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포토 랭귀지

저   자
김용호
출판사
몽스북
출판일
2022년 06월
서   재







  • K포토 시대, 패션 사진의 거장 김용호! 한 분야에서 인정받기도 쉽지 않은데 김용호의 사진은 매번 그가 딛고자 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정점을 기록하고 센세이션하게 회자됩니다. 그가 최초로 담아낸 40년간의 아카이브이자 김용호를 수식하는 다양함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포토 랭귀지


    문제의 답은 클라이언트에게 있다

    홍미화 패션 사진집

    1990년대는 패션 사진의 전성기였다. 모든 브랜드의 마케팅 수단이 사진을 통해서 카탈로그가 되고 잡지 광고가 되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아마추어 모델로 잡지나 카탈로그에 출연해 얼굴을 알리고 인기를 얻어 방송에 데뷔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공한 많은 스타 배우들이 잡지 모델 출신이다. 나도 ‘하리케인’ ‘무크’ ‘시스템’ ‘마인’ 등의 브랜드 카탈로그를 전담해 촬영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교과서에는 없는 내 사진을 학습 자료로 사용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가르치는 정형화된 다큐멘터리 사진과는 다른, 상상치 못한 촬영 장소와 스타일링의 패션 사진이 학생들의 이목을 끌었을 것이다.


    홍미화는 한복 디자인에 영향을 받은 디자이너다. 한복 치마저고리의 실루엣과 백의민족의 흰색을 응용한 초기작은 “마치 산과 들과 강물로 옷을 지은 듯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3년 파리 프레타포르테 데뷔 때부터 화려한 조명의 런웨이를 거부하고, 대신 뱅센 숲속의 빈터에서 한국 고유의 ‘백의호상(백의호상)’ 디자인으로 컬렉션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후에도 센 강, 오래된 교회, 서커스장, 박물관 등 일상의 공간에서 이색 패션쇼를 열었다. 자신의 이름을 따 ‘미화MI WHA’라는 브랜드 론칭 후 나와는 잡지 패션 화보 촬영을 위해 처음 만났다. 사진을 통해 신규 브랜드의 정체성과 콘셉트를 보여줘야 하는 작업이었다. 즉흥적으로 몇 가지 콘셉트가 떠올랐다.


    먼저 ‘미화’ 브랜드 콘셉트를 재해석해 한국적 정서를 표현하고 싶었다. 브랜드를 상징하는 뮤즈는 ‘소녀’라고 생각했다.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포즈를 취하는 여성은 아닌 조금은 수줍고 어색한 표정을 지어줄 소녀를 찾았고, 카메라가 익숙한 프로패셔널한 모델 대신에 함께 일하던 그래픽 디자이너와 모델로서 경험이 전혀 없지만 홍미화 브랜드의 패션감성을 이해할 수 있는 주변 지인ㄴ들로 모델들을 구성했다.


    ‘사회적으로 성장한 어른들의 동화’ 콘셉트로 1970년대에 유년기를 지나온 이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싶었다. 유년기적 정서가 남아 있는 허름하고 다정한 골목 안쪽, 가족들과 유원지로 놀러 갔을 때의 풍경, 묘하게 쓸쓸한 분위기가 나는 여름 휴양지, 바닷물이 빠져나가 달의 표면처럼 느껴지는 갯벌 등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충남 안면도, 서울 운현공 옆에 있는 가회동 운현초등학교, 인천 송도 유원지 등을 다니며 촬영했다.


    홍미화는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디자이너다. 나이가 들어서도 커머셜한 작업을 지속한다는 것은 대중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독창성과 대중성은 공존하기 쉽지 않다. 패션쇼 의상은 독창적이지만 일상복으로서 활용도가 떨어지고,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입는 옷은 비슷비슷해 독창성을 논하기 어렵다. 그래서 패션 디자이너들은 초절정 고수가 되어 독창성을 인정받으려 노력하거나 스스로 대중화되는 길을 택한다. 사진집에 나온 홍미화의 의상은 지금 봐도 독창적이고, 평상복으로 입을 수 있을 만큼 활동적이다. 그래서 나는 홍미화를 시대를 앞서간 디자이너로 기억한다.



