는 인생과 일의 결과가 다음과 같은 방정식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ㆍ일의 결과 = 능력 X 열의 X 사고방식


    이 방정식은 제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이고 평균적인 능력만을 가진 사람이 멋진 인생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물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선 첫 번째 요소는 ‘능력’입니다. 저는 지방 대학에서 공부하고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일류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과 비교하자면 학문적 능력 면에서 전 그다지 특출난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능력만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분명 다른 요소도 존재할 것이라 생각했지요. 그중 하나가 바로 두 번째 요소인 ‘열의’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어느 정도의 열의를 가져야 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저는 그것을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노력’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흔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곤 하지만 그 정도의 노력으론 부족합니다. ‘정말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노력을 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걸맞은 강한 열의가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사고방식이 인생을 바꾼다

    그러나 ‘능력’과 ‘열의’보다 중요한 요소가 바로 ‘사고방식’입니다. 이는 그 사람이 마음에 품고 있는 인생관ㆍ가치관 또는 철학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사고방식’은 -100점에서 +100점까지 존재합니다. 다시 말해 ‘능력’과 ‘열의’는 0점부터 100점까지, 즉 플러스(+)뿐인 지표이지만 ‘사고방식’은 마이너스(-)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원망하고, 정상적인 삶의 방식을 부정하며, 거짓말을 잘하고, 과거에 속박된 채 불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런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이라면. ‘능력’이 있으면 있을수록 그리고 ‘열의’가 강하면 강할수록 인생과 일의 결과는 커다란 마이너스에 직면하게 되는 법이지요.



    좌절과 실패를 견뎌내다

    입시에 실패하다

    저희 집은 인쇄소를 해 비교적 유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공습으로 집과 공장이 모두 불타버린 탓에 정말로 가난한 생활을 하게 되었지요. 1944년 봄, 저는 니시다소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입시를 맞았습니다. 이때 한 동네 친구가 지역 명문인 가고시마 제1중학교(현 츠루마루고등학교)에 들어가고자 했습니다. 응석꾸러기에 골목대장이던 저는 저보다 약한 아이가 중학교에 가는데 대장인 제가 중학교에 가지 못할 리가 없다는 생각에, 같은 제1중학교 시험을 봤습니다. 공부는 거의 하지 않았었지만 ‘뭐 힘내면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가볍게 생각했지요. 결국 전 불합격했습니다. 이후 어쩔 수 없이 보통 소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진학하는 진죠고등소학교 (당시는 초등학교 고등과)에 입학하게 되었고, 제1중학교는 다음 해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파란만장한 학생 시절

    중학교 3학년 시절 지금의 6ㆍ3ㆍ3 교육 제도로 바뀌었고 과거의 중학교는 현재의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기를 기대하셨습니다만 부모님을 설득한 끝에 저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가고시마중학교의 교장이었던 카라시마 마사오 선생님이 저희 학생들과 함께 고등학교로 오셔서 저의 담임을 맡게 되셨습니다. 이 선생님은 아주 훌륭한 인격자셔서 진지하게 공부를 하게 되었고 성적도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역의 은행에라도 취직해 가계에 도움을 주고자 생각했었습니다만, 카라시마 마사오 선생님으로부터 대학 진학을 권유받았습니다. 장학금을 받고 모자란 부분은 아르바이트로 채우면 어떻게든 생활이 가능할 것이라는 말씀에, 집이 가난하니 제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면 진학해도 좋다며 결국 부모님을 뜻을 꺾어주셨지요.


    그렇게 대학을 목표로 하게 되고부터는 “나는 머리가 나쁘니까 남들의 두 배는 노력을 해야 해. 남들이 두 배 노력을 하면 나는 다섯 배 노력을 하자”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밤에 잠도 줄여가며 필사적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오사카대학 의학부 약학과에 지원했지만 또다시 불합격하고 말았습니다. 중학교 입시에서 두 번이나 실패했었기에 이번엔 반드시 붙으리라는 각오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결국 안 되었고, 재수할 여력이 없었기에 시험일이 늦었던 가고시마대학 공학부에 지원해 합격하게 되었지요.



