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문학의 죽음에 대한 소문과 진실

저   자
강창래
출판사
교유서가
출판일
2022년 11월
서   재







  • 새롭고도 낡은 질문에서 출발해봅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요?’ 세계 각국의 근대문학을 장마다 훑어보고, 문학의 정수에 좀 더 깊이 다가갑니다. 문학사와 그에 얽힌 세계 정치·경제사를 함께 풀어냅니다.



    문학의 죽음에 대한 소문과 진실


    문학이란 무엇인가? - 채털리 사건

    1959년 영국에서 문학의 자유를 위한 법이 제정되었다.


    그 책을 읽는 사람을 부패시키거나 타락시킬 위험이 있다 하더라도 (···) 그 책을 출판함으로써 (···) 과학, 문학, 예술, 학문 및 기타 대상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의미에서 공공의 이익을 증진한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다면 처벌이나 규제를 받지 않는다.


    이는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 이래로 주장해온 로맨티스트들의 관점이 법으로 공식화된 것이었다. 예술가는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내용이라도 표현할 자유가 있으며 그 자유에는 어떤 제한도 없어야 한다. ‘도덕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치거나, 독자의 판단을 그르치거나, 독자를 도덕적으로 타락시키고 부패시키거나 (···) 훌륭한 소양의 도덕적 순수성이나 순결성을 파괴하거나 그런 소양을 그르치거나 파괴하거나, 인간을 비하하거나 모독할 소지가 있다 하더라도’ 그 책이 문학이라면 보호한다.


    이제 어떤 주제를 어떻게 표현하든 공적인 제약이 가해질 경우 법정 투쟁으로 승리할 발판이 마련되었다. 구약성경이 대량학살이나 유아살해, 근친상간 같은 사회적 금기를 다루지만 신성한 책이기 때문에 제작 및 유통이 가능한 것처럼, 문학 역시 그 비슷한 지위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곧바로 1960년 펭귄출판사는 D.H.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1885~1930)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 무삭제판을 출간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죽기 전인 1928년에 쓰였지만 그 ‘음란성’ 때문에 영국에서는 출판되지 못했다. 출판사는 예술의 자유를 내세우기는 했지만,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리라는 기대도 컸다. 초판을 2만 부씩이나 찍었던 것이다. 실제로 석 달 만에 3백만 부가 팔렸다.


    게다가 로렌스는 이미 영국의 위대한 문학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리 잡은 상태였다. 당시 영국의 유명한 평론가였다. F.R.리비스가 그를 영국 문학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았을 정도다. 로렌스는 최고의 현대 예술가이자 문학의 성자로 추앙받은 것이다.


    영국에서는 1932년에 출간되었지만 심하게 검열당해서 삭제된 구절이 많았다. 당시 리뷰 기사를 보면 그래서 오해받고 평가절하되었다고 한다. 그랬으니 당시 영국 사람들은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무삭제판으로 읽고 싶은 열망이 아주 강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젊고 아름다운 채털리 부인의 ‘혼외 정사 이야기’가 아닌가.


    문학은 문학을 읽어야 한다


    형식주의적인 논쟁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는 형식주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형식주의의 뿌리를 찾는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그 유명한 ‘시학’으로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 내용을 현대적인 어법으로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문학은 삶을 모방하지만 상상력으로 쓰인 허구이다. 작품에는 인간의 경험에 대한 진지하고 보편적인 통찰이 반영된다. 그런 작품을 경험함으로써 독자는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그런 목적에 맞는 ‘좋은 작품’을 쓰려면 적절한 수사법이나 플롯과 같은 형식적인 요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면 형식주의 사고방식은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의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말이다. 전통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던 T.S.엘리엇은 ‘시는 시로 읽어야지 다른 어떤 것으로 읽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요즘 어법으로 말하면 예능은 예능으로 받아들여야지 다큐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작품에 대해 평가하려면 작품 그 자체(텍스트)를 꼼꼼하게 읽고 거기에서 찾아낸 구체적이고 명확한 증거를 바탕으로 한 논리를 보여주어야 한다. 앞에서 보여주었듯이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등장하는 적나라한 성행위 묘사가 성적 자극을 위한 단순한 되풀이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사실 꼼꼼히 읽기는 형식주의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비평이론에서도 당연한 전제조건이다. 작품에 대해 말하면서 작품을 제대로 살피지 않는다는 게 알이나 되는가.


