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기후로 다시 읽는 세계사

저   자
이동민
출판사
갈매나무
출판일
2023년 04월
서   재







  • 기후라는 렌즈를 통해, 인류의 시간 전체를 아우르고 지구 공간 전역을 훑어가는 지리학자만의 드넓고도 촘촘한 시선! 세계사 구석구석에서 문명의 운명을 이끈 기후의 힘을 조명합니다.



    기후로 다시 읽는 세계사


    지구에 그려지기 시작한 역사의 밑그림

    빙하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간 인류

    인류는 지금으로부터 12만~9만여 년 전에 드디어 남아프리카를 벗어났다. 이 무렵에 접어들어 지구 자전축이 바뀌면서 사하라사막에는 습기를 가득 품은 계절풍이 불었다. 때마침 지구 기온도 계속해서 낮아졌다. 그 덕분에 메마른 사막에는 비가 자주 내렸고 기온이 낮아지니 수분의 증발량도 줄었다. 사하라사막은 강물이 흐르고 동물이 뛰노는 초원으로 바뀌었다. 기후변화가 아프리카의 지리적 환경을 바꾸면서 인류는 한층 넓은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초원으로 변한 사하라사막은 인류에게 신천지나 다름없었다. 수많은 인류는 새로운 삶의 터전과 먹거리를 찾아 북쪽으로 이주했다. 수만 년에 걸친 이주 끝에 이류가 분포하는 영역은 아라비아반도가 있는 서남아시아까지 확대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주 행렬은 7만~6만여 년 전에 일어난 기후변화 때문에 잠시 멈추게 되었다. 빙하기로 인한 기후변화가 사하라 지역을 또다시 사막으로 만들면서 사하라 북쪽으로 이주한 현생인류는 고향으로 돌아갈 길을 잃고 말았다.


    빙하기는 인류가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를 넘어 지구 전역으로 퍼져 나갈 기회이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빙하기에 접어들면서 해수면이 오늘날보다 최대 90미터까지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유라시아 대륙과 가까이 있는 영국, 일본,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뉴기니 등의 섬은 물론 호주와 아메리카 대륙까지 육지로 이어졌다. 그 덕분에 인류는 유라시아 각지는 물론, 오늘날에는 바다로 분리된 다른 대륙과 섬들에까지 이주할 수 있었다.


    6만~4만여 년 전에는 빙하기와 더불어 서남아시아가 건조한 불모지로 변했다. 인류는 새로운 삶터를 찾아야 했다. 사하라사막에 가로막힌 옛 고향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인류는 북쪽과 동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때마침 유럽에는 습윤한 계절풍이 불었다. 북유럽은 빙하에 덮여 있었고 중부 유럽에도 척박한 툰드라가 넓게 펼쳐져 있었지만, 남유럽과 동유럽의 넓은 평야에는 스텝뿐만 아니라 비교적 비옥한 초원과 삼림이 펼쳐져 있었다. 이러한 환경은 인류가 수렵·채집 생활을 하며 지내기에 알맞았다. 남유럽과 동유럽의 비옥한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인류는 불과 도구 그리고 털가죽 옷의 힘을 빌려 중부 유럽의 툰드라까지 진출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북쪽 대신 동쪽으로 발길을 돌린 인류도 많았다. 이때에는 동남아시아 일대가 온난한 기후였고, 해수면이 낮아졌기 때문에 뉴기니,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섬들도 유라시아 대륙과 이어져 있었다. 호주 대륙은 유라시아와 완전히 이어져 있지는 않았지만, 그 사이의 바다는 오늘날과 달리 매우 얕고 폭이 좁으며 따듯했다. 인류는 따듯한 땅을 찾아 육지로 이어진 동남아시아 등으로 퍼져 나갔다. 이어서 3~5만 년 전에는 호주에까지 발을 들이는 데 성공했다. 원시적인 통나무배나 뗏목 정도로도 호주와 동남아시아 사이의 바다를 건너는 데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인류가 이주하기 수만~수십만 년 전부터 유럽에는 네안데르탈인, 아시아 각지에는 자바원인과 베이징원인 같은 호모에렉투스의 분파들이 살고 있었다. 호모에렉투스는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직계 조상 격인 고인류이고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의 사촌 격에 해당하는 고인류이다. 이들은 인류가 유럽과 아시아에 이주한 뒤에도 2~3만 년 이상 인류와 공존했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에렉투스는 현생인류와 마찬가지로 불과 도구를 사용했고 문화생활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호모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은 2~3만 년쯤 전에 지구상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이들이 왜 멸종했는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결과적으로 호모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와의 경쟁에서 패한 셈이다.