    공간에서 영감을 얻다

    덕혜재경(德惠再京)
     

    덕혜 옹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덕수궁에서 ‘덕수궁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인 덕수궁미술관과 덕수궁이 공동 주최한 것으로, 덕수궁 곳곳에 미술품을 설치하고 덕수궁미술관(석조전)으로 들어가면 덕수궁 곳곳에서 봤던 미술품의 해설을 볼 수 있는 전시 프로젝트였다.


    설치미술과 서도호는 함녕전에 고종의 이부자리를 재현했고,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은 석조전에 있는 버드나무로 엮은 의자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소파를 덕홍전 바닥에 설치했다. 광해군 시대 인목대비가 유폐됐던 석어당에는 실험적 작업을 하는 작가 이수경이 다이아몬드를 연상케 하는 작품 ‘눈물’을 설치했다.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은 다양한 사연을 담은 석어당의 방들을 아름답고 여성적인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지극히 행복했던 덕혜 옹주의 한 시절을 되돌리려는 듯 개회기 시대의 가구와 공예품을 전시하고, 덕혜 옹주를 연상시키는 영상 작품을 상영했다.


    덕혜 옹주가 자란 방에서 덕혜 옹주에 대한 전시를 보고 있자니 혼마 야스코가 쓴 덕혜 옹주의 전기『덕혜 옹주: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가 떠올랐다. 고종의 딸인 덕혜옹주는 강제로 일본에 보내져 일본 지방의 귀족과 결혼하고, 불행하게 살다가 병에 걸려 한국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혼마 야스코가 쓴 책을 보면, 남편인 다케유키가 덕혜 옹주를 사랑했음을 암시하는 시가 있다. 그 시를 읽으며 너무 늦었지만 덕혜 옹주의 불행은 조금을 덜어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하지 못한 다케유키의 진심이 늦게라도 하늘에 닿기를 기대하며, 나도 덕혜 옹주를 위한 시를 남기고 싶었다.


    김영석 디자이너의 동의를 구하고, 재즈 보컬리스트 정란을 모델로 섭외했다. 가녀리면서도 애잔한 슬픔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좋아 종종 정란의 공연을 보러 다녔는데, 말씨와 몸짓에도 품위가 넘쳐 덕혜 옹주를 잘 연기해 줄 것 같았다. 덕혜 옹주의 전기를 읽고 촬영에 임해 주면 좋겠다고 말을 건넸고, 정란도 흔쾌히 따랐다. 김영석은 촬영에 필요한 한복을 협찬해 줬다.


    ‘덕혜재경’에는 비운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한 덕혜 옹주가 100년 후 대한민국에서 다시 태어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편안하게 잠들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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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리케인 카탈로그

    나의 크리에이티브를 성장시킨 것은 불만족이었다. ‘파트너가 못하면 내가 하지’라 생각했고, 장르를 넘나들며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채워가다 보니 아트 디렉터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패션 사진 데뷔작이나 마찬가지인 1985년 ‘하리케인’ 가을 카탈로그는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당시야말로 패션 사진 촬영은 대부분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호텔이나 식당 등에서 이뤄졌는데, 나는 그 공식을 깨고 인천 차이나타운을 배경으로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었다.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이듬해 청나라 조계지가 설치되면서 중국인들이 건너와 모여 살던 차이나타운은 193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누리다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여러 가지 규제가 가해지면서 위축됐다고 했다.


    본국이나 제3국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많았고, 버려진 건물은 관리가 되지 않아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화려한 색감과 이국적인 배경 덕에 홍콩 로케이션을 다녀온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자유롭게 해외를 드나들 수 없는데 어디서 이런 기상천외한 배경을 찾았냐는 거다. 완성된 카탈로그 사진 위에는 내 마음대로 한자를 조합해 ‘금의야행(錦衣夜行,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걷다)’, ‘청색청심(靑色淸心, 푸른빛 맑은 마음)’, ‘입추비상(入秋飛翔, 가을에 접어드니 날이 오른다’과 같은 글자를 적어 더욱 이국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후 패션계의 러브콜이 쇄도했다.