    이처럼 뻔한 이론이 당시에 왜 유행했을까? 그것은 그 이전의 주류 문학 이론이었던 역사주의에 대한 반발이었다. 역사주의는 작품에 담긴 저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내려 했는데, 그것은 저자의 삶과 당대의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보았다. 극단적인 역사주의는 저자와 관련된 역사를 자세히 살피는 것으로 텍스트 분석을 대신하기도 했다.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된 이 두 가지 이론은 ‘글로 쓰인 모든 것’에 적용된다. 그리고 이후 어떤 문화 분석에든 당연히 적용되는 기초적인 사고방식으로 자리매김한다. 어떤 텍스트든 그것이 생산된 맥락을 이해하면 좀 더 정확한 해석이 가능할 것이고, 아이러니와 같은 표현 형식에 익숙하다면 이면의 의미까지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의 죽음에 대한 소문

    값싼 교양교육 도구로서의 문학

    19세기에 문학이 발달하게 된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을 꼽으라면 종교의 실패라고 말할 수 있다. 종교는 그 이전까지 훌륭한 사회적 접합제 역할을 수행했다. 교리는 사회의 여러 계층을 위해 융통성 있게 변형, 제공되었으며 이미지와 상징, 습관과 제이를 통해 사람들의 정서와 경험에 깊이 뿌리내렸다. 그럼으로써 매우 효과적으로 이데올로기를 통제하고 질서의식을 내면화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종교의 미신적 요소를 지적하고 깨뜨리는 과학의 발견과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구조의 변화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지역공동체는 뿌리뽑혔고 도시로 밀려난 농민들은 임금 노예 상태가 되었다.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등장한 부르주아는 사물을 물신화하고 인간관계를 노동 상품으로 취급했다. 이에 노동계급은 투쟁적으로 항거했고 혁명적인 상황이 되풀이되었으며 정부는 이를 잔혹하게 진압했다. 그러나 어느 사회든 법집행만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양한 계급을 아우르고 질서의식을 내면화할 수 있게 해주었던 종교를 대체할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 자리를 문학이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이후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은 진리와 도덕을 통해 합리성을 추구하는 이성과 똑같이 중요한 것이 되었다. 다른 효용성 없이 단순히 미적인 경험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예술을 그 자체로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이다. 예술은 지저분한 세속적인 의도와 목적이 없는, 스스로가 목적인 존재가 되었다. 합리적으로 증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절대적이었을 뿐 아니라 구체적인 사건을 다루는 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다. 당연히 신학자들의 교리문답처럼 작품을 해설하는 평론가들이 필요했고, 그들은 작가를 신비화하는 방식으로 들러리를 섰다. 그런 의미에서 20세기 초반까지도 평론가는 문학작품의 주변인에 불과했다.


    그 결과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통찰을 보여주는 최고의 예술작품으로 치켜세워졌고 계급을 초월한 영국인 모두에게 자랑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걸작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평가는 그 시대의 필요에 맞춘 것임이 나중에 밝혀진다. 1985년 영국 서섹스대학의 조너선 돌리모어와 앨런 신필드가 공동 편찬한 ‘정치로 본 셰익스피어’에 따르면 셰익스피어 작품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위대한 통찰이 아니라 당대의 정치사회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시대의 거울이었을 따름이다. 미적인 경험을 위해 쓰인,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목적 없는 예술이 아니었다.


    두 번째 이유는 다양한 효용성이었다. 문학은 인간을 교화하는 내용을 담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치적 아집과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에 효과적인 해독제가 될 수 있었다. 문학은 내전이나 여성에 대한 억압, 공동체의 붕괴, 토지에서 내몰리는 농민들의 문제들처럼 ‘사소한 사건’들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가치를 다루었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잊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런 사고방식은 다음과 같은 말에 너무나 잘 드러난다.


