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청 도서요약

누군가의 바다 건너 삶은 낯선 이방의 기록이 아니라, 이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와 세계를 다시 그리기 위해 읽어야 할 해역을 이야기합니다.

재일한인의 해역인문학: 바다를 건너는 기억의 구조

이동과 공간: 바다가 지닌 사회사적 밀도

“일제강점기 한인의 도일은 식민지와 피식민지 사이의 비대칭적인 힘의 구도 속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은 실제 이들의 이동을 가능케 한 해역(海域)을 가로지르던 물리적 기반의 중요성이다.”

해역은 단지 배가 떠다니는 물길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역사, 권력과 기억이 교차하는 복합적 공간이다. 재일한인의 이동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부관연락선을 포함한 실질적 해상교통의 정비가 있었다. 이 인프라는 일본 제국의 식민지 경영이라는 큰 틀에서 구축된 것이지만, 그 안에서 이주자들은 자율과 비자율의 중간 지대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이동은 강제성과 자발성이 혼재된 경험이었고, 그 자체로 식민성과 근대성의 모순을 드러내는 행위였다.

또한 바다를 건너는 경험은 단지 지리적 이동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감각, 사회적 지위, 언어, 정체성의 재배치를 수반하는 총체적 변환이었다. 해역은 그처럼 재일한인의 생애 전환기를 담아내는 살아 있는 매개 공간이자, 국가와 민족의 이분법적 경계를 교란시키는 장소로 작용했다.

부관연락선과 디아스포라의 정체성

“부관연락선은 한인과 일본인의 이주 동기, 과정, 결과의 차이가 극명하게 표출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이동하는 자와 이동하지 않는 자의 상호 관계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그들'에 대한 구별 짓기가 이루어지며, 이러한 움직임이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그리고 심리적 요소와 융합하여 끊임없이 재생산, 변형되는 디아스포라 공간의 특징과 일맥상통한다.”

부관연락선은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문화적 거울과도 같은 기능을 했다. 이 선박 위에서는 신분, 언어, 복장, 태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와 '그들'이 조우했고, 긴장과 구별, 때로는 연대의 경험이 축적되었다. 이 공간은 일본과 조선을 잇는 실질적 경계지였지만, 동시에 경계 너머를 상상하게 만드는 상징적 공간이기도 했다.

여기서 디아스포라는 단지 고향을 떠난 타향살이의 서정이 아니다. 그것은 구조화된 차별, 귀속되지 않는 삶, 그리고 지속적인 변형의 과정을 의미한다.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이러한 경계적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교섭되고, 각인되며, 때로는 저항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부관연락선에서 형성된 감각은 이후 재일한인의 도시 정착, 교육, 노동, 정치 참여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산과 산동네: 이동의 흔적이 남긴 도시적 지층

“해역과 산동네를 교차시키는 작업은 해역인문학적 시각에서 부산의 도시 형성의 역사를 재고찰하는 시도임과 동시에 부산의 미래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전제되어야 하는 ‘부산항을 둘러싼 다양한 이동의 역사 그리고 네트워크의 형성과 변화 및 부산이란 공간 구조에 대한 역사적 탐색’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부산의 산동네는 ‘가난한 동네’라는 익숙한 프레임 너머로 접근해야 한다. 그것은 산업화와 전쟁, 이주와 귀환이 중첩된 역사적 장소이며, 물리적 지형이면서도 사회적 기억이 축적된 장소이다. 항구도시 부산은 단지 물류 중심지가 아니라, 식민지기부터 한국전쟁, 산업화 시기를 거쳐 다양한 이동의 수렴점이자 발산지로 기능해 왔다.

산동네는 해역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삶을 뿌리내린 첫 번째 공간이었고, 동시에 다시 해역으로 나아가는 출발지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곳은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경계이자, 계급과 문화가 교차하는 접점이었다. 이러한 시선은 도시를 단지 행정구역이나 경제지표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동과 기억이 만든 살아 있는 유기체로 바라보게 한다.

