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

저   자
윤태진 외
출판사
몽스북
출판일
2023년 02월
서   재







  • 게임 세계, 게임 산업 전반에는 성적 불평등 구조가 만연합니다. 남성은 당연한 존재였고, 여성은 예외적 존재였지요. 젠더 이슈와 게임 이슈를 교차시켜 ‘뜨거운 감자’를 건드려봅니다.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


    게임하는 여성-여성 게이머는 보이지 않는다

    섹시하거나, 어리바리하거나, 거짓말쟁이거나

    밈이 된 여성게이머

    미국 사회에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흔히 백인(white)과 유색 인종(colored)이라는 두 종류로만 구분되곤 한다. 이는 모종의 관습과 이념이 쌓여 사람들을 ‘백인’이라는 묵시적 규범과 나머지 (색깔 있는) 명시적 타자로 구분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얼굴과 몸이 보이지 않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온라인 게임에서 모든 게이머는 기본적으로 남성이라고 전제된다. 게임 세계의 남녀는 그저 반대항에 존재하는 두 집단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해서 눈에 띌 이유가 없는’ 남성과 ‘남성이 아닌, 그래서 눈에 띄는’ 여성으로 구분된다. 여성 게이머는 예외적 존재이다. 수적으로 많고 적음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텍사스공과대학 교수인 메건 콘디스(Megan Condis)는 온라인 게임 문화 속의 젠더 갈등을 연구해 왔다. 그는 인터넷 게시판이나 소셜 미디어에서 널리 확산된 여성 게이머 밈을 분석했는데, 인기 있는 밈에서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퍼트리는 여성상을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섹시한 보조, 어리바리한 초보, 그리고 게임 덕후인 척하는 거짓말쟁이. 여성 게이머는 이 세 종류 중 하나로 묘사된다.


    ‘밈(meme)’이란 사람들 간에 퍼지는 바이러스 같은 문화적 아이디어 조각이다. 얼마나 문화적으로 적합한지에 따라 확산되기도, 퍼지지 못하고 소멸되기도 한다. 밈은 지금 사회에서 무엇이 중요한 이슈가 되는지 반영한다. 그러니 콘디스의 밈 분석 결과는 “실제로 대부분의 여성 게이머들이 이런 세 종류밖에 없다.”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성 게이머가 “이 세 종류로 대표된다.”고 막연하게 믿고 당연시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섹시한 보조’라는 오래된 문화코드

    ‘섹시한 보조(sexy sidekick)’는 남성 게이머의 조연이자 로맨스 상대이다. 배트맨을 도와 빛을 내주는 로빈이고, 마술사의 신비로운 능력을 포장하는 미녀 보조이다. 잠시 경쟁의 상대일 수는 있으나 동등함이 오래가지 않는다. 이 유형은 남성의 능력이 우월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MMORPG에서 대부분의 여성 게이머들은 서포터나 힐러 역할군을 맡는 경향이 있다. 주인공 격인 딜러(dealer)포지션을 맡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는 전통적으로 힐러(healer)나 서포터 캐릭터가 여성으로 표현되어온 게임 내러티브의 영향도 크다고 생각되지만,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여성이 서포터를 맡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보편적 믿음이다. 일부 여성 게이머들도 이러한 믿음을 수용한다. 그래 왔고, 당연했고, 익숙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여성은 남성의 게이밍 능력으로 쟁취하는 보상물이 되거나 그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상징물이 되기도 한다. 사냥에 뛰어난 수렵 시대의 남성들이 멧돼지와 미녀를 함께 쟁취하는 모습은 신화나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스토리이다. 카지노에서 재력과 매력을 과시하기 위해 아름다운 미녀를 옆에 앉힌 남성의 모습 또한 익숙한 영화 장면들이다.


    물론 이 역시 ‘그러려니’하고 믿는 이미지들이다. 실제로 원시 수렵 시대에 여성들도 일상적으로 대형 동물 사냥에 참여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남미 안데스 산맥에서 발굴된 사냥꾼 무덤에 대한 인류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이 전체 사냥 인력의 30~5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 13만 년 전부터 8천 년 전에 이르는 무덤 발굴 기록을 분석한 결론이다. 하지만 밈의 힘은 사실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믿음이나 패러디에 대한 공감으로부터 나온다. 당구나 볼링을 칠 줄 모르지만 남자 친구를 따라 큐나 공을 잡고 어설프게 플레이하는 여성의 모습, 규칙도 잘 모르지만 야구장에 가서 남자 친구의 세세한 설명을 듣고 있는 여성의 모습. 이는 남자 친구 따라 덩달아 게임을 (미숙하게) 하는 여성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오래된 ‘섹시한 보조’의 전형이다.


