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청 도서요약
   국내도서 요약 

나쁜 감정에 흔들릴 때 읽는 책

저   자
권수영 (지은이)
출판사
갈매나무
출판일
2024년 02월







  • 나쁜 감정은 무조건 나쁜 것일까요? 이른바 나쁜 감정으로 일컬어지는 대표적인 감정 6가지를 분석하고, 우리를 힘들게 하는 감정에 관한 다양한 상담 사례를 함께 살펴보며, 그 치유 과정을 들여다봅니다.



    나쁜 감정에 흔들릴 때 읽는 책


    사람의 마음이 ‘시스템’이라고?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시스템’은 의외로 복잡한 용어다. 그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쉽게 입에 올리는 단어이기도 하다. 국가에 시스템이라는 말을 붙이고, 사회에도 시스템이란 말을 붙이곤 한다. 이런 맥락에서 여러 개체가 모여 만들어진 집단을 시스템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리 간단치 않다. 일상에선 오히려 개인이 모여 만들어진 총합으로써의 단순 집단과 구별할 때 쓰는 용어로 ‘시스템’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스템이란 용어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시스템 사고’란 다양한 구성원의 상호작용을 이해한 다음 그 패턴을 관찰해 적절하게 대응하는 방식이다. 앞서 ‘선형적 사고’의 예로 말했던 ‘모던 타임즈’속 컨베이어벨트는 작업자의 작업 속도가 어떻든 이미 입력된 속도를 유지한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복잡한, 시스템적 사고가 가능한 인간이라면 각 작업자의 기능과 특성에 따라 기계 작동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나는 이제 인간의 시스템적 사고로 우리 마음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기를 제안한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 마음속 감정세계와 비슷한 시스템 구조를 갖춘 또 다른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바로 가족 시스템이다. 우리 안에 있는 ‘나쁜 감정’을 다루는 적절한 방법이 가족 내에서 ‘문제아’로 취급받는 구성원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과 배우 닮았기 때문이다.


    감정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

    전통적인 방식의 정신의학 연구는 한 사람이 어떤 심리적 위기를 경험하는 이유엔 큰 유발 사건이 있거나 개인의 타고난 성격 기질이 한몫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현재는 어느 학문 분야나 문제의 원인을 오직 한 가지라고 여기지만은 않는다. 그런데도 가장 유력한 원인을 찾아내려 하고 그 원인에만 목을 매는 경우를 보면, 아직도 선형적 인과관계를 따르는 모습이 여전한 것이 현실이다. 마치 자살의 원인을 우울증에서만 찾으려는 것처럼.


    1950년대 초 정신의학자들은 인공두뇌학 연구자들이 집중 연구한 시스템 사고의 영향을 받아, 당시 개인의 기질로 인한 정신질환이라고 믿었던 조현병의 발병 원인을 새롭게 이해하고자 하였다. 예컨대, 아이의 조현병은 가족 내에서 상호작용이나 소통에 어려움을 겪으면 더욱 극심하게 발병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 결과 정신의학자들은 시스템 사고를 적용하여 심리치료를 업그레이드한 ‘가족치료(family therapy)’를 태동시켰다. 아이만 따로 떼어서 심리치료를 하기보다는 아이가 가족 내에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가족 구성원 전체를 만나 봐야 한다는 것이 가족치료의 핵심이다. 한 아이의 심리적인 문제를 가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별개의 문제라고 여기면 시스템 사고는 가동되지 않는다. 가족 전체의 상호 역동 관계에서 아이의 문제가 드러났다고 보는 관점이 시스템 사고의 기본 맥락이다.


    가족들 사이에서 전혀 주목받지 못하던 막내딸이 갑자기 우울 증세를 보인다고 가정해 보라. 그때부터 막내딸 아이 한 명만을 진찰하여 진단하고 약물치료법을 제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다분히 선형적인 접근이다. 시스템적 접근을 위해선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상호작용하면서 혼란을 겪어온 막내딸의 역할과 가족 전체의 패턴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딸의 우울증 증상이 드러내는 가족 구성원 전체와 얽힌 역기능을 바로 잡아 아이를 제대로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 “늘 조마조마해서 한시도 못 살겠어요!”