    하층계급에게 소설책 몇 권을 던져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만큼 바리케이드를 쌓음으로써 반항할 것이다.


    또 스스로는 짧은 교육과 긴 노동시간 때문에 문학작품을 만들 수 없지만, 자신의 동족이 뛰어난 걸작품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모든 계급을 아우르는 동포의식을 증진할 수 있었다. 게다가 궁핍해진 민중들은 생활여건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오만과 편견’과 같은 작품을 통해 풍성한 삶에 대한 대리만족도 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제인 오스틴의 케이스북 즉, 작가에 대한 비평문을 모아놓은 비평선집이나 에즈라 파운드의 수험생용 입문서가 그렇게 많이 만들어질 수 없었으리라.


    문학이 제도화되기 시작한 곳은 종합대학이 아니라 공업학교, 노동자를 위한 단과대학, 순회 공개강좌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문학은 질좋은 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값싼 교양교육의 도구였던 것이다.



    프랑스 문학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근대문학은 누가,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이기 시작했을까? 현대인의 삶과 직접 관련이 있어서 ‘읽을만’하고 미적 감각으로 볼 때도 아주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은 작품은 대충 1830년대에 등장한다. 물론 학자들에 따라서 여러 가지 다른 답을 내놓을 것이고,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아르놀트 하우저(Arnold Hauser, 1888-1966)의 견해에 동의한다. 근대문학은 19세기 초반, 1830년쯤에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역사를 공부해보면 오늘날 우리의 삶과 비슷한 ‘현대의 시작’에 대한 ‘견해’를 접하게 되는데, 많은 학자들이 1830년대를 꼽는다. 프랑스의 경우, 1789년 혁명 이후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제1공화정이 몰락하고 나폴레옹의 ‘통령’ 체제를 거쳐 황제정으로 이어진다. 혁명의 정신이나 효과를 전면 부정하거나 없애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나폴레옹은 통치 시스템에 관한 한 보수반동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나풀레옹이 몰락한 뒤에는 부르봉 왕가가 복귀하여 혁명의 효과를 말살하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사회를 지탱하는 경제적인 기반이 자본주의 체제로 변하고 있던 큰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1930년 7월 혁명의 빌미가 되어 구체제의 마지막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물론 프랑스 역사이다. 그러나 유럽대륙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은 대단히 막강했다. 대부분의 지배층은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러시아의 경우에는 귀족들이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했을 정도다. 러시아어를 아예 모르는 귀족도 많았다. 조선 시대에 한문으로 자료를 기록했던 것보다 더 심했다. 게다가 독일은 1871년에, 이탈리아는 1860년경에야 통일국가로서의 모양을 갖추게 된다. 유럽의 문화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의 중심도 프랑스였던 것이다. 프랑스 혁명에 온 유럽이 깊은 관심을 보인 것도 그 때문이다. 영국 역시 7월 혁명의 영향을 받아 1832년에는 선거법을 개정했는데, 그 과정에서 선거권을 얻지 못한 노동자들은 차티스트운동을 시작한다. 본격적인 사회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신문연재소설로 대중과 호흡하다

    1936년에 창간된 ‘라 프레스(La Presse)’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신문은 연간 구독료를 다른 신문의 절반 값으로 낮추고 나머지는 광고 수입으로 충당했다. 구독자 수는 급증했고, 다른 신문들 역시 ‘라 프레스’를 따랐다. 신문들은 광고를 수주하기 위해서 지면을 독자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다채로운 읽을거리로 채워야 했다. 이때부터 신문이 부르주아 가정의 작은 백과사전 노릇을 하게 된다. 당연히 흥미 위주의 기사들도 많이 실렸는데,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연재소설이었다.


