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저   자
발레리 트루에(역:조은영)
출판사
부키
출판일
2021년 05월
서   재







  • 지난 20년간 과거와 미래의 기후 변화에 대해 생각하고 쓰고 이야기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과학적 발견의 흥분된 순간과 길고 복잡한 인간사가 어떻게 자연환경과 얽히고 나무에 새겨졌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이 책의 나이테 이야기는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소노란 사막에서 시작된 연륜연대학의 수수께끼 같은 기원에서부터, 역사 건축물에서 ‘나이테를 세다가’ 밝혀진 고고학 비밀, 그리고 지난 밀레니엄에 기후가 만들어 낸 서사적 사건들로 전개된다. 이 이야기들은 나무 착취와 산림 파괴의 역사를 관통하면서 연륜연대학자들로 하여금 과거를 연구하게 만들고, 미래에도 지구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수천 년을 살아온 나무는 외모부터 다르다

    수령이 많은 나무들은 겉에서 보았을 때, 심지어 사진으로만 봐도 알 수 있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덕분에 연륜연대학자들이 일하기에 수월한 면이 있다. 노목(老木)을 찾겠다는 희망으로 숲에 있는 나무에 모조리 구멍을 뚫는 대신 가장 눈에 띄는 표본을 타깃으로 삼으면 고생도 덜하고 나무도 아껴 줄 수 있다.


    실력 있는 감정가라면 오래된 나무들의 공통된 특징을 금세 파악한다. 나무줄기가 꼭대기로 올라가도 가늘어지지 않는 기둥 형태이며 가지가 거의 달리지 않았지만 남은 가지는 묵직하다. 큰 뿌리가 밖으로 노출되었고, 나무 윗부분은 죽었다. 어떤 노목은 꽈배기처럼 자라면서 수피가 가늘고 긴 형태로 자란다.


    인간도 그렇지만 수령이 250년 이상인 고령의 나무는 50~250년 된 중년의 나무와는 외모가 다르고, 중년의 나무 역시 수령이 50년 미만인 어린 나무와 또 다르다. 게다가 나무도 사람처럼 키는 어렸을 때만 자라고 나이가 들면 둘레만 늘어난다.


    한 나무가 얼마나 높이 자랄 수 있는지, 또 키가 다 자라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는 유전자로 결정된다. 세쿼이아(Sequoia sempervirens)는 뒷마당의 벚나무(Prunus cerasus)보다 더 크게 자랄 것이다. 히페리온이라는 이름의 세쿼이아는 높이가 120미터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인데, 벚나무 8그루를 높이 세워야 얼추 키가 맞는다. 나무의 키는 더 나아가 다른 나무와의 경쟁은 물론이고 나무가 자라는 토양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그렇더라도 해당 종의 생장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나무는 최대 높이까지 도달하고 나면 그때부터 둘레만 커지기 때문에 아직 한창 키가 크는 어린 나무는 위로 올라갈수록 모양이 뾰족하다. 나무줄기의 맨 꼭대기는 만들어진 지 몇 년밖에 되지 않아 나이테와 둘레를 키울 시간이 없지만, 밑동 부분은 충분한 시간 동안 나이테를 늘리고 굵게 자란다. 나이 든 나무에서 길이 생장이 멈추고 나면 줄기의 위쪽 부분이 열심히 굵기를 따라잡기 시작한다. 매년 둘레가 늘어나고 그러면서 점점 줄기는 위로 갈수록 뾰족한 형태보다 기둥 형태에 가까워진다. 추가로 나이 든 나무는 꼭대기 부분이 먼저 죽고 수관(Crown), 즉 가지와 잎이 달린 나무의 윗부분의 위쪽이 납작해져 분재용 소나무와 생김이 비슷해진다. 나뭇가지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굵어진다.


    보통 오래된 나무의 가지와 뿌리는 꽤 크다. 높은 가지에 햇빛이 가려 광합성과 나무의 생장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낮은 가지들은 나무가 알아서 떨어내기도 한다. 수백 년간 침식이 일어나면서 오래된 나무의 뿌리가 드러나면 뿌리는 더 이상 지하에 감춰져 있지 않게 된다.