    나는 불안하다, 고로 생존한다

    우리에게 기쁨이라는 감정만 있다면 어떻게 될지 한번 상상해 보자. 세상이 온통 행복감으로 가득 차고, 인간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부드러워지리라는 성급한 기대를 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럴까? 어떤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차량이 오가는 도로를 겁도 없이 건너려고 하면 어쩌랴. 극단적인 경우,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는데도 기쁘기만 하다면 정말 큰일이다.


    우리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한집에 사는 가족 구성원들에 대입해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기도 훨씬 쉽다. 흔히 어떤 감정을 나쁜 감정이나 좋은 감정이라고 나누고 심리학에서도 편의상 긍정 정서와 부정 정서를 나누기도 하지만, 사실 그런 분류 자체가 사람을 더 헛갈리게 한다. 마음속 시스템에서 유기적으로 관계하는 다양한 감정들의 상호작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불안은 다르다

    불안만 없어지면 살 것 같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런 꿈은 지금 당장 버리는 게 좋다. 사실은 그 정반대다.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두려움을 적절하게 느낄 수 있어서다. 불안이나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앞서 이야기했듯 길 건너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만 보고 인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누구나 이런 상황을 절대로 원치 않을 것이다.


    우리가 혼동하기 쉬운 대표적 감정이 두려움(fear)과 불안(anxiety)이다. 정신의학자들은 이 두 감정을 쉽게 구별하는 법을 알려 준다. 바로 감정을 유발하는 분명한 요인이 있느냐 없느냐 그 여부다. 먼저 분명한 환경의 위험이나 외부의 위협으로 인한 감정은 두려움이다. 마음속 시스템의 감정 인물들 중 가장 오래된 이를 찾는다면, 나는 단연코 두려움을 꼽을 것이다. 자신을 보호할 장비나 안전한 환경 없이 들판을 떠돌아다녔을 최초의 인류가 가장 먼저 경험한 일차적 감정은 바로 두려움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깜깜한 밤, 험한 산길을 별다른 안전도구도 없이 등반할 땐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불안은 특별한 이유나 구체적인 위협을 특정할 수 없어도 느끼게 되는 두려움의 감정이다. 군대 간 아들이 사고를 당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감정은 두려움이라기보다는 불안에 가깝다. 군대에 입대한 이들이 모두 치명적인 위험 상황이나 실제 전쟁의 위협 가운데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불안은 ‘이유없는 두려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정신의학적으로도 불안은 기분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문제 감정이라고 본다. 하지만 무조건 장애를 일으키는 나쁜 감정은 없는 법이다. 모두 과잉 기능이나 과소 기능의 결과로 보아야지, 감정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적절한 두려움이나 불안은 외부 위협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돕기 때문에 도움이 되면 모를까 전혀 해가 되지 않는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임원 코칭을 하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기업을 이끄는 리더들의 마음속 시스템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 감정은 다름 아닌 불안이었다. 이유 없는 두려움이 그들을 끝까지 현장에 남아 있게 했고, 남들보다 더 빨리, 더 먼저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고위직 리더들이 스스로 겪는 내며 현실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이런 마음속 불안 감정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인정하거나, 불안이란 감정을 고마워하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심한 경우, 자신의 마음속에 잠재된 이 불안이야말로 자신의 삶에서 반드시 없어져야 할 악당이라고 취급하는 경우도 많았다. 임원 코칭이 더 진행되면 간혹 고객들이 배우자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비밀 하나를 내게 알려 주곤 했다. 불안장애로 남몰래 의학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약물치료가 필요할 정도가 되면, 당연히 자신의 불안 감정을 큰 장애의 주된 요인이라 여길 법도 하다.