    불운에 지지 말라

    교토의 회사에 취직하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했을 때가 1955년입니다. 당시는 성적이 좋더라도 뒷배경이 없으면 채용해 주지 않던 시기여서 몇몇 회사에 응시해봤으나 채용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학 시절 신세를 많이 졌던 다케시타 선생님 소개로 간신히 쇼후공업이라는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쇼후공업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고압애자를 제작한, 당시 어느 정도 유명한 회사였지만 입사해보니 경영 상태가 안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취업난이라고 할 상황이었지만 이런 회사임에도 대졸 신입직원이 저를 포함해 다섯 명이나 있었습니다. 첫 달부터 급료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기에 점심시간에 그 다섯 명이 모여 “이런 회사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어”라거나 “장래가 없어 보이니, 어서 그만둬야겠어” 등의 이야기가 오가곤 했지요. 결국 실제로 한 명, 두 명 그만두는 식으로 가을 즈음엔 모두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간신히 가고시마에서 나와 취직했는데, 점점 삶이 비참해지고 기분도 가라앉았지요.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힘든 현실 속에서 그저 살아가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제대로 된 인간이 될 수 없다고요. 회사에 남든 그만두든 간에 불평이나 되풀이한다면 인생은 절대로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을 좋아하게 되면 모든 것이 변한다

    쇼후공업이라는 회사는 일반적으로 도자기에 사용되는 원료를 사용해 송전선용의 애자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배속된 곳은 연구과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들었지요. “일렉트로닉스의 시대가 올 것이니, 신 세라믹스(현재의 파인세라믹스)라는 새로운 분야의 연구를 원한다. 자네가 가고시마대학에서 매우 우수했다고 들었는데, 그 연구를 이끌어주게.” 그때 저는 연구에 몰두한다면 이 힘든 현실도 잊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싫은 일을 전부 잊게 되고 정신적으로 편해지더군요. 그리고 계속해서 좋은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상사에게 “이런 실험 성과가 나왔습니다.”라고 보고하면 매우 기뻐했어요. 그러다 보니 스스로 더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고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이후 모든 일들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일을 좋아하는 것’이 가능해지면 거기서부터 선순환이 생겨납니다. 그것이 사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걸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한 가지 일에 매달리는 노력이 머지않아 위대한 결과를 이룩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흔히 ‘지속은 힘이다’라고 말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지속’, 즉 같은 일을 진지하게 지속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젊은 세대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것은 이런 견실한 노력을 중히 여기는 자세입니다. 이러한 자세가 충실한 인생을 보내기 위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결심한 것은 절대 바꾸지 않는다

    일본 최초였습니다. 마쓰시타전기산업은 ‘U자 켈시마’의 수입을 중지한 뒤 전부 국내화했으며 쇼후공업은 그 마쓰시타전기산업을 위한 제품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주문이 폭주했고 이후 점점 많은 부품을 납품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새롭게 개발한 세라믹의 재료로 진공관을 만들 수 없을까 하고, 히타치 제작소의 기술자가 교토까지 찾아왔습니다. 세계에서도 미국의 한 회사정도밖에 하고 있지 않은 세라믹 진공관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에 저는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이후 전심전력으로 제작에 힘썼습니다만 꽤 어려움을 겪었지요. 몇 차례 시험 제품을 완성해 가져갔으나 번번이 퇴짜를 맞았습니다. 당시 회사에는 일본 최고 명문대학인 교토대학 공학부 출신 선배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고, 결국 “그들에게 업무를 맡길 테니, 자네는 이제 손을 떼게”라는 통보를 받게 되었습니다. 순간 욱해서 저는 “그럼 다른 사람에게 맡기시지요. 전 그만두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금방 사장의 귀에도 들어가 “자네를 어떻게 해서든 붙잡고 싶네. 급료도 올려주겠네”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남아일언중천금입니다. 결심했으니 바꾸지 않겠습니다”라고 확실하게 입장을 밝히고 그만뒀습니다.



    생각한 것을 실현하다

    세상과 사람들에게 공헌하는 회사

    그러던 중 쇼후공업의 전 상사였던 아오야마 마사시라는 저의 아버지뻘 되는 사람이 “자네 기술이 아깝군. 내 교토대학 동문들이 커다란 회사 임원을 맡고 있으니, 그들과 이야기해서 출자를 받아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볼까 하는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제안해왔습니다. 제게 있어서 그것은 아주 기쁜 제안이었지요.


    그렇게 아오야마 씨와 교토의 배전만 회사인 미야기전기 제작소의 전무를 맡고 있던 니시에다 이치에씨의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당시 스물여섯 살로 대학을 졸업하고 3년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니시에다 씨는 저를 보고 “얼마나 자네가 우수한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젊은이를 믿고 회사를 만들어 도대체 뭐가 가능하다는 건가?”라며 기가 막힌 듯 이야기했습니다. “가까운 장래에 분명 새로운 세라믹의 시대가 옵니다”라고 전 필사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방문 즈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럼 해볼까… 하지만 이나모리군. 이런 회사를 만든다는 것, 그것도 기술의 첨단을 이끌어나갈 제조업이란 것은 꽤나 어려워서 회사를 시작해도 천 개 중 단 한 개가 성공하면 다행이네. 잘될 거란 보장은 없지만 젊은 자네의 열의에 감동해 지원하기로 했네.” 그 후 니시에다 씨가 몇 분에게 부탁해 3백만 엔의 자본금을 모아줬습니다.