    일부 나이 든 침엽수들은 배배 꼬인 형태로 자란다. 새로운 나무 세포가 비스듬히 자라기 때문에 위를 향해 곧장 뻗어 올라가는 대신 나선형의 결이 생긴다. 나선형 생장(Spiral Growth)은 다양한 스트레스 요인, 즉 비대칭적인 수관, 바람, 비탈면뿐 아니라 유전자에 의해서도 일어나는데 이는 상업용 목재 생산에 장애가 된다. 나이테 측정기가 나선형의 타래를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나선형 생장은 나이테 과학자들에게도 달갑지 않다. 그러나 가장 오래되고 목편을 추출하기 어려운 표본을 찾아다니는 나무 사냥은 분명 유혹적이다. 추적의 스릴은 연륜연대학자들이 겪는 필드에서의 어려움을 잊게 만들고, 가끔은 성공의 길로 안내하기도 한다.



    과거의 날씨를 알려 주는 넓고 좁은 모스 부호

    나무는 겨울의 긴 휴면을 준비하는 가을보다, 겨울잠을 푹 자고 일어난 봄에 더 힘차게 자란다. 봄에 형성되는 춘재는 나무의 왕성한 봄 생장을 나타낸다. 침엽수는 세포벽이 얇은 커다란 춘재 세포를 만들며 침엽수의 목질 세포를 헛물관 또는 가도관이라고도 한다. 활엽수의 춘재는 물을 운반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물관으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침엽수와 활엽수의 춘재는 모두 봄철에 갓 생장을 시작한 나무의 상층부까지 물과 양분을 끌어 올리기 위해 최적화되었다.


    생장철의 후반에는 물을 운반하는 일보다 구조적 지지와 탄소 저장이 더 중요해지므로, 늦은 여름과 가을에 형성되는 추재는 세포의 크기가 작고 세포벽이 더 두껍다. 일부 활엽수, 특히 참나무는 춘재의 물관이 추재보다 훨씬 크다. 춘재의 커다란 물관과 추재의 작은 물관이 적절히 배열되어 또렷한 나이테와 아름다운 환공성 목재(Ring Porous Wood)를 만든다. 참나무의 춘재 물관은 크기가 커서 맨눈으로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참나무 원목 식탁 중 대개 식탁 상판의 짧은 쪽 높이 부분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전형적인 온대 수종에서는 봄철 춘재의 폭발적인 생장에 이어지는 가을철 추재 생장, 그리고 겨울철 동면기에 생장이 멈추는 과정이 매해 순서대로 반복된다. 전년의 작은 추재 세포에서 금년의 큰 춘재 세포로의 갑작스러운 변화 때문에 한 해와 다음해의 생장을 분리하는 뚜렷한 경계선이 생기는데 그것이 바로 나이테다. 그래서 우리가 나이테를 살피고 개수를 세고 폭을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열대 지방처럼 연중 낮의 길이와 온도의 변화가 없고 계절이 구분되지 않는 기후에서 자라는 나무에는 이렇게 뚜렷한 나이테가 생기지 않는다.


    또한 열대 기후는 습도가 높고 따뜻해서 나무가 1년 내내 자라기 때문에 많은 열대 나무가 해마다 꼬박꼬박 휴면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열대 수종들에는 춘재, 추재, 나이테 경계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 연륜연대학자들에게는 큰 도전 과제가 된다. 온대나 한대 지방과 비교했을 때 탄자니아 같은 열대 지방은 나이테 연대기가 표시된 세계 지도에서 텅 빈 공간이나 마찬가지다. 마치 용이 사는 미지의 세계처럼 말이다.


    나는 나무를 사랑하지만 극렬한 환경 운동가는 아니다. 내가 나무를 감정이 있는 존재로 언급할 때가 딱 2번 있는데, 조카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어 줄 때와 나이테 연대 교차 비교에 대해 설명할 때이다. 연대 교차 비교는 한 나무의 나이테 패턴을 다른 나무와 비교하는 과정이다. 나무는 식량과 물이 풍부할 때, 그리고 남과 경쟁하거나 공격받지 않을 때 행복하다. 행복한 해에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넓은 나이테를 만든다. 반면 가뭄이나 한파를 겪었거나 허리케인이 잎과 가지를 죄다 꺾어 놓는 바람에 행복하지 않은 해에는 생장에 투자할 에너지가 많지 않아 좁은 나이테를 만든다. 따라서 나무의 행복은 날씨에 크게 좌우된다.