    하지만 불안 자체를 무조건 나쁜 감정 취급하고 없애 버리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그냥 덮어 버리려는 시도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 불안 덕분에 성과를 내고 지금의 자리에 왔는지도 모르는데, 무조건 악당 취급을 하면 불안 감정은 당연히 섭섭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마음속 시스템의 균형이다. 그래서 단순히 장애 요인을 제거하는 게 해답은 아니란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앞서 강조한 바와 같이 불안을 둘러싸고 얽힌 마음속 시스템의 다른 감정들도 함께 찬찬히 돌아보아야 한다. 그래서 불안이 심하게 자신을 괴롭힌다고 해도, 약물치료로 자신의 불안을 무조건 통제하려고만 하면 안 된다. 우리의 생존은 물론 개인적 성과 달성에도 나름 공헌을 해온 불안의 숨은 기능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상황을 바꾸지 않고도 불안을 조절하는 법

    외부세계가 주는 불안, 그게 다가 아니다. 세계 도처에 퍼지는 전쟁의 불안, 지속적인 경제 불안, 혹은 젊은 세대가 겪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한 개인의 불안 전부를 차지하는 게 아니다. 불안의 원인을 외부 현실에서만 찾는다면 우리는 자신의 내면 시스템의 현실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외부세계가 주는 불안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내면 시스템은 조금 다르다. 진로나 학업이 주는 불안을 넘어 개인을 공포나 극단적인 결과로 몰아가는 불안이 느껴진다면 마음속 시스템의 역동을 함께 살펴야 한다.


    불안 감정은 내면 시스템으로 이끄는 가이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음속 시스템의 관점에서 보면 불안이라는 감정은 유배되어 있는 여러 감정을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안전하게 지키려는 관리 기능을 한다. 이런 불안의 내면 시스템 보호 기능을 우리가 충분히 이해하고 인정하면 보이지 않던 내면세계가 열린다. 결국 불안이란 감정은 우리를 치유해야 할 온건파 감정으로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



    무력감 “만사가 귀찮고 아무 일도 하기 싫어요!”

    무력감은 배신감에서 자란다

    청소년 자녀들이 부모와 대화하면서 내뱉는 말은 어느 집이나 비슷하다. 뭐가 그리 싫은지 입만 열었다 하면 “싫어!” “몰라!”를 외쳐 댄다. 어쩌다 인터넷에 사진을 올리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아서 물어보면, 돌아오는 건 무성의한 한마디 “몰라!”다. 자녀의 무신경한 반응에 부모는 자존심도 상하고 속도 탄다.


    입만 열면 몰라, 싫어를 외치는 아이들의 마음속 시스템은 대개 비슷한 감정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부모는 자녀의 이러한 감정이 그동안 부모의 행적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점을 전혀 알지 못한다. 아이는 진짜 모르는 게 아니다. 아이의 마음속 시스템에서 유배된 어떤 감정을 보호하기 위해 무력감의 매니저가 작동하고 있을 뿐이다. 예컨대, 중학생인 딸의 옷을 사려고 엄마와 딸이 함께 쇼핑을 한다고 상상해 보자. 모처럼 딸의 옷을 사기 위해 쇼핑을 나선 엄마는 딸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 옷이니까, 네가 입고 싶은 옷으로 골라.”


    과연 엄마의 말을 믿어도 될까? 당연히 아이들은 처음엔 그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그런데 고르는 옷마다 엄마의 검열에 걸리고 만다. 치마는 너무 짧아서 안 되고, 색깔이 너무 유행을 타서는 안 된단다. 고르고 고르다가 결국 엄마 눈에 쏙 드는 옷이 나타나면 썩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백기를 들고 사는 수밖에 없다 웬만큼 투지가 있는 청소년이면 한두 번쯤 더 엄마랑 쇼핑 실랑이를 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에 엄마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철통 지갑은 결코 열리지 않는다는 뼈아픈 경험을 반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아이의 마음속 시스템에서는 기죽은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한 번 속지, 두 번 속지는 마라!”


    마음속 시스템의 매니저가 가진 굳은 신조 중 하나가 바로 ‘한 번 속지, 두 번 속지 말 것!’이다. 매니저는 똑같은 실패 경험이 반복되면서 강렬했던 욕구가 좌절되고 나면 새로운 명령을 내린다. 욕구의 강도를 낮추라는 명령이다.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보다 차라리 그편이 낫다고 보는 거나 그렇게 사고 싶던 옷이 있어도 엄마가 사 준다고 하면 갑자기 관심이 시들해진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엄마 몰래 사야겠다는 생각도 점점 귀찮아진다. 이는 모두 매니저의 적극적인 활동 때문이다. 매니저는 마음속 시스템 내에서 점점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라는 염세적인 확성기 방송을 하기 일쑤다. “네가 백날 그렇게 떼를 써봐라, 엄마가 사 주나?” “어차피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없어! 옷 하나 사는 것도 네 맘대로 안되잖아?”