    현실에 대한 남녀 간의 인식 차이는 크다. 2018년에 진행된 우리나라 게이머 대상 조사에서 “여성들은 게임을 왜 하는가?”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주로 남자 친구들이 하니까 자기들도 한다.”거나 “남자들의 관심을 받으려고 게임을 한다.”는 진술문에 대해 여성 응답자 중 각각 37.6%와 52.3%가 “전혀 아니다.”라는 ‘강한 부정’으로 답했다. 하지만 남성 응답자 중 같은 답변을 한 비율은 각각 24.2%와 34.6%였다. ‘섹시한 보조’ 유형은 현실에서보다 남성들의 머릿속에서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존재이다.


    ‘혜지’에 대한 두 가지 편견

    놀이가 된 혐오의 표현

    2019년 <리그 오브 레전드>의 한국 리그 유튜브 채널(LCK; 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의 한 영상에 게임 커뮤니티 밈인 ‘혜지’가 언급되어 논란이 일었다. 여성스럽고 평범한 느낌을 주는 이름의 혜지는 <롤>의 스테레오 타입 적인 여성 게이머에 대한 멸칭으로 사용되곤 한다. 해당 영상에서 혜지 밈이 여성 혐오적이라는 지적에서부터, 혜지가 실제로 존재하는 부류의 유저들을 지칭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의견, 그리고 공식 게임 채널에서 커뮤니티 유행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 등 다양한 반응이 뒤따랐다.


    게임 커뮤니티에서 주로 상상되는 혜지의 모습은 이렇다. 혜지는 스스로 재미있어서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 친구의 보조를 맞춰주기 위해 게임을 한다. 그래서 혜지는 오로지 남자 친구에게 도움이 되는 서포터 챔피언밖에 플레이하지 못하며, 그마저도 잘하지 못해 팀원들에게 민폐를 끼친다. 혜지는 게임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고 게임을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받기만을 바란다. 그래서 혜지는 성능이 좋은 챔피언보다는 귀엽고 예쁜 외양을 가진 여성 챔피언을 주로 선택하여 플레이한다. 요즘에는 서포터역할을 하는 플레이어라면 성별을 막론하고 혜지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상황에 따라서는 남성 플레이어들이 혜지로 불리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여성 플레이어들이 서로를 혜지라 부르는 일도 생긴다. 중요한 것은 실제 플레이어의 성별이 아니라 별 의심없이 고민 없이 ‘여성적’이라고 전제하는 특정 챔피언, 특정 플레이 스타일, 특정 행위들이 있고, 이 존재나 행위들은 대개 무능력, 불공정, 얄미움 등의 숨겨진 의미와 만난다는 점이다.


    암묵적으로 합의된 게임 속 성 역할

    전통적으로 공격적, 능동적, 이상적 가치가 남성성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여겨져 온 반면 방어적, 수동적, 감정적 가치는 여성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사회적인 인식 때문인지 경쟁적이고 전투적인 장르의 게임에서는 팀 안에서 공격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딜러 클래스나 톱 포지션에 비해 서포터 역할은 수동적이고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즉, 여성 게이머들은 “여자는 서포터를 해야 한다.” 혹은 “여자이기 때문에 서포터가 아닌 다른 역할은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압력을 받는다. 그러나 여성 게이머가 이 같은 편견에 못 이겨 서포터 역할을 플레이하더라도 부정적인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성 유저가 서포터 역할을 플레이하고 더구나 실력이 출중하지 못하다면, 그는 게임에 대한 기여도도 없으면서 여성성을 내세워 개인적 이익을 취하려는 뻔뻔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견에 맞서 “여성 게이머라고 해서 전부 서포터 유저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하거나 “여성 게이머 중에도 딜러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반박하는 것은 당연히 일리가 있다. 실제로 서포터 역할이 아닌 다른 공격적인 역할을 하는 여성 중에도 실력이 좋아 순위권에 드는 게이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가 효과적인 반박 전략이 될 수도 없다. 여성도 딜러를 잘할 수 있다는 주장 자체가 이미 힐러 기능을 폄하하는 뉘앙스이고, 이는 곧 (주로 힐러를 담당하는) 여성 게이머의 열등함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중 폄하가 진행되는 셈이다. 여성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편견이 작동하는 동시에, 많은 여성이 수행하는 역할은 중요하지 않다는 편견도 작동하는 것이다. 딜러 역할을 좋아하고 잘하는 여성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서포터 역할을 좋아하고 잘하는 여성들이 분명 존재한다. 이들을 딜러 유저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게이머로 볼 이유는 없다.