    나무는 어두운 계절에는 아예 동면하고 생장을 멈추기 때문에 계절적 정서 장애는 물론이고 연례 정서 장애도 겪는다. 즉, 날씨가 나쁜 해에는 나무가 우울해한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나쁜 날씨’는 지역에 따라 추위가 될 수도 있고 가뭄이 될 수도 있다. 미국 남서부 같은 반건조지역에 사는 나무는 가뭄이 든 해에 우울해져 나이테가 좁아진다. 한편 고산 지대나 극지방에서는 건조한 해보다 추운 해에 좁은 나이테를 만들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지역 안에서는 건조하든 춥든 그해의 나쁜 날씨가 그 지역에 사는 거의 모든 나무에게 같은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므로 전반적으로 좁은 나이테를 남긴다.


    예를 들어 미국 남서부에서 가뭄이 든 해에는 대부분의 나무에서 좁은 나이테가 만들어진다. 반면 비가 흠뻑 내린 해에는 그 나무들이 모두 넓은 나이테를 형성한다. 습해서 행복한 해와 건조해서 불행한 해가 교대로 주욱 이어지면서 나무에도 넓고 좁은 나이테가 번갈아 나오는 패턴으로 기록된다. 이 긴 코드 열이 우리가 여러 샘플 사이에서 대조하고 비교하려는 패턴이다. 이 패턴은 시각적으로 또는 통계적으로 비교될 수 있는데, 보통은 둘을 조합해서 사용한다.


    비교하려는 샘플의 모든 개별 나이테 폭을 측정한 다음, 다른 나이테 열과 대조해 통계적으로 가장 일치하는 부분을 찾는다. 이때 측정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디지털 측정 장비를 사용하는데, 컴퓨터에서 마우스를 클릭하면 자동으로 나이테 너비를 측정하고 기록한다. 그러나 나이테 너비를 측정하는 일은 시간과 노동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기후를 재구성하는 연구와 달리 유물의 연대 측정이 주목적인 연륜고고학(Dendroarcheology)에서는 애써 나이테 너비를 측정하고 통계 프로그램까지 동원해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 경험 많은 과학자들은 디지털 장비 없이도 기억력과 패턴 인지 기술에 의존해 시각적으로 나이테 패턴을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테가 넓어지면 폭풍은 잦아들고 해적선은 날뛴다

    2015년 시에라네바다의 기록적인 적설량에 대한 우리 연구는 나이테가 어떻게 극한 기후를 연구하는 데 사용되는지 보여 주는 좋은 예다. 가뭄, 혹서, 홍수, 토네이도, 허리케인과 같은 극한 날씨와 극한 기후는 기후 시스템의 대단히 파괴적인 측면이다. 극한 날씨와 극한 기후의 구분은 명확하지 않지만, 대체로 기간과 관련이 있다.


    극한 날씨는 하루에서 몇 주에 걸쳐 일어나고, 극한 기후는 적어도 한 달 이상 지속한다. 장기적인 평균 기후로부터의 이런 드물고도 심각한 탈선은 사람들의 목숨, 생계, 생태계, 경제를 위협하고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후와 관련된 극심한 사건들은 드물게 일어나기 때문에 연구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대서양에서 시속 250킬로미터 이상의 풍속을 유지하는 폭풍인 5등급짜리 허리케인은, 1851년에 허리케인을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로 170년 동안 총 33건 발생했다.


    그리고 그 33건 중 5등급을 유지하며 미국에 상륙한 것은 1935년 노동절 허리케인, 1969년 허리케인 카미유, 1992년 허리케인 앤드루 3건에 불과하다. 2018년 10월 플로리다에 상륙한 허리케인 마이클은 풍속 시속 249킬로미터로 5등급 기준에 아슬아슬하게 못 미쳤다. 이 3차례의 상륙 사건을 가지고서는 5등급짜리 허리케인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더 나아가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를 올바로 추정할 수 없다.


    이러한 최대 가능 추정치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우리는 고기후 대체 자료가 주는 긴 시계열을 통해 더 많은 극단적인 사건을 조사할 수 있다. 특히 나이테는 해상도의 단위가 1년이기 때문에 극한의 날씨를 파악하기에 좋다. 나이테 기록은 가뭄이나 극단적인 기온 변화를 재구성하는 데 주로 쓰이지만, 홍수나 폭풍 같은 다른 극한 기후를 재구성하는 데도 활용된다. 폭풍이나 허리케인이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거나 나뭇잎을 뜯어내면 수관층의 손상이 나이테에 기록된다. 나뭇잎이 한 번에 대량 소실되면 광합성 능력을 잃는 셈이므로 넓은 나이테를 생산할 에너지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잎이 온전하게 달린 수관과 광합성 능력이 없을 때는 탄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므로 물이나 기온이 아닌 탄소가 나무 생장의 주요 제한 요인이 된다. 폭풍에 노출된 나무들은 생장이 저하된 기간과 좁은 나이테로 그 폭풍을 기록한다. 생장 억제는 폭풍이 강타해 나무가 잎을 잃은 해에 시작해 수관이 완전히 복원될 때까지 지속된다.