    누리꾼들의 신조어로 처음 등장한 ‘귀차니즘’은 그저 게으른 청소년들이 이유도 없이 만사가 귀찮아지고 의욕이 없어져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현대인의 무기력증은 실은 가족 시스템과 깊이 연관된 경우가 많다. 특히 청소년들의 ‘무력감’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자동회로의 결과로 발생하는 감정일 수 있다.


    물리적 거리보다 심리적 독립을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30대가 된 다 큰 자녀가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 머뭇거리며 부모의 선택에 의존해도 별로 놀라지 않는 부모들이 꽤 많다. 왕자님, 공주님만 있는 요즘 가정에서 부모가 모든 것을 다 해 주다 보니, 자녀도 부모가 성인이 된 자신을 계속 챙겨주고 보살펴 주기를 기대하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부모도 그런 자녀들이 그리 밉지 않다는 점이다. 성인이 되어도 독립하려 하지 않고 부모의 품속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캥거루족’이 좋은 예다. 심지어 어떤 캥거루족의 부모는 자식이 평생 자신의 배 주머니 안에 있어도 괜찮다는 듯이 행동한다. 그리고 이런 상호의존은 불쾌한 게 아니라 서로를 간절히 원하는 긍정적 관계이리라 철석같이 믿는다. 자녀의 심리적 독립은 점점 지연된다. 30대 자녀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하고, 자녀의 하루 일정과 데이트 장소까지 꿰차고 있는 자신을 한없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엄마도 있다. 그것이 자녀와의 높은 친밀도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과연 가족의 마음 건강을 진단하는 전문가의 눈에는 이런 현상이 바람직할까?


    가족 시스템 치료에서는 가족 구성원들의 가장 바람직한 내면 상태를 ‘분화(differentiation)’라고 표현하곤 한다. 여기서 ‘분화’라는 한글 번역이 약간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 물리적인 거리를 두는 것이 분화라고 착각하기 쉽도록 말이다. 실은 분화란 마음속 시스템에서 진행되는 심리적 독립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부모와 자녀가 서로 분화되었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자녀가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부모 마음대로 하지 않고 아이의 느낌과 생각을 존중할 때, 아이는 비로소 분화를 진행한다.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존중받는 상호 과정’이 바로 분화의 핵심이다. 마음속 시스템의 관점에서 보면 분화란 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불안 전력을 낮추는 일이다. 불안한 두 사람은 절대로 분화를 경험할 수 없다. 분화의 시기를 놓쳐, 미분화(未分化)된 두 가족 구성원은 때때로 서로 너와 내가 구분되지 않을 만큼 가깝다고 느끼지만, 실은 상대방과 관련한 불안의 수준이 지나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족 구성원들이 무력감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가족 시스템 내에서 분화를 경험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자녀를 통제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만 같다는 불안을 내려놓아야 한다. 부모의 불안이 적절하게 조절될 때, 자녀 마음속 시스템의 매니저도 무조건 부모의 통제에 따라야 한다는 불안 수준을 낮출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무기력을 학습하고 무력감을 느끼지 않으려면 일찍이 가정 내에서 분화를 배워야 한다. 자녀에게 무력감을 가장 쉽게 안겨줄 수 있는 대상이 부모이듯이, 분화를 가르칠 수 있는 이들도 다름 아닌 부모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 자신부터 스스로의 마음속 시스템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다 큰 자녀를 통제하려고 할 때마다 부모 스스로 먼저 자신의 불안을 헤아려야 한다. 가능하면 어릴 때부터 부모가 자녀의 개별 감정을 존중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자녀의 마음속 시스템 매니저도 훨씬 너그러워진다. 부모가 자녀를 어린아이처럼 통제하려고 들지 않으면 과도한 모멸감도 생기지도 않고, 모멸감을 굳이 구석에 몰아넣고 방어할 필요도 없어진다.