    인류는 동남아시아에서 동쪽과 북쪽으로 계속 이주를 하다가 1만 5,000년쯤 전에 드디어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발을 들였다. 아직 빙하기였지만, 전성기를 지나 끝물에 접어든 무렵이었다. 빙하기가 절정을 이루었던 1만 8,000년 전이라면 인류는 베링해협 근처까지 갈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하지만 빙하기의 절정기가 지나고 기후가 조금 온난해지면서 인류가 유라시아의 북동쪽 끝인 축치반도 일대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빙하기의 끝물에 이르러 해수면이 조금씩 상승했지만, 아직은 빙하기였기에 베링해협은 여전히 땅으로 이어져 있었다. 빙하기와 간빙기가 교차하는 절묘한 타이밍에 축치반도까지 도달한 인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베링해협을 건넜다.


    베링해협 너머에는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이 펼쳐져 있었고 인류는 수천 년에 걸쳐 아메리카 전역으로 펴져 나갔다. 이로써 인류는 빙하기의 기후변화 덕분에 지구 전역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10만 년 가까이 아프리카 남부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빙하 타고 내려와 친구를 만난 둘리처럼, 빙하를 타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었던 셈이다.



    기후, 문명의 운명과 세계의 지도를 바꾸다

    엘리뇨, 크레타와 그리스의 운명을 가르다

    서구 문명의 직접적인 토대를 닦은 고대 그리스는 해양 문명의 성격이 강했다. 스파르타와 같이 내륙국 성격이 강한 폴리스(polis, 도시국가)도 있었지만, 아테네를 비롯한 다수의 유력 폴리스는 지중해 북동부에 위치한 에게해를 중심으로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세력을 확장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에게해의 크고 작은 섬은 물론 오늘날 아나톨리아반도 서부 해안 지대인 이오니아까지 진출하여 여러 폴리스를 세웠다. 고대 그리스문명이 당대 최강이었던 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제국의 침공을 격퇴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에게해, 나아가 지중해를 주름잡던 해양 문명으로서 힘을 키웠기 때문이다. 즉 에게해는 고대 그리스문명에서 비롯된 서구 문명이 형성되고 발달할 수 있었던 지리적 무대였다.


    그런데 에게해에는 고대 그리스문명이 탄생하기 1,000년도 더 전부터 에게문명이라 불리는 수준 높은 청동기 문명이 번성해 있었다. 에게문명은 고대 그리스문명과는 이질적인 부분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선진적인 문물을 받아들이며 찬란한 문명을 발달시켰고, 고대 그리스문명이 꽃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크레타섬에서 발달한 미노스문명은 그 북쪽의 키클라데스제도에서 꽃핀 키클라데스문명과 더불어 에게문명을 주도했다. 에게문명이 번성했던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리스 본토는 문명 밖의 세계 또는 문명의 변방이었다고 보아도 클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크레타섬은 기원전 1,200년경 미노스문명이 몰락하면서 문명의 중심지라는 위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후 수백 년에 걸쳐 여러 민족집단이 그리스 본토에서 쟁탈전을 벌인 끝에, 우리가 아는 고대 그리스인과 그리스문명이 자리 잡고 번성하게 되었다.