    게임에서 서포터가 사라진다면

    만일 이 같은 게임에서 서포터 역할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플레이어가 서포터 역할을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 플레이어가 상대방의 공격을 받고 쓰러지는 시간이 더 빨라질 것이고, 그에 따라 캐릭터가 리스폰 되어 다시 전장과 던전으로 달려가는 시간이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모든 플레이어가 스스로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붕대나 물약과 같은 아이템을 찾거나, 만들거나, 구입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게 될 것이다. 전투는 짧아지고, 전투를 위한 준비 시간은 더욱 길어질 것이다. 공평하게 모두가 조금씩 체력 회복 스킬을 가지게 되거나 혹은 아무도 체력 회복 스킬을 가지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아줌마는 집에 가서 밥이나 하라고 하듯, 여성 게이머들 (혹은 엉겁결에 여성으로 간주된 남성 서포터 플레이어들)에게 힐러나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결국 게임 세상 속 ‘서포터의 위기’를 만들어낼 것이다. 서포터 역할이 없다면 죽기 직전 힐러로부터 보호막이나 체력 회복 스킬을 받아 간발의 차이로 기사회생할 수도 없고, 탱커들이 다른 팀원들의 빵빵한 지원을 받으면서 상대 팀의 진영을 밀고 나갈 수 없다. ‘혜지’는 여성 게이머에 대한 부당한 일반화를 보여주는 호칭이기도 하지만 서포터 역할에 대한 무시와 폄훼를 반영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여성 힐러’는 ‘딜러를 맡아서는 안 되는 열등한 여성’과 ‘딜러에 비해 무가치하고 무용한 힐러라는 역할’이라는 두 가지 편견을 동시에 반영하고 전파하는 단어가 된다. 이 와중에 서포터 역할의 남성 게이머도 ‘여성과 진배없는’ 하찮은 존재가 돼버리곤 한다. 남성 전업주부가 ‘한심한 남자’로 인식되는 현실의 거울상이다.



    게임 속 여성-게임에서 여성이 재현되는 방식

    친애하는 나의 분신, 게임 캐릭터

    재현이란 무엇인가

    게임 속 캐릭터는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재현한다. 재현 대상은 동물이나 괴물, 기계일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인간이다. 텔레비전 법정 드라마에서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법조인’을 재현하듯 게임에서는 컴퓨터로 그려진 캐릭터가 누군가를 재현한다. 직업이 사냥꾼일 수도, 카레이서일 수도, 농부일 수도 있다. 그리고 성별이 여성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게임은 여성을 어떻게 재현할까.


    ‘재현(representation)’은 “앞으로 가져오다, 전시하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repraesentare’에서 유래한다. 전통적인 예술론에서 말하는 모방(mimesis)과는 유사하면서도 차이가 있다. 모방은 재현의 한 방법이긴 하지만 모든 재현이 모방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 철학이나 법 영역에서의 ‘재현’은 대의 혹은 대표로 번역된다. 근대 국가의 정치적 주체인 시민은 투표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라는 하나의 인격에 동일시된다.


    오늘날 미디어 비평에서 말하는 재현은 미학과 정치 철학에서 말하는 재현 양쪽 모두와 관련이 있다. 게임 텍스트도 마찬가지다. 재현은 미적이고 표현적인 방식을 통해 “어떤 것을 텍스트로 나타”내며, 수용자는 대표자(텍스트)에 동일시된다. 게임에서 여성은 이미지, 음향, 게임 내 상호 작용, 캐릭터의 목소리와 말투 등 다양한 표현 방식을 통해 재현된다. 게임에서 재현된 여성은 반드시 실존하는 여성들을 모델로 하여 모방하는 것만은 아니며, 게이머들은 캐릭터를 보고 그를 ‘여성(캐릭터)’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게임 내의 여성 인물 혹은 캐릭터는 현실 속 여성들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여성재현의 의미와 효과