    내 마음을 고해상도로 들여다보는 연습

    감정은 치료의 대상이 아니다

    나는 감정을 다루는 데 있어서 ‘치료(therapy)’보다 ‘코칭(coaching)’이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치료라 하면 뭔가를 없애려는 방식처럼 보여서다. 우울증 치료, 혹은 불안장애 치료는 우리 안의 무력감과 불안감을 하나의 문제로 보고 이를 없애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그러나 감정은 치료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 안에 불필요한 감정이란 하나도 없다. 다만 과도하게 나서서 기능하는 감정과 숨겨진 감정이 우리를 불편하게 할 뿐이다.


    그러니 내면의 감정들을 시스템의 관점에서 조감하는 코칭이 필요하다. 운동선수만 코칭이 필요한 게 아니다. 우리도 마음속 시스템의 적절한 운영을 위한 적절한 코칭이 필요하다. 좋은 코치는 선수의 단점을 무조건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 선수 자신도 모르는 숨은 강점을 찾아서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능숙한 코치의 역할이다. 사실 선수가 가진 다양한 기술 중에 불필요한 기술은 하나도 없다. 과하게 사용하는 기술 때문에 덜 사용하는 기술이 존재할 뿐이다. 훌륭한 코치는 그러한 기술의 불균형을 잘 다루는 전문가다.


    마음 내시경의 해상도를 높이는 방법

    앞서 마음속 시스템을 들여다보는 내시경에 대해 말한 것을 기억하는가? 이 마음의 내시경에는 ‘호기심’이라는 렌즈가 필요하다. 호기심이란 부정적인 판단을 중지하고 최대한 편견 없이 이해하려는 태도다. 이 호기심이란 렌즈에는 단계가 있다. 먼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단계부터 시작해 보자.


    한 아이가 갑자기 노트를 갈기갈기 찢기 시작한다. 아이의 이러한 행동은 어른들에게 부정적인 판단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런데 주위에 이러한 행동을 바라보는 어른들이 몇 명 있다고 가정해 보자. 첫 번째로, 아빠는 눈앞에 보이는 아이의 행동을 즉각적으로 판단하고 지적한다.


    “아니! 너 지금 뭐 하는 거니? 그렇게 노트를 찢어 버리면 안 되지! 못써!”


    이른바 기성세대의 ‘지적질’은 아이에게 더 큰 감정적 동요를 불러일으킨다. 지적질의 가장 큰 맹점은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반응은 주로 눈에 보이는 상대방의 행위 자체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상대방의 행위나 감정에 호기심을 갖기 위해서는 일단 즉각적인 판단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이때의 판단이란 이미 정죄와 비난이 도사린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엄마는 지적질을 하지 않고 대신 아이의 행동에 대해 궁금해 했다고 가정해 보자.


    “너 왜 그러니? 도대체 왜 그렇게 멀쩡한 노트를 찢어 버리는 건지 좀 말해 봐!”


    엄마의 호기심은 어떻게 보이는가? 판단을 일시 중지하고, 아이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충분히 궁금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이는가? 그런데 왠지 엄마의 의문형 문장에도 판단이 전제된 듯 느껴진다. 이유가 뭘까? ‘왜’라는 의문형 속에는 다분히 판단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라는 말의 배우에는 ‘그러면 안 되는데’라는 비난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특히 아이와 대화할 때는 ‘왜’라는 말 대신 ‘무엇’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 “무슨 일이 있는지 말해 줄래. 내가 뭘 도와줄까?”이처럼 상대방에게 일어난 일을 궁금해 하고, 내가 상대를 돕기 위해 할 일을 궁금해 하는 대화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너 왜 그러니?”라고 물으면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아이는 행위의 이유를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이유를 캐묻는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는다. 아이는 이 질문을 자신의 감정 상태를 궁금해하는 비판단적인 태도로 여기지 않는다.


    세 번째로, 아동상담사는 노트를 찢고 있는 아이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보았다고 가정해 보자.


    “네 마음속에 무슨 일인가 일어난 것 같구나.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될까? 어떤 느낌이 들어서 노트를 그렇게 찢도록 만든 것 같은데, 그 느낌을 알고 싶어서 그래.”