    1,000년이 넘도록 에게문명의 중심지로 군림했던 크레타섬에서 그토록 번성했던 미노스문명은 왜 몰락했을까? 이는 오늘날에도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한 기후 용어와 관계가 있다. 바로 엘리뇨 남방진동(El Nino Southern Oscillation)이다.


    엘리뇨 남방진동이 바꾼 지중해의 문명 중심지

    미노스문명이 사라진 뒤, 크레타섬은 3,000년이 넘도록 문명의 중심지라는 입지를 회복하지 못했다. 미노스문명 역시 오래도록 잊힌 채 고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이야기 정도로만 여겨지다가 20세기 초반 영국의 고고학자 에번스(Arthur John Evans)가 크노소스 유적을 발굴하면서 비로소 그 역사가 알려지게 되었다. 서구 문명의 직접적인 토대를 이룩한 고대 그리스 폴리스들이 기원전 146년 로마에 의해 정복된 뒤에도 그리스 본토가 1,500년 이상 동로마를 포함한 로마의 요지이자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유럽의 문화와 사상을 대표하는 지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과는 꽤나 대조적이었다.


    이는 엘니뇨가 일으킨 극심한 가뭄이 에게해 등 지중해 동부의 문명 중심지를 크레타섬에서 그리스 본토로 옮겨놓은 데 따른 결과로 볼 수 있다. 물론 미노스문명으로부터 고대 그리스문명의 성립에 이르는 시기의 역사는 워낙 고대의 일인 데다 그리스의 암흑기까지 존재하기 때문에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못한 부분도 적지 않다 하지만 미케네문명에 이어진 고대 그리스문명이 모두 크레타섬보다 북쪽에 있는 그리스 본토, 에게해 북부, 이오니아 등지를 주 무대로 했다는 사실, 그리고 고대 그리스문명이 활발한 해상 무역 활동을 통해 발전한 해상 문명의 성격이 강했다는 사실은 미노스문명이 멸망한 뒤 지중해 동부의 해상무역 중심지가 황폐해진 크레타섬에서 크리스 본토 일대로 옮겨 갔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렇듯 엘리뇨 남방진동이라는 기후 현상과 해상교통의 요지지만 엘리뇨가 불러오는 가뭄에 유달리 취약한 크레타섬의 입지조건은 에게해 일대의 고대 문명이 성립하고 그 문명의 중심지가 옮겨 가는 데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즉, 엘니뇨라는 단어가 수시로 언론에서 다뤄지는 오늘날뿐만 아니라 이미 고대에도 엘니뇨 남방진동에 따른 기후변화는 인류의 생활과 문명의 흥망성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흑사병, 온난기의 암흑시대를 끝장내다

    소빙기를 맞은 유럽은 어떤 악몽을 마주쳤을까?

    봉건혁명의 성숙은 13~14세기 몽골제국의 등장에 따른 동서 교역의 활성화, 즉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가 불러온 상업과 무역의 발달과 맞물려, 유럽 각지에 상업 도시가 크게 성장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베네치아, 제노바, 밀라노, 등의 유력 대도시 인구는 13세기에 접어들어 10만 명을 넘어섰다. 어지간한 대도시 인구가 수만 명에 불과하던 중세 유럽에 이러한 도시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중세 중, 후기는 유럽에 도시 혁명이 일어난 시대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상업과 무역으로 막대한 경제력을 축적한 도시는 군주와 봉건 영주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치를 누렸다. 뛰어난 상공업 역량과 경제적 부를 활용해 우수한 무기를 갖추고 실전 경험이 풍부한 용병을 대거 고용해 군사력을 키웠다. 베네치아나 제노바와 같이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한 도시는 명목상 도시국가였지만, 실제로는 지중해 곳곳에 해외 영토와 식민지를 거느린 해양 제국에 가까웠다.