냉전과 희생의 구조: 재일학도의용군이라는 궤적

“재일학도의용군의 역사는 이들이 모국을 위해 희생했을 뿐 아니라 '모국에 의해 희생된' 측면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재일학도의용군의 결성과 참전, 그리고 귀환/잔류 과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북아를 뒤덮었던 냉전 패러다임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지배하고 영향을 미쳤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재일학도의용군의 이야기는 국가에 의해 소환된 개인, 그리고 다시 국가에 의해 외면당한 개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은 제국의 말기와 해방 후의 혼돈, 그리고 냉전의 이념 전쟁 속에서 전략적 존재로 동원되었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는 쉽게 지워졌다. 이들의 이동은 단지 지리적이거나 병역적 경험이 아니라, 모국과 조국 사이에서 정체성과 귀속을 끊임없이 재구성해야 했던 삶의 여정이었다.

그들의 귀환은 단지 물리적인 복귀가 아니라, 사회적 통합과 문화적 포용의 실패를 드러낸다. 이들은 귀환한 곳에서조차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정체성의 공백과 갈등을 경험했다. 냉전은 그저 외교의 프레임이 아니라, 개인의 일상과 기억을 구성하는 지배적 장치였으며, 이들의 삶은 그 장치 속에서 파편화되었다.

해역이라는 시선: 육지와 바다를 엮는 인문적 교차점

“'해역'은 넓은 면으로서의 '바다'인 해양, 그리고 개별 점으로서의 '항구 도시'와 달리 '바다'와 육지를 어우르며 그곳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차원, 내용의 인문네트워크의 존재를 특징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재일한인과 같이 '바다'를 건너 살아가고 이어져 온 사람들을 고찰하는 작업에서 해역인문학적 접근은 유효하다.”

해역은 단순히 수역이나 경제 통로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이 흘러가는 경로이며, 권력과 정체성이 교차하는 복합적 공간이다. 재일한인의 역사는 그 해역에서 이뤄진 인문적 실천의 축적이라 할 수 있다. 육지 중심의 역사 기술이 간과했던 해양적 감각은 이제 인문학의 새로운 틀로 제안되고 있다.

해역인문학은 경계를 해체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을 연결하며, 새로운 공동체성과 사유방식을 가능케 한다. 이 틀을 통해 바라본 재일한인의 삶은 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천이자, 주변으로 밀려난 이들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중심성이 된다.

바다를 기억하는 방식, 해역을 사유하는 실천

『재일한인의 해역인문학』은 바다를 지나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을 따라가며, 그 경계와 공간이 어떻게 삶을 구성해왔는지를 되짚는다. 이 책은 재일한인을 단지 역사의 피해자나 이방인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은 해역이라는 공간 속에서 삶을 조직하고, 기억을 남기고, 도시를 형성한 주체였다.

인문학적 시선으로 이들의 궤적을 따라가는 일은 단지 과거를 복원하는 작업을 넘어, 현재와 미래를 향한 공간·사회·기억의 지도를 새로 그리는 작업이다. 해역은 그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시간과 관계, 그리고 사유의 방법이 교차하는 장소이다. 이 책은 그 해역을 읽는 하나의 방식이자, 새로운 인간학적 시선을 제안한다.

* 핵심 메시지

재일한인의 이주는 단순한 국외 이동이 아니라, 식민과 탈식민, 근대성과 정체성의 교차 지점이다.

해역은 단지 공간이 아닌, 삶의 궤적과 사회적 기억이 축적되는 인문학적 지층이다.

바다를 건넌 사람들의 경험은 현재 도시, 경계, 공동체를 사유하는 새로운 틀을 제공한다.

* 추천

이 책은 육지 중심의 역사 서술이 놓친 바다의 기억을 되살려낸다.

경계 위에서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는, 곧 오늘날 이주의 조건을 성찰하는 열쇠다.

해역을 사유하는 이 책은 도시와 정체성, 그리고 인문학의 지평을 확장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