    이 세 번째 태도가 바로 마음의 내시경에 필요한 ‘호기심’이다. 이 호기심 렌즈에는 판단이나 비난이 철저하게 배제된다. 그래서 보다 투명한 화질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호기심을 유지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모든 감정이 나를 위해 존재함을 깨닫는 연습

    나의 모든 감정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

    우리 내면에도 깊이 유배된 우리 자신의 부적절한 모습과 연관된 감정들이 숨겨져 있다.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받아들이고 귀한 존재로 여겨준다면 가장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우리 스스로 내면에서 유배된, 꽁꽁 얼어붙은 모습을 찾아내 먼저 안아주어야 한다. 그러면 내면세계에도 봄이 찾아온다.


    우리가 어떤 기억이나 느낌을 유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다. 내면 시스템은 늘 우리를 지나치게 염려해 외부의 공포로부터 안전하게 유지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기억이 오래 숨겨져 있으면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이 모두 불편해지고, 때로는 그 짐이 너무 가혹하다. 심리상담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전에는 내 안에 얼마나 많은 감정과 기억들이 유배되어 있는지 모를 수 있다. 혹시 아래와 같은 느낌이나 마음이 자꾸 빠져든다면 그 감정은 어딘가 모르게 유배된 기억과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제 하루에 한 번씩 다음과 같은 주문을 외워 보자. 온몸이 편안한 상태로 누워서 하면 제일 좋다. 내 안에 과거 ‘나의 한 모습’이 유배되어 있다고 상상하고, 내 안에 있는 나에게 말을 건네 보자. “넌 분명한 이유가 있어서 이 세상에 온 존재야. 내가 너를 안아 줄게. 외로움도 슬픔도 수치심도 나랑 같이 나누자! 나는 너를 내 안에 더 이상 버려 두지 않을 거야!”


    앞서 소개한 코칭 전략인, 우리 마음속 시스템을 철저하게 관리해 왔던 매니저를 먼저 인정하고 그들의 불안을 잠시 내려놓게 하면 좀 더 쉽게 유배된 기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동안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뼈아픈 기억이 갑자기 생각나기도 한다. 그럴 때는 놀라지 말고 그냥 생각나는 그대로 기억을 바라보라. 눈물이 흐를 수도 있다. 좋은 징조다. 부모에게 모진 비난을 받았던 그때 그 아이, 아빠에게 매를 맞아 얼음처럼 굳어버린 그 아이, 한 명도 아는 척해 주지 않아 학교에서 유령처럼 존재해야 했던 그 아이, 그 아이가 보이면 그대로 맞아주어라. 이때 내가 그 아이를 그저 꼭 안아 주는 상상만 해도 미세한 신경 세포까지 모두 떨리는 듯한 뜨거운 공감과 공명을 경험하게 된다.


    이제 천천히 그 아이의 무거운 짐을 느껴 보자. 그 어마어마한 무게의 짐을 느끼고 나면, 그 앞에 모닥불을 피우고 재가 될 때까지 그 짐을 모두 태워 버리자. 그 아이의 표정이 가벼워지는 걸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아이는 이제 더는 내 안에 꼭꼭 숨어 가택연금 상태로 지낼 필요가 없다. 그때야 비로소 그 기억은 변연계의 기억저장소인 해마에 다시 기억해도 괜찮은 기억으로 편입된다. 큰 상처와 충격 때문에 오래전 내면 구석으로 유배한 기억과 그 기억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는 내가 꼭 다시 만나고 품어야 할 대상임을 잊지 말자. 혼자서는 힘들 수도 있다. 필요하면 심리상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보는 것도 좋다. 누구든지 유배한 부분과 이를 방어하려는 강경파들이 지나치면 마음속 시스템의 과부하를 막을 수 없다.


    나는 그간 심리상담을 통해 오랫동안 유배해 놓았던 자신과 만나는 수많은 내담자를 목격해 왔다. 내담자들이 표현하는 이러한 만남의 감격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오묘하다. 그들의 고백 중 공통점은 “자기 안에 있는 모든 생각이나 감정, 욕구나 감각들이 지금껏 모두 자신을 위해 존재했었다”라는 점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창피했던 기억, 무력했던 내 모습도 모두 나의 일부분이고, 이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내가 버림받거나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바로 힐링의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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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