    그런데 중세 유럽의 도시에는 중대한 약점이 있었다. 근대적인 상하수도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았는데 좁은 공간에 인구가 몰려들면서 위생 상태가 당대의 농어촌보다도 훨씬 열악해지고 말았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서는 우물이나 하천이 쉽게 오염되었고, 분뇨나 오물을 처리할 공간이나 시설도 마땅찮았다. 봉건혁명과 중세 유럽의 발전을 대표하는 공간이었던 도시는 역설적으로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전염병에 취약한 공간이 되고 말았다.


    때마침 유럽의 온난기는 끝날 조짐이 보였다. 14세기 초반부터 이상기후와 그에 따른 기근이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1,400~1,420년에 걸친 그전까지 비교적 안정적이던 대서양의 대기 순환이 불안정해지고 이로 인해 북대서양 진동까지 이전보다 급격하게 변동했다. 이에 따라 유럽에는 가뭄, 한파, 폭우, 폭풍 등의 이상기후 현상이 자주 일어나더니 기온이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낮아졌다. 이후 500년 가까이 이어질 유럽 소빙기의 서막이었다.


    이상기후와 소빙기에 직면한 유럽은 어쩐 상황에 내몰렸을까? 흉작이 이어지며 경제적, 사회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500년 동안 지속된 온난기의 영향으로 풍요를 누리며 인구가 최대로 늘어난 상황이었기에 그 피해는 더욱 감당하기 어려웠다. 수많은 유럽인이 농사를 망쳐 굶주림에 시달렸고, 농토를 버린 채 유랑민이나 도적으로 전락하는 농민도 생겨났다. 심지어 가축의 분뇨와 썩은 포도주로 가짜 식량을 만드는 사기꾼이나 무덤을 파헤쳐 값나가는 부장품을 훔쳐 가는 도굴꾼마저 횡행했다.


    이어질 수순은 무엇이었을까? 후한 말이나 로마제국 말기에 그랬던 것처럼, 중세 유럽 역시 무정부 상태에 빠진 채 각지의 군벌이 난립하는 난세로 돌아가거나 혹은 강재한 외세의 침략에 와해했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빙기의 도래가 중세 유럽에 주었던 피해는 황건적의 난이나 아틸라 제국의 침략을 능가할 정도로 막심했다.


    감기는 겨울에 자주 걸린다. 그러나 추운 날씨에 더 기승을 부리는 전염병은 감기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만 보더라도 날씨가 추워지면서 전염력이 심해지지 않던가. 물론 말라리아와 같은 열대성 전염병도 있지만, 대부분의 전염병은 기후가 한랭해지면 더욱 극성을 부린다. 추운 날씨는 사람들의 면역력을 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인체가 체온 유지를 위해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면서 면역에 쓸 에너지가 줄어든다. 더군다나 한랭한 기후로 인해 농업 생산성이 낮아지면 영양 상태가 나빠지고 이에 따라 면역력까지도 약해지는 것이다.


    난방 장비와 시설, 공중보건과 위생, 농업기술 등이 열악했던 전근대 시대에 한랭해진 기후는 전염병에 더욱 취약한 환경을 조성하기 쉬웠다. 실제로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기후의 한랭화와 영양 상태 및 면역력의 저하 그리고 전염병의 범유행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처럼 기후의 한랭화가 범유행을 일으킬 수 있는 전염병 중에서도 특히 파괴적인 것이 바로 흑사병이다.


    의학 용어로는 페스트(pest)라 불리는 흑사병은 페스트균(Yersinia pestis)이 쥐와 벼룩 그리고 흑사병에 감염된 환자나 보균자의 기침, 타액 등을 매개체로 전파되는 세균성 전염병이다. 흑사병은 엿새 남짓한 잠복기가 지나고 나면 내출혈로 인한 피부의 검은 반점, 종기, 고열, 각혈, 설사 등의 증상을 보이며 3~5일 이내에 사망하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환자의 피부에 생기는 검은 반점과 극히 높은 치사율 때문에 ‘흑사병’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흑사병은 전염력도 매우 높아 항생제는커녕 공중위생이 열악했던 전근대사회에서는 매우 파괴적인 재난이었다. 공중위생 발달과 항생제 개발로 흑사병의 범유행이 옛이야기가 된 오늘날에조차 치사율이 매우 높고 예후가 극히 나쁜 악성 전염병으로 분류될 정도이다.