    물론 한 나무가 광합성 능력을 잃는 다른 경우, 예를 들어 잎을 고사시키는 곤충, 화재, 다른 나무와의 경쟁 등과 가뭄을 비롯하여 생장이 억제되는 기타 요인도 있다. 그러므로 나이테를 통해 과거의 폭풍을 연구하는 고폭풍학(Paleotempestology)에서는 적절한 연구지와 나무를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폭풍에는 자주 노출되지만 해충 발생이나 산불처럼 다른 제한 요인에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나무가 폭풍 재구성에 안성맞춤이다.


    카리브해 북서부, 플로리다 남쪽 끝에 크고 작은 섬들이 줄지은 플로리다 키스 제도는 고폭풍학을 연구하기에 딱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빅 파인 키에 자라는 습지소나무(Pinus elliottii)는 가뭄이나 추운 여름에 시달릴 일이 없고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곤충이나 여타의 교란 요인도 없다. 하지만 카리브해의 섬인 빅 파인 키에는 허리케인이 자주 지나간다.


    1851년 이후 최소한 45개의 1~5등급 허리케인이 섬의 반경 160킬로미터 이내를 지나갔다. 플로리다주 전체가 그렇듯이 빅 파인 키도 평지 지형이라 섬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곳이 해수면에서 고작 1.8미터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미미한 차이에도 섬의 중심부에 자라는 나무들은 저지대 이웃보다 생존에 유리하다. 높은 지대의 나무들은 허리케인이 동반하는 폭풍에서 더 잘 살아남는데, 밀려들어 온 바닷물이 빨리 빠져나가기 때문이다(짠 바닷물에 오래 노출되면 나무는 죽는다).


    게다가 빅 파인 키의 습지소나무는 빈번한 허리케인에 적응한 덕분에 바람에 쉽게 뿌리가 뽑히거나 부러지지 않는다. 그 결과 빅 파인 키에서 자라는 습지소나무들은 허리케인 때문에 죽는 일은 거의 없지만, 가지나 잎을 잃어버리면서 나이테에 억제된 생장을 기록한다.



    나무들이 여름 추위에 떨자 로마 제국은 무너졌다

    기후사와 인류사의 연관성을 연구할 때는 상관관계가 반드시 인과 관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로마 제국의 붕괴 과정에서 기후 변화의 역할을 입증하려면 불안정한 기후가 정치적 동인 및 사회적 취약성과 상호 작용하여 일으킨 시너지가 로마 사회를 파괴하고 기존 사회 정치 체제의 붕괴를 필연적으로 만든 실질적인 경로를 밝혀야 한다.


    여기에는 3가지 경로가 가능성이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가장 직관적이다. 로마 과도기에 수십 년을 주기로 요동치는 수문기후와 추운 기온이 농업 생산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로마 제국은 유럽, 북아프리카, 서남아시아의 세 대륙에 걸쳐 확장되었고 다양한 기후 체제로 구성되어 어느 정도의 기후 변동에는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이 지리적 다양성이 때때로 지역간 불규칙성에 완충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로마 과도기의 대규모 기후 격변을 완화할 정도는 아니었다. 유럽의 광범위한 지역을 덮친 추운 여름은 생장철을 단축하고 수확을 감소시켰으며, 북아프리카에서는 가뭄이 로마의 곡창지대를 휩쓸었다. 파피루스 자료에 따르면 로마 기후 최적기에 나일강은 평균 5년마다 범람해 풍성한 수확을 이끌었지만 로마 과도기에는 우호적이었던 나일강 홍수가 10년에 한 번꼴로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와 같은 10년 주기의 변동은 농경 사회에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농경 사회는 사회적, 기술적 대변화에 맞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로마가 형성한 복잡한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환경이 달라지면 보통 저장고를 지어서 대비한다. 그러나 가뭄이 5~10년 넘게 지속되면 빈 저장고만 남을 뿐이다.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여건과 사회 상황이 전반적으로 매우 열악해지기 때문이다.