    열정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

    회사를 창업한 최초 목적은 제 기술을 세계에 인정받는 것이었습니만, ‘이런 무거운 짐을 감당해내는 게 회사를 경영한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을 시작해버렸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회사를 경영해가는 것, 업무를 지속해가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것입니다만 저는 그것을 넘어 전심전력으로 살아가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그 당시에 생각했었습니다. 어떤 환경이더라도 필사적으로 살아가지 않는 동식물은 모두 도태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인간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더를 육성하다

    아메바 경영에 대하여

    아메바 경영이란 회사를 ‘아메바’라고 불리는 작은 집단으로 쪼개고, 각각의 아메바 리더가 책임감을 가지고 경영해가는 것을 말합니다. 원래부터 저는 기술자로서 연구개발을 하고 그것을 베이스로 회사를 만든 것이기에 완성된 제품은 기술적으로 특수한 제품이었고, 그것을 팔기 위해선 제작한 제가 설명을 하러 가는 것이 설득력을 높일 수 있겠다 싶어 직접 영업을 뛰었습니다. 하지만 회사 직원이 100명, 200명으로 늘어가면서 저 한 명이 노력해도 그것은 저만이 알고 있을 뿐이고, 저는 익숙해지지 않는 영업과 회사 경영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손오공’ 이야기를 문득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사장이 있고 전무, 상무, 직원이 있는 회사 조직이 아닌, 경영자로서의 나와 동등한 인간이 매우 많이 있는, 이른바 저와 파트너인 사람들로 구성된 회사는 없는 것일까? 없다면 내가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많은 동료들을 경영에 참가시키기 위해 저는 그들이 주식을 갖도록 했습니다.


    아메바 경영을 실행하기 위해선 리더를 선출해야만 합니다. 훌륭한 인간성을 가지고 있으며 제 철학을 이해하는 사람을 아메바의 리더로 삼기로 했습니다. 아메바는 각기 바른 운영을 하고 있지만, 한편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서로 경쟁하다 보니 결집되지 못하는 경우도 일어나고 있긴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이 필요한 것이지요, 이 철학의 근본에 있는 것은 ‘인간으로서 무엇이 바른 것인가’라는 사고방식입니다. 자신의 아메바만 잘되면 되는 게 아니라 전체와의 조화 속에서 훌륭한 경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이해할 수 있어야만 회사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분신이 될 수 있을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만들어서 그들로 하여금 경영책임의 일부를 짊어지게 한 시스템이 바로 ‘아메바 경영’입니다.



    무조건 성공한다고 믿어라

    통신 사업 분야로 진출하다

    1970년대의 교세라는 아직 영세기업으로서 출장지인 동경에서 교토 본사로 전화를 걸 때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없었기 때문에 공중전화를 사용했습니다. 다이얼을 돌려 상대가 받으면 미리 준비해둔 10엔 동전을 계속해서 전화기에 넣어야만 했고 동전들은 곧 전부 사라지곤 했지요. 미국의 통화료는 매우 저렴한데 어째서 일본은 비싼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파악해보니, 국영 사업이었던 전전공사(일본전신전화공사, 현 NTT그룹)가 독접기업이었기 때문에 비싼 것이었어요. 이를 어떻게든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1982년경부터 행정 개혁의 하나로 통신의 자유화가 결정되었습니다. 전전공사를 민영화하고 민간 기업도 통신 사업에 참가할 수 있게 되어 기회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어떤 기업도 참가하려는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전국 구석구석의 가정들까지 둘러싼, 사회생활의 기반인 전화선이라는 상당한 자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거대한 자산을 가진 기업에 대항해 새로운 통신 사업을 하고자 한다면,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많은 자금이 필요했기에 누구도 손대려 하지 않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제2전전의 탄생

    마침 그때 당시 동경에서 경제인들 모임이 있었는데, 평소 친하게 지내던 우시오전기의 우시오 지로우 씨에게 “전전공사의 독점체제를 부수지 않으면, 통신 요금은 하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항할 회사가 없다면 제가 한번 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니, 세콤의 이이다 마코토 씨, 소니의 모리타 아키오 씨 등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며 도전한다면 크게 응원하겠다고 격려해줬습니다.