    미디어에서의 여성 재현이 중요한 또 한 가지 이유는 미디어 속 재현과 현실이 서로 복잡하고 첨예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기 때문이다. 여성 재현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여성성을 반영하지만 반대로 그러한 여성에 대한 관념을 변화시키거나 강화할 수도 있다. 미디어 연구에서 전자를 강조하는 입장을 반영론, 후자를 효과론이라고 한다. 어떤 미디어 텍스트도 현실을 순수하게 반영하기만 하지 않으며, 반대로 실제 사회의 맥락과 상관없이 제작되어 일방적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만 하지도 않는다.


    여성 게임 캐릭터에 대한 문제적 재현 방식이나 여성 게이머들에 대한 차별과 같은 게임 문화에 대한 비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논란은 “게임 속 여성의 모습이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즉 ‘잘못된 재현’으로 현실 속 ‘진짜 여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인데, 틀린 지적은 아니지만 진부한 이야기임을 부정할 수도 없다. 이미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창구를 통해 수도 없이 제기된 비판이기도 하고, 똑 부러진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정확한 재현’이란 무엇일까? 재현의 오류가 현실을 변조한다는 주장은 효과론에만 근거한 즉 사실의 반만 설명하는 불완전 논리이기도 하다.


    핵심은 게임 캐릭터의 정서적 실재감이다

    싸이월드(Cyworld)가 큰 인기를 모았던 2000년대 중후반, 게이머(유저)들은 자신의 옷과 헤어스타일을 고르고 자신의 방인 미니룸을 예쁜 커튼이나 고급스러운 가구로 장식했다. ‘미니룸’은 물리적 현실과 구별되지만 그 안의 ‘미니미’는 나의 분신이었다. 사람들이 ‘아바타’라는 용어에 익숙해지던 시기였다. 나와 비슷하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동일성 동일시’보다 ‘공감적 동일시’에 가깝기 때문이다. 친구의 집(미니홈피)을 방문하는 행위도 내 미니미가 나를 대신해 움직이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게임에는 애완동물과 분신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게이머가 조종하는 캐릭터가 있고 게임에 따라서는 수많은 NPC(Non-player Character), 즉 직접 조종할 수 없는 캐릭터도 있다. 이들은 현실의 누군가를 최대한 흉내 낸 반영물이라 여길 수도 있고, 현실과는 유리된 가상의 존재로 바라볼 수도 있다. 여기서는 동일시의 문제 대신 ‘실재감’의 문제가 대두된다.


    게이머들은 게임 속 세계의 인간관계나 규칙에 집착하는 사람과 어차피 현실이 아니므로 실재와 맞대어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분류될 수 있다. 둘 모두 게임 속 세계가 인위적인 가상세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물리적인 현실 세계와 똑같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게임 속의 캐릭터나 NPC가 비현실적으로 잘생겼거나 거대한 두상을 가졌어도 흠이 될 수 없으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이 세거나 싸움을 잘해도 이상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게이머들이 느끼는 ‘그럴듯함’이라는 감정이다. ‘핍진성(verisimilitude)’, 즉 실재는 아니지만 그럴듯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게이머로 하여금 ‘정서적 실재감’을 갖도록 해준다. SF영화를 보면서 한편으로 허황함을 인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영화적 상황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그럴듯하다고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게이머가 자신의 아바타에게 동일시 감정을 느끼는 것도 생김새 때문이 아니라 서사적 효과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게임과 현실은 당연히 동질적이지도 동형적이지도 않지만, 그것이 아무런 현실적 효과도 없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다. 특히 온라인 게임에서는 온오프 정체성 사이의 복잡한 상호관계에 의존하여 플레이가 진행되기 때문에 게이머의 관심은 캐릭터와의 관계에서 현실 속 사람과의 관계로 전환될 수 있다.