    14세기 서유럽의 도시 발달은 흑사병의 범유행에 기름을 부었다. 인구밀도가 높은 데다 비위생적인 중세도시의 환경은 흑사병의 범유행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도시 간의 활발한 교역과 무역 활동은 페스트균이 먼 거리를 넘어 빠른 속도로 유럽 전역에 확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기후변화의 역사에서 기후위기의 시대로

    산업화와 화석연료가 빚어낸 인위적 기후위기

    기후위기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온실가스의 증가로 인한 인위적인 기후변화, 즉 지구온난화는 지구에 어떤 영향을 줄까? 자연적인 기후변화가 이루어지던 시대를 살펴보면, 대체로 기후가 온난습윤해지면 농업생산성이 증가하면서 문명이 성장하고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산업화로 인해 물질문명과 경제가 크게 발전한 데다 기후까지 온난해졌으니 인류 문명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번영하며 계속 발전해나갈 수 있게 된 걸일까? 혹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기만 하는 대상을 넘어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주체로 거듭난 인류가 가뭄, 냉해, 홍수, 폭염, 등과 같은 기후재난을 극복하고 더욱더 발전할 수 있는 단계로 접어든 것일까?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 반대였다. 과도한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 이어지면서 산업화 이후의 기후변화 속도와 정도는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기후변화의 정도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오늘날 학계는 시뮬레이션 연구 결과를 토대로, 2100년에는 지구 평균 기온이 최소 1.8도에서 최대 4.0도까지 증가할 거라고 경고한다. 전근대 시대에는 수십 년에서 한두 세기에 걸쳐 평균 기온이 1도 정도만 변화해도 인류 문명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20세기 말에 일어날 기온 상승 폭은 그보다도 훨씬 크다. 인위적 요인에 의한 온난화는 전근대의 자연스럽게 일어난 온난화와는 달리, 인류 문명의 축복은커녕 여러 차례 일어난 전근대의 한랭화와도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위협을 주고 있다.


    과도한 기온 상승은 극지나 고산지대의 빙상과 빙하를 녹여 해수면을 상승시킨다. 해수면이 상승하면 해발고도가 낮은 해안 지대나 섬 지역은 침수된다. 인류가 살 수 있는 땅의 면적이 줄어드는 것이다. 해안 지대는 항구나 도시 같은 인류 문명의 중요한 거점인 경우가 많아 인류 문명에 큰 타격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기온의 과도한 상승은 해수와 대기의 순환에 심대한 변화를 일으켜 이상기후 현상을 자주 일으킨다. 그러다 보니 자연재해가 잦아지고, 세계 각지의 기후가 변하면서 사막의 면적이 확대되는 등의 부작용까지 생겨난다. 아울러 기온이 과도하게 오르면 농작물의 생장에 나쁜 영향을 끼쳐 농업 생산성을 저해한다. 자연스러운 온난화는 인류에게 풍작과 풍요라는 선물을 주었지만, 온실가스가 일으킨 인위적인 온난화는 되레 식량 위기뿐만 아니라 인류가 설 땅조차 빼앗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인류가 인위적인 기후변화를 일으켰지만, 이를 되돌릴 힘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는 사실이다. 한번 바뀐 기후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일은 적어도 오늘날 인류의 기술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 인류가 이미 산업화 이후의 물질적 풍요와 기술 진보에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데다 산업 활동은 현대 사회와 경제를 유지하는 밑바탕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에, 기후위기를 이유로 산업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인류도 환경 파괴와 기후위기의 위험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어서 온실가스와 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세계화로 인해 산업 활동과 장거리 이동 및 무역이 더욱 활발해지고 세계 인구까지 계속 증가하면서 기후위기의 해결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러다 보니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 세계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세는 한풀 꺾이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자연을 파괴하고 지구 기후 체계를 교란한 결과 빚어진 기후위기는 인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인류는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인류 문명이 존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인류세는 대멸종을 과연 피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를 한낱 기우로 만들기 위하여