    1980년대는 잡지 광고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다. 대신 카탈로그가 인기를 끌었다. 잡지에 게재되는 패션 사진을 찍는 이도 드물었다. 그즈음 ‘하리케인’ 카탈로그로 내가 등장했다. 이때부터 국내에도 패션 사진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고, 사진가들은 다양한 시도를 하며 잡지의 시대를 주도했다.


    패션 사진에 대한 내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장소, 모델, 스타일링, 편집 디자인까지 모든 것이 새로워야 한다.



    삐딱한 시선

    백스테이지(bag stage)

    프랑스 사회학자 장 클로드 카프만은 현대 여성에게 가방이 갖는 의미를 이렇게 해석했다. “여자의 가방을 들여다보는 건 그녀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2012년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핸드백 박물관 ‘백스테이지’가 개관했다. 브랜드 핸드백 ODM(제조자 개발 생산 방식) 회사인 ㈜시몬느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지하의 전시 공간에서 2013년 10월부터 2015년 5월까지 가방을 주제로 한 다양한 전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2년 동안 9번의 전시가 열렸는데, 나는 그 첫 주자로 전에 참여하게 됐다. 전시 주최 측에서는 평범한 가방을 문화적 오브제, 예술로 변용하는 시도를 보여달라고 했다.


    가방이 갖는 상징성에 주목했다. 가방은 단순한 수납 도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람들, 특히 여자들에게 가방은 욕망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가방이 때로는 자본과 성의 교환 가치가 성립되는 매개체로 인식된다는 점을 풍자를 하고 싶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두 문장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와 “너 자신을 알라!”


    띄어쓰기에 따라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기도 하고, 아버지가 가방 안에 들어가게도 되는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문장을 시각화하기 위해 말 그대로 관람객을 가방 안으로 들여보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전시장의 공간을 가방으로 바꾸었다. 바깥에는 악어무늬 가죽을 붙이고 문이 있어야 할 곳에 지퍼를 달았다. 그리고 외벽에 “Nosee te Ipsim(너 자신을 알라)”라고 네온사진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소크라테스의 좌우명이자 델피 아폴로 신전 현관 기둥에 새겨져 있는 희랍어 명문이다.


    방 안에는 이미지가 반복되고 중첩되도록 여자의 누드가 프린트된 거울을 사방에 붙였다. 지퍼를 열고 가방 안에 들어간 관람객들은 가방 속의 가방과 여자의 누드 사진을 마주하게 된다. 거울에 이미지가 겹쳐 관람객의 시선에 따라 가방 안에 여자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실 ‘너 자신을 알라’ 가방에는 트릭이 있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여자의 벗은 몸은 욕망의 대상이다. 일부러 주요 부위가 프린트되지 않도록 누드 사진을 네거티브로 바꿔 작업했고, 때문에 관객이 벗은 여자의 몸을 자세히 보려고 할수록 자신의 얼굴만 또렷해지는 구조였다. 욕망의 대상을 자세히 보기 위해 다가갈수록 선명해지는 자신의 모습, 추한 욕망의 대상이 결국 관람객 자신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관람객들이 ‘너 자신을 알라’ 가방에서 무엇을 봤는지 궁금하다. 가방인지, 여자의 누드인지, 자기 자신인지.



    보이는 것 너머의 진실

    매한불매향(梅寒不賣香)

    매화는 겨울 추위가 가시기 전에 꽃망울을 틔운다.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피는 꽃은 청빈 속에서 살아가는 선비의 기개에, 추위 속에서 퍼지는 맑은 향은 군자의 덕에 비견되곤 한다. 퇴계 이황도 ‘매화는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뜻의 ‘매한불매향(梅寒不賣香)’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매란국죽 중 맨 앞자리를 차지할 만큼 조선 시대 선비들이 가까이한 매화는 시, 서, 화 등에도 빠짐없이 등장해 왔다. 2007년 문화재청은 오랜 세월 우리 생활, 문화와 함께해 온 네 곳의 매화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바 있다. 문화재청이 지정한 한국 4대 매화는 강릉 오죽헌 율곡매, 구례 화엄사 화엄매, 장성 백양사 고불매, 순천 선암사 선암매로 수령이 400~600년이 넘는다.