    로마의 사회 구조 때문에 기후 격변이 경제의 엔진인 농업에 악영향을 미치고 또 그 충격이 악화되었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하다. 100만 명이 거주했던 로마는 상대적으로 소규모 농경 공동체에 의존해 다수의 로마 시민과 군인들을 먹여 살렸다. 멸망을 앞둔 로마 행정부에는 3만5000명이 넘는 관료가 있었고 군사는 50만 명이 넘었다. 제국은 1000개 이상의 도시로 구성되었는데 모두 주변 농경지에서 식량을 의지했다. 흉년이 찾아왔을 때 식량 부족과 기아로 가장 큰 고통을 받은 것은 농촌 지역이었다. 그 바람에 농사를 지어야 할 사람들이 힘을 쓰지 못했고 이는 생산성을 더욱 감소시켰다.


    설상가상으로 로마 후기 사회는 상류층이 너무 많았을 뿐 아니라 이들은 지나치게 사치스러웠다. 현대 사회와 닮았다는 사실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로마의 상류층은 와인과 올리브를 즐겼는데 가장 비옥하고 생산성이 높은 경작지에서 이런 수익 작물을 경작했고, 정작 주식이 되는 밀이나 보리 재배는 불모지로 내몰렸다. 척박한 땅에서 짓는 농사는 당연히 생산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다른 위험성도 있다. 생산성이 낮은 농지는 기후 변화에 더 민감하다. 로마 과도기의 요동치는 기후는 황무지에서 재배되는, 가뭄에 민감한 곡식의 생산성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생산량이 곤두박질치고 농경 경제의 수용 능력은 감소했다.


    기후 불안정과 로마 국가 해체 사이의 두 번째 잠재적인 연결 고리는 기원후 250~410년까지 진행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다. 이 기간에 색슨족, 프랑크족, 서고트족 등 게르만족이 로마 제국으로 이주해 침투했으며 기원후 410년에는 로마시로 진격했다. 야만족이 서쪽의 로마 제국으로 이주한 것은 중앙아시아에서 서진하던 훈족을 피해서였다. 유목 민족인 훈족이 서쪽으로 이동한 계기는 이들의 본거지인 중앙아시아에 가뭄이 심해져 목축 경제가 붕괴했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있다.


    이 가설의 타당성을 조사하기 위해 애리조나대학교 나이테 연구소의 내 동료인 폴 셰퍼드(Paul Sheppard)와 공동 연구자들은 티베트고원에 서식하는 가뭄에 민감한 치롄향나무(Sabina przewalskii)를 가지고 2500년의 나이테 연대기를 제작했다. 연구팀은 이처럼 특별히 긴 나이테 연대기를 제작하기 위해 역사 건축물뿐 아니라 800년 된 살아 있는 향나무에서 목편을 채취했다. 또한 7~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 묘실에서 발견된 나무 관을 이용해 연대기를 훨씬 더 과거로 연장했다. 이 티베트고원 나이테 연대기에는 4세기에 중앙아시아에서 유목민인 훈족이 푸른 초원을 찾아 서쪽과 남쪽으로 이동하게 부추겼을 가뭄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렇게 훈족은 야만족의 땅을 침략했고 그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내가 투손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애리조나대학교의 유명한 서양고전학 교수이자 고고학자인 데이비드 소렌(David Soren)이 나를 찾았다. 언론에 소개되지 못했어도 그는 우리 논문을 읽었다. 소렌은 로마 제국의 해체를 기후 변화와 연결시킬 세 번째 잠재적인 연결 고리를 알려 주었다. 바로 전염병이다. 소렌 박사는 자신이 쓴 ‘말라리아, 사악한 마법, 유아 묘지, 그리고 로마의 몰락(Malaria, Witchcraft, Infant Cemeteries and the Fall of Rome)’이라는 제목의 소논문을 건넸다. 우리는 서로의 연구 결과를 이어 줄 잠재적 연결 고리에 관해 활발히 토론했고, 그 이후로 나는 스콜피언스의 감미로운 음색을 거부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쓴 글에도 똑같이 눈길을 끄는 제목을 달려고 노력했다.


    말라리아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나쁜 공기’라는 뜻의 말라 아리아(Mala Aria)에서 왔는데, 말라리아가 늪에서 솟아오르는 톡 쏘는 공기에 의해 발생한다는 로마인들의 믿음에서 유래했다. 로마 시대에 이 치명적인 질병은 지중해 지역에서 흔했다. 게다가 수확 철인 늦은 여름과 이른 가을에 주로 발생하는 바람에 몸져누운 농부들은 밭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말라리아는 농부들의 건강을 해쳐 농업 생산성과 식량 생산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로마 과도기의 변덕스러운 기후가 로마 몰락에 미친 말라리아의 영향력을 증폭시켰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3~6세기 사이, 수십 년을 주기로 습한 해와 가문 해가 번갈아 나타난 날씨가 산림 벌채 확산과 결합해 말라리아의 매개체인 모기가 번식하기 좋은 습지 환경을 많이 만들어 냈다. 그러면서 농부들이 말라리아에 많이 걸리고, 도시민들과 농부들을 위한 식량이 부족해지는 조건이 생성되었을 것이다.