    통신과는 완전히 관계없는 교토의 중견기업을 운영하던 제가 하겠다고 나선 탓에 모두들 덜컥했겠지요. 실제로 제2전전에는 회선을 설치할 수단도 없고 아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잡혀 있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경우 나라의 공공시설을 민간 기업이 공평하게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독점 금지법에 저촉됩니다만, 일본의 국영 기업은 자유 경쟁에 있어서의 공정성의 중요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당시 전전공사의 신토우 히사시 총재로부터 “우리는 원래부터 마이크로 웨이브 무선 루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통신 수요는 광섬유 케이블로 전부 감당되고 있으니, 오사카에서 동경까지의 공중에 있는 마이크로 웨이브 무선루트를 이나모리 씨에게 제공할까 합니다. 그 루트를 알려줄 테니 사용하겠습니까?”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위기 속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나 한순간 나아갈 길이 열린 것이죠.



    신념을 관철하다

    JAL을 회생시키다

    항공업계의 일 같은 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저는 “초심자가 도산한 항공회사를 회생시킨다는 게 가능할 리 없습니다. 좀 더 업계에 정통하신 분이 계실 것이니, 이것은 그런 분에게 부탁해야 할 이야기 아닙니까?”라고 그 자리에서 거절했지요. 처음에는 그렇게 거절했습니다만 관계자가 몇 번이고 다시 찾아왔어요. 저는 곤란함을 느끼며 JAL을 회생시키는 것의 의의를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먼저 JAL이 2차 파산하게 되면 정체되어 있던 일본 경제가 더욱 손상을 입고, 사회적으로도 안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JAL을 재건하려면 구조조정이 따르겠지만 그런다 해도 수만 명의 직원이 남을 것입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자유경쟁 시스템 속에서도 바른 경쟁이 행해지는 것이 중요한데 독점이 되어버리는 것은 절대로 막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지요. 이 세 가지 커다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니 JAL이 살아남는 것은 정말로 사회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겸허함을 잊지 말라

    현재의 JAL은 세계 항공 회사들 중에서도 많은 수익을 내는 회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고만장해서 경영에 임하면 위험합니다. 어디까지나 신중한 경영을 지속해나가고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JAL의 경영을 맡은 뒤 항공 업계만큼 어려운 업계는 없다고 느꼈습니다. 진지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전력으로 노력해왔지만 사회 변동에 따라 실적이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JAL에 있었던 3년간 정말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수 없었기에 항상 손실을 받을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했고, 정말이지 한순간도 마음 놓고 쉴 시간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경영

    직원이 행복할 수 있는 경영을 목표로

    제가 교세라의 경영자가 되었을 당시 우선 경영에 관한 책을 읽으며 공부하고자 했으나 제가 알고자 하는 것이 기술되어 있는 책이 없어 굉장히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경영은 이런 것이다라는 걸 가르쳐주고 싶어 ‘세이와학원’을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학원명은 기업의 ‘융성’과 인덕의 ‘화합’을 지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경영은 돈벌이만 되면 되는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회사를 훌륭하게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경리를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되며 경영이념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직원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또한 중요합니다.


    경영 동기가 돈을 벌고 싶다거나, 가업인 사업을 더 크게 키우고 싶다와 같은 단순한 것이어서는 절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습니다. 리더가 가진 인생관, 철학, 사고방식, 이런 것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회사라는 것은 결국 리더의 기량이나 인격의 수준에 맞아 떨어집니다. 경영자라는 자격을 얻고 우쭐해 본인이 사장이다 또는 전무다 하며 거만해진 사람을 종종 보곤 하는데, 지위가 오를수록 책임이 무거워짐을 깨닫고 자만심을 항상 경계하며 노력하는 곧은 마음의 경영자가 되어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일하는 것에서 얻는 기쁨

    지금까지 저는 오로지 일뿐인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언젠가는 일만 할 뿐이라면 인생이 따분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취미나 오락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겠지만, 그래도 인간은 일에서 정말로 진정한 기쁨을 얻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취미나 유희의 즐거움은 일의 충실함이 있기에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일을 소홀히 하고 취미나 유희의 세계에서 기쁨을 찾는다면 단지 일시적인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뿐입니다.


    어떤 일이더라도 열정적으로 몰두하면 거기서 차차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의욕도 생기고 곧 성과도 따라옵니다. 그리고 어느새 일을 좋아하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일이 너무나도 싫다고 여겨지더라도 조금 더 힘내 보는 것. 적극적으로 임해보자고 결심하는 것. 이런 것이 인생 변화에 직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나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일을 좋아하게 되는 여부는 우직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일에 몰두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하는 것에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젊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랍니다. 어떤 직업이더라도 사람은 일을 통해 사회를 알고 성장합니다. 단지 머리가 좋다거나 좋은 대학을 나온 것으론 부족하고 몸이 가루가 되도록 남들 모르게 노력을 쌓아가면서 인간이 되어갑니다. 자신의 마음을 갈고닦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힘껏 일에 몰두하는 것. 이를 통해 더욱더 자신의 인생을 훌륭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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