    슈퍼 마리오의 공주 구조 계획

    마리오의 탄생비화

    <슈퍼 마리오>는 1985년 탄생해서 지금까지 전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닌텐도 게임 시리즈다. 게임의 목표는 괴물에게 붙잡힌 공주님을 찾아 구하는 것. 주인공 ‘마리오’는 온갖 방해물들을 피하거나 이겨서 악당 ‘쿠파’를 물리치고 ‘피치’공주를 구해야 한다. 콧수염을 기르고 모자를 쓴, 작고 통통한 이탈리아계 배관공 마리오는 40년 가까이 닌텐도의 대표적 캐릭터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폐회식에서는 차기 올림픽 주최지인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슈퍼 마리오 분장을 하고 나타나 2020년 도쿄 하계 올림픽 개최를 홍보했을 정도다.


    주인공 마리오가 처음부터 이탈리아계 미국인 배관공으로 고안된 것은 아니다. 만약 소설이었다면 작가가 머릿속에 그린 주인공의 성격과 나이, 생김새가 정해지면 수정될 여지가 별로 없을 것이다. 게임은 다르다. 개입하는 기술도 많고 참여하는 사람도 많다. 때로는 환경이 서사를 바꾸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마리오의 모습은 1980년대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픽 기술이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히어로의 얼굴은 기획자 맘껏 그려낼 수가 없었다. 낮은 해상도에서 개성있는 모습을 묘사하다 보니 무성한 수염과 큰 코가 나왔다고 한다. 머리카락을 정밀하게 묘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모자를 씌웠고 게임의 어두운 배경 속에서 히어로가 도드라지게 하기 위해 붉은색 옷을 입었다.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 서사의 이면

    <슈퍼 마리오>의 공주 구출 작전은 게임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곤경에 처한 소녀’ 이미지는 이후 비디오 게임에서 가장 널리 활용되는 고정 관념 중 하나가 되었다. 다소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겠으나, 이 고정 관념의 반복적 활용은 게이머의 가부장적 태도를 고정시키는 작용을 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생물학적으로 약하다는 믿음, 위기에 직면했을 때 남성은 반드시 용감하게 여성을 보호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의무라는 믿음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의문은 남는다. 만약 <슈퍼 마리오>시리즈가 지독한 남성 우월적 메시지를 강조해 왔다면 어떻게 그 오랜 기간 동안 많은 남녀노소 유저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우선 게이머들은 조이스틱이나 컨트롤러를 조작하면서 온갖 난관을 이기고 결국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지 자신이 ‘마초’ 히어로가 되어 연약한 공주를 구한다고 인식하지는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 게임 플레이가 즐거움을 얻기 위한 행위라면, 악당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피하고 동전을 먹어 점수를 올리고 깃발을 정복하는 즐거움이 ‘성공적인 공주 구출’의 성취감보다 더 클 것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반대로, 게임에서는 유저가 관찰자(관객)가 아니라 참여자(조종사)이기 때문에 화면 속 주인공과 더 쉽게 동일시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영웅이 공주를 구하고 사랑에 빠지는 영화의 관객은 카메라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영웅과 동일시를 하지만, <슈퍼 마리오>를 플레이하는 게이머는 마리오를 자신의 분신이라 생각하며 쿠파와 싸우고, 승리해서 공주를 구출하는 주체도 자기 자신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구출이라기보다는 쟁취에 가깝다. (남성) 게이머는 여성을 보상으로 받는다. 내가 애써서 받은 보상이기 때문에 가부장적 서사 구조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기본적 토대로 기능한다. 분명한 인식이 없다고 해서 효과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고정 관념에 던져야 할 질문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 곤경에 빠진 왕을 여성 전사가 구하는 스토리를 상상해 보자. 왕은 수동적이고 무기력하지만 성적 매력이 철철 넘쳐서 그 존재 자체가 승리에 대한 보상물이 될 수 있다는 상상. 그리고 여성 전사 마리오가 끝끝내 쿠파를 물리치고 왕을 구한 후 왕에게 키스를 한다면 어떨까. 만약 이 설정도 나름 흥미롭다고 생각한다면 왜 슈퍼 마리오 제작팀은 애초에 전통적인 가부장적 서사 구조를 고안했는지 그리고 40년 가까이 지나도록 그 서사를 변함없이 고집했는지 의문이 들지 않는가? 그러나 이 설정이 너무 작위적이고 비현실적이어서 감정 이입이 안된다면, 그래서 게임이 재미없어진다면 우리가 얼마나 ‘곤경에 처한 소녀’ 서사에 익숙해져 있는지, 그 관습적 이미지가 너무나 당연해서 질문조차 해본 적이 없는지 깨닫게 되지 않을까?