    불에 탄 상처도 품고 품어서 나이테로 만들다

    미국 서부의 건조한 저지대 및 중지대 산림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산불은 강도가 낮은 지표화(Surface Fire)로 구성된다. 이것은 불이 나무줄기에 남긴 흉터를 보고 알 수 있다. 지표화는 전형적으로 바닥을 타고 번지며 숲의 상층부인 수관까지는 도달하지 않는다. 하층부에서 풀, 관목, 묘목, 새싹 등을 태우지만 크고 성숙한 나무들에는 흉터 외에는 대체로 큰 해를 주지 않는다.


    사실 나이 든 나무들은 지표화 발생 이후 더 잘 자라는데 물과 영양분을 두고 벌여야 하는 경쟁이 제거되고 산불 연료 사다리(Fuel Ladder), 즉 불이 숲 바닥에서 상층부까지 타고 올라가게 만드는 하층부 식생의 발달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불이 상층부까지 번지면 큰 나무들에게도 파괴적이다.


    미국 남서부와 캘리포니아의 많은 숲이 화상을 입은 나무들을 품고 있다. 이 나무들은 한때 5~10년을 주기로 빈번하게 발생한 지표화의 산증인들이다. 서부 지역의 나무들은 수백 년에 걸친 흉터로 화재를 기록해 왔다. 나무 한 그루에 그런 상처 20개쯤은 기본이다. 나는 캘리포니아 트러키 근처의 도그 밸리에서 수집한 어느 그루터기 표본에서 기록적인 개수의 흉터를 발견했다. 내 나이테 연대에 따르면 그 그루터기는 1854년에 베어진 나무의 잔해다. 나무는 300년을 살면서 무려 33개 이상의 화흔을 기록했다.


    화재로 인한 흉터는 종종 산비탈에 자라면서 산의 정상 방향으로 바늘잎, 가지, 심지어 통나무 같은 잔해들을 쌓아 놓은 나무의 기부에서 발견된다. 지표화가 산의 경사면을 타고 올라갈 때 이 언덕 지점에서 더 오래 머무르면서 연료를 제공받아 더 뜨겁고 강렬하게 타오른다. 강한 불이 나무껍질을 뚫고 들어가면 고양이 얼굴(Cat Face)이라고 알려진 세모 모양의 노출된 흉터를 남긴다. 고양이 흉터라는 말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그 흉터는 고양이 얼굴을 하나도 닮지 않았다. 인간과 달리 나무에게는 상처를 치유할 메커니즘이 없다.


    나무가 상처를 입으면 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는 새로운 목재 세포를 키워 상처 부위 양쪽에서부터 흉터를 덮고 자라 마침내 닫아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불이 5~10년 만에 한 번씩 자주 일어나면 대개는 상처가 밀봉되기 전에 다음 불에 노출되고 만다. 그러면 상처 부위는 나무를 보호하는 껍질도 벗겨진 상태고 또 상처 조직에는 나뭇진 함량이 높기 때문에 연속적인 화상에 추가로 손상되기 쉽다. 그래서 보통 같은 자리에 또 상처를 입어 고양이 얼굴이 커지고 나무는 상처를 덮기 더 어려워진다.


    몇 년 뒤 세 번째 불이 덮치면 또 다른 흉터가 추가되고 고양이 얼굴은 한층 넓어지고 그렇게 상처 입는 패턴이 반복한다. 한 나무가 계속해서 불에 델 때마다 나이테로 화재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새로운 상처가 추가되는 것이다. 각 화흔은 특정한 나이테 안에서 확인된다. 표본의 나이테 순서를 해당 지역의 나이테 연대기와 비교하면 각 화흔을 입힌 산불이 일어난 정확한 연도를 밝힐 수 있다. 더 대단한 것은 나이테 안에서 화흔의 정확한 위치, 즉 흉터가 난 곳이 춘재냐 추재냐, 아니면 두 고리 사이의 경계냐를 따지면 산불이 발생한 계절까지 추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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