    오늘날의 세계가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와 재난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기후위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조짐을 찾기는 어렵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인류 사회의 노력은 여전히 부족하고 부실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왜 기후위기 극복은 여전히 인류에게 요원한 일일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경제적 이해관계와 인구에서 찾을 수 있다.


    비록 ESG,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등이 경제와 산업 부문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으나, 기후위기에 대한 대처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기회보다는 부담을 가져다주는 측면이 크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미국이 지난 2001년 교토 의정서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 의무 이행 포기를 선언하고 교토 체제에서 탈퇴한 것은 이러한 어려움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기후위기 해결보다도 산업이나 경제 등이 자국의 이해관계에 더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기업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당장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여전히 많은 기업체가 ESG에 대한 이해 부족, 각종 비용에 대한 부담 등으로 인해 ESG경영을 외면하거나 형식적인 수준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친환경 산업이나 신재생에너지 등의 한계도 무시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 등은 기존의 화력발전 등에 비해서는 온실가스나 오염물질 배출량이 적지만, 이들 역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환경오염을 유발하며 더구나 에너지 생산 효율도 낮다는 문제점이 있다. 요컨대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은 기후위기와 환경문제 해결에 매우 이상적인 방향을 제시하지만 지속가능성과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만큼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그 이전에 교토 의정서에서 합의한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 또한 어느 정도 의미 있게 실천한 나라가 영국과 독일 정도였다.


    지나치게 많은 인구도 기후위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설령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적적’인 기술이나 제도가 마련된다고 하더라도, 인구가 많으면 온실가스의 대량 배출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업혁명 직전 수준으로 줄인다 해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총량이 그만큼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 무렵에 비해 오늘날 세계 인구가 열 배 가까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데다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큰 세계 인구는 그 자체로 기후위기 해결에 중대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세계경제의 불평등은 인권과 인류의 복지 향상을 가로막음은 물론, 기후위기의 악화에도 일조하고 있다. 사실 유럽 국가들이 친환경 산업의 발전을 선도하고 최소한 표면상으로라도 기후위기 해결과 환경 보전을 소리 높여 강조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이들 국가가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기술 수준이 매우 뛰어나다는 사실이 자리 잡고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고 기술 수준이 풍족하지 못한 국가들에게 친환경 정책이나 온실가스 배출의 대폭 감소를 강요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크다.


    최근 들어 불거지고 있는 신냉전 체제의 도래 역시 기후위기 극복에 중대한 장애물이 되고 있다. 당장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국제적인 노력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왔다고 평가받는다. 기후위기에 대한 실효성있는 대안이 마련되려면 국제적인 공조와 협력이 무엇보다 절실한데, 강대국 간의 전쟁이 부족하지만 그나마 이루어지고 있는 국제 협력과 공조에 균열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이미 지구 기온의 상승을 산업화 이전, 하다못해 20세기 초중반 수준으로 되돌리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며, 기온의 상승 폭과 기후변화의 정도를 최소화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온실가스나 오염물질은 한번 배출하면 상당한 시간 동안 대기 중이나 환경 속에 머무르면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러다 보니 어떤 계기를 통해 이러한 물질의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더라도, 지금까지 배출된 온실가스의 양이 이미 막대하기 때문에 그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인류 사회가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기울여온 수많은 노력과 시도가 온실가스 배출의 획기적 절감과 기후의 회복을 가져오는 데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멈추지 말고 지속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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