    게임 만드는 여성-게임산업 현장의 여성 인력들

    여성 게임 노종자의 ‘커리어 파이프라인’

    고장난 파이프라인

    캐나다 산업심리학자 요하나 웨스트스타 교수와 노동사회학자 마리 조제 르골 교수는 2015년부터 게임 산업과 여성 개발자의 경험에 관한 연구를 꾸준히 해왔다. 국제 게임개발자협회(IGDA)가 수집한 신뢰성 있는 조사 자료를 재분석한 이들의 연구는 여성 비중이 적은 산업 분야에 여성 인력이 지속적으로 투입되면 점진적으로 성 차이가 줄어들 것이라는 일반적인 믿음에 의문을 제기한다. 인풋이 많으면 아웃풋도 많아진다는 기존의 ‘파이프라인’ 비유는 파이프가 완벽하게 튼튼하고 중립적인 경우에만 옳다는 것이다. 파이프라인이 체계적으로 젠더화된 산업 분야에는 이 비유가 적용될 수 없다. 파이프라인 한쪽에서 인풋이 지속적으로 이뤄져도 파이프 중간이 막히거나 구멍이 뚫리면 아웃풋 양은 극히 제한적이다. 이것이 두 연구자가 제시한 ‘차단된’ 파이프와 ‘유출된’ 파이프 개념이다.


    차단된 파이프는 여성이 커리어를 쌓는 데에 있어 필연적으로 경험하는 ‘유리 천장’과 ‘끈끈이 마루’를 뜻하고, 유출된 파이프는 일을 시작한 사람이 커리어 경로를 떠나 도태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게임업계의 ‘성골’ 커리어 파이프라인은 초기 경험, 추가 훈련, 첫 직업, 지속되는 경력으로 이루어지는데, 여성에게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 여성들은 어릴 적부터 게임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고, 게임 관련 학위 및 교육 프로그램에서는 소수로 남는다. 업계에 진입할 때도 대개 주변부에서 시작하고, 이후에도 차별적인 대우를 경험하며, 고용 상태도 상대적으로 불안정하다. 훌륭한 커리어를 쌓는 전형적인 길이 분명히 정해져 있지만, 이 길은 여성들에게 불리하게 만들어졌고 소수의 여성만이 이 길을 따라 나아간다. 여성들이 게임업계에서 주류 파이프라인을 따라 나아가는 과정에는 지속적인 차단과 누출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고장난 파이프라인 수리는 기업 내부에서 시작해야

    막혔거나 구멍 뚫린 파이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그동안 게임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체 파이프라인을 찾고 있었다. 도전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프로그래밍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성의 비율이 높은 디자인이나 연구, 프로듀싱 분야의 파이프를 주류 파이프로 잇는 작업도 그중 하나다. 이들 분야에서는 비교적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소셜 네트워크 분야의 대가로 손꼽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커뮤니케이션학부의 데이먼 센톨라 교수와 그의 연구팀은 조직 구성원들에게 익숙한 고정관념을 바꿀 수 있는 임계점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 하는지에 관한 실험을 진행했다. 결론은 간단하다. 소수가 큰 소리로 외쳐도 흔들림 없던 조직이 소리치던 사람의 비율이 25%가 되는 순간 드디어 흐름을 바꾸게 된다는 것. 이를 ‘티핑 포인트’라 부른다.


    25%가 그리 많은 숫자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게임 산업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성 인력은 25%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우리나라고 외국이고 마찬가지이다. 게임 산업에서 여성의 커리어 파이프라인에서 막힌 곳은 뚫어야 하고 새는 곳은 때워야 한다. 그렇게 변하더라도 여성 임원진의 비율이 25%에 달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어릴 적 게임기에 접근할 수 있는 힘의 차이가 교육의 차이와 업계 진입의 차이, 나아가 성공의 차이로 이어지는 고장 난 파이프라인을 수리하는 작업은 거꾸로 기업 내부의 변화로 시작되어야 한다. 여성 롤 모델이 지속적으로 배출되면 더 많은 여성들이 게임 산업 커리어를 시작하고 나아가 더 많은 여성들이 관련 교육을 받게 될 것이다. 동시에 여성 게임 노동자의 증가가 가져올, 생산 과정에서 조직 문화의 변동은 더 많은 ‘너드’가 아닌 여성들을 소비자로 불러 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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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