    필자만 해도 그런 기억이 남아 있다. 어린 시절에 대문간에 배달된 종이신문을 가지러 나가고는 했는데, 집어든 그 자리에서 연재소설을 찾아 읽었다. 어제 치 이야기 이후가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런 신문의 연재소설 시스템은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정해진 원고량 안에서 어느 정도 기승전결을 거쳐야 하면서도 다음 회를 기다리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늘 과장되고 극적인 이야기 전개가 필요하다. 한 회 한 회를 그렇게 써나가다 보면 임기응변적인 서술 방식을 사용하게 되고, 끝없이 터지는 극적인 사건 때문에 등장인물의 성격 묘사나 줄거리 전개에 모순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다 보면 복선을 설정하고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동기를 설정하기가 어렵다. 장면 전환이나 등장인물의 변화가 억지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끔은 제대로 소개된 적도 없는 등장인물이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그 당시 연재소설 스타 작가들의 작품이 오늘날에도 살아남아 읽히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발자크는 대략 10년 동안 한 해에 한 편의 소설을 연재했다. 발자크의 소설에서도 그처럼 ‘이상한 전개’가 자주 발견되는데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연재소설은 경제적인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을 정도로 원고료가 많았다.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다녔던 발자크로서는 신문연재가 가져다주는 수입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문연재소설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만은 아니다. 연재소설의 인기 덕분에 문학은 처음으로 한 사회의 교양층 거의 모두에게 공인받으며 통일된 사회 감각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면 외젠 쉬는 ‘파리의 비밀’(1842)을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자본주의의 횡포를 비판하고 ‘고귀한 노동자’에게 열광하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파리의 노동자로 변장한 독일의 대공으로 현대의 슈퍼맨 같은 캐릭터이다. 그가 곤경에 처한 중하층민을 구해주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역시 사실주의적인 수법이 동원된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절절히 묘사했던 것이다. 그런 장면들이 당시 사회제도를 비판하는 역할을 했고, 독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주의적 경향을 가지게 되었다. 이 소설은 연재하는 동안에도, 책으로 출간된 뒤에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1848년의 2월혁명을 일으킨 사회주의 지도자들의 사고방식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물론 안토니오 그람시가 지적했던 것처럼, 이런 식의 영웅에 대한 대중의 열광이 파시즘의 뿌리가 되었으리라는 점도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 역시 이 소설을 비판했다. 사실을 너무 단순화했기 때문에 진실에 이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초상화가 아니라 캐리커처를 그린 셈이다. 영웅주의가 아니라 사회체제를 바꿈으로써 저절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외젠 쉬나 발자크의 소설이 엄청난 인기를 누림으로써 독자들이 문학을 그 사회의 거울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문학작품을 평가할 때 당대의 사회문제와 관련시키는 것을 ‘상식’이 되게 만든 것이다. 철학도 그랬지만 이런 식으로 서구의 문학은 부르주아지의 끊임없는 자기반성의 전통으로 자리잡게 된다.



    미국의 모더니즘

    너무 달랐던 미국의 모더니스트들

    미국의 모더니즘 소설까지는 짚어두는 것이 좋겠다. 세기말에 태어난 이 두 작가의 이름은 문학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1949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윌리엄 포그너(William Faulkner, 1897~1962)와 1954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어니스트 헤밍웨이다. 이들에게는 유럽의 작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점이 있다. 여기에 딱히 어떤 ‘이즘(ism)’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1962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 1902~1968)도 짚고 가자. 생몰을 보면 알겠지만 이 세 작가는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서 비슷한 시기에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셋은 아주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보여준다. 스타일뿐만 아니라 주제나 소재의 면에서도 그렇다.


    약자의 시선을 시대의 문제를! 존 스타인벡

    스타일로 보면 존 스타인벡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작가이다. 특히 잘 알려진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1939)는 구약성경에서 모세의 이집트 탈출을 연상케 한다. 이야기 구조와 스타일이 무척 닮았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짐 케이시라는 인물은 마치 예수 같고, 톰 조드는 사도 바울 같다.


    소설의 후반부에 가면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파업 주동자로 몰린 톰 조드는 예수 같은 인물이었던 짐 케이시를 죽인 파업 감시인을 삽으로 내리쳐 죽이고 어머니를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때 어머니는 아들을 다시 못 볼 뿐 아니라 소식도 듣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한다.


    “어머니가 보시는 곳이면 그 어둠 속 어디에나 제가 있을 거예요. 굶주린 사람들이 먹을 것을 위해 싸우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사람을 두들겨 패는 경찰이 있는 곳에도. 화가 나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 배고픈 아이들이 저녁 식사를 앞두고 웃음을 터뜨릴 때에도, 거기에 제가 있을 거예요. 우리 식구들이 스스로 키운 음식을 먹고 스스로 지은 집에 있을 때도.”


    존 스타인벡은 약자의 입장에서 세상의 부조리를 파헤치고 고발하는 글을 썼다. 거기에는 이런 식의 ‘인간적인 용기와 구원’이 느껴지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적인 구절이 자주 나온다. 이 장면은 현대의 팝송에도 그대로 쓰일 정도다. 노동자들의 ‘보스’로 통하는 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노래 ‘톰 조드의 유령(The Ghost of Tom Joad)’에 이 부분이 거의 그대로 쓰였다. 문장을 노랫말답게 다듬기는 했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로 보면 ‘공산주의자’의 작품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는 구절이었다. 그렇게 되면 매우 핍박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스타인벡도 잘 알았다. 그런 두려움에 출판사 편집자는 수정하자고 제의했지만 존 스타인벡은 거절했다. 작품은 출간된 뒤 보수층의 미움을 샀고 일부 도서관에서는 금서가 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분노의 포도’는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어 날개돋힌 듯이 팔렸고, 곧바로 영화화되었다. 그 역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존 스타인벡은 퓰리처상(1940)까지 받는다.


    필자는 ‘분노의 포도’를 읽으며 마르크스의 ‘자본론’(1867)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존 스타인벡이 교조주의적인 공산주의자였던 것 같지는 않다. 그의 또다른 장편 ‘의심스러운 싸움(In Dubious Battle)’(1936)에서 그런 점을 분명히 한다. 이 작품은 임금이 급락한 농장에 공산주의자가 들어가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파업하는 내용이다. 거기에는 의사 닥 버튼이 ‘관찰자’로 등장한다. 그를 작가의 분신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는 교조주의적인 어떤 주의(ism)를 신봉하지 않고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그들을 돕는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은 이런 식의 감동적인 휴먼드라마를 보여준다. 그런 그가 대중적인 지지를 받으며 작자로 성공한 시기는 자본주의의 위기였던 대공황 시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어는 정도는 시공간적인 한계가 있어 보인다.



    문학이론-해석학, 정신분석학, 해체론까지

    다양한 이론과 해석의 이유

    문학이론을 공부하면 작품을 읽은 뒤에 받은 충격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대개는 두 번 충격을 받는다. 우선 책 뒷부분에 실린 ‘해석’ 때문이다. 독자의 감상과 아주 동떨어진 듯한 평론가들의 감상을 읽으면 그들이 사용하는 관점과 언어가 별세계에서 온 것 같을 때도 있다. 요즘 들어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작품에 비하면 어렵다. 그들의 감상은 왜 그렇게나 별난 것일까? 문학이론을 공부하면서 쌓은 내공 덕분이다. 이론은 다양한 관점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미묘한 차이도 놓치지 않게 하고 넓고 깊게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두 번째로는 읽은 작품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대화할 때이다. 독서회를 한다면 많이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다른 관점에서 비판하는 이도 있다. 그 비판이 반박하기 어려울 정도로 논리적인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는 데도 ‘이론’을 공부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이론 공부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모두가 나름대로의 관점과 이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있지 말자. 이론을 공부하는 것은 나와 다른 관점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고 대화하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혹시 작품을 ‘즐기기만 할 뿐’ 해설도 읽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도 하지 않는다면 타인과 독서 경험을 공유해보기를 권한다. 그 과정을 통해 독서가 주는 만큼의 즐거움과 그 이상의 것을 얻게 된다. 더 나아가 작품의 미묘한 맛을 좀더 깊이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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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