    내가 매화에 취해 겨울과 봄의 경계마다 남도로 향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10년이 훌쩍 넘는다. 한국 4대 매화와 더불어 광주 전남대학교 대명매를 기록하고 있는데, 강릉을 제외하고 나머지 도시는 전라도에 모여 있는데다가 개화 시기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동선을 잘 짜야 한다. 그리고 부지런해야 한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전국의 상춘객이 모두 모여든 것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인산인해를 이룬다. 반복된 촬영으로 요령이 생긴 나는 일부러 템플 스테이를 신청해 절에서 자고, 경내에 아무도 업슨 이른 아침 고요한 시간을 꽃과 함께 담는다.


    각각의 매화나무는 비슷한 듯 다른 매력을 풍긴다. 화엄사 길상암 앞에 홀로 피어난 홍매화는 꽃과 열매가 작은 편이지만 유난히 색이 붉고, 연분홍 꽃을 피우는 백양사 고불매는 멀리 백암산의 절경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선암사 무우전과 팔상전 주변에 심은 20여 그루의 선암매는 봄마다 사찰 지붕을 온통 꽃으로 뒤덮는다.


    근대의 대표적인 화가이자 미술 이론가, 수필가인 근원 김용준은 그림을 그리듯 소소한 일상을 담아 1948년 펴낸 수필집 『근원수필』에서 이렇게 말했다. “매화는 늙어야 한다 합니다.” 내가 찾아다니는 것도 수령 200살이 훌쩍 넘은 늙은 매화다. 늙은 매화의 나뭇가지를 보고 있자면, 김용준의 말이 이해된다. 늙은 매화야말로 품위가 있다. 구불구불한 나뭇가지는 때로 노인의 발가락 관절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풍상을 안고 오랜 시간 인고의 세월을 살아낸 강인함이 느껴진다. 가끔은 나뭇가지의 굴곡이 붓글씨를 쓸 때 방향을 틀어 그은 획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른 아침 매화 앞에 서서 복잡한 나뭇가지 사이로 나라 국(國), 내 천(川), 흐를 류(流)자 등을 읽어내는 것도 매화를 찍을 때 누리는 즐거움 중 하나다. 만개한 홍매화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화려한 꽃망울의 흐트러짐과 눈 앞 가득한 향기. 마치 붉은 피를 토하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의 생명의 삶과 죽음. 아아, 이것이 꿈속의 건가 싶기도 하다.


    남도의 꽃을 찍은 다음에는 서울로 올라와 창덕궁의 매화를 기록한다. 절집에서 피어난 매화는 절개가 있고, 궁궐에서 피어난 매화는 화려하고 기품이 있다. 백양사 매화가 죽어간다는 얘기가 들린다. 다음 봄은 더 분주해질 것 같다. 



    우연한 발견

    인더스트리얼 뷰티(industrial beauty)

    현대자동차 ‘브릴리언트 마스터피스’ 작업을 하면서 어렴풋이 짐작하던 것을 완전히 이해하게 된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것, 본질에 집중해 만든 기계는 기능적이면서도 미학적인 완성도가 높다. 다른 하나는 ‘노동의 고결함’에 대한 것이다. 노동 집약적인 산업 현장은 전혀 쾌적하지 않다. 위생 상태가 불량하기도 하고 산업 재해로부터 안전하지도 않다. 현장의 노동자들에게는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공간이다. 동시에 노동자들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최선을 다해 만든 결과물이 있고, 그것이 다수의 삶을 이롭게 할 거라는 확신에서 오는 만족감 말이다.


    노동자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 공간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노동 집약적인 공간을 촬영할 때면 늘 노동자 스스로 숭고한 노동의 가치에 대해 자부심을 갖길 바라는 마음으로 임한다.


    사진가의 일은 일상 속 노동 공간을 미학적인 시선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평범했던 롯데케미칼 공장은 밤이 되자 우주선이 발사될 것 같은 낯선 공간으로 바뀌었다. SF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판타지를 더하기 위해 컬러 보정을 했고, 결과물을 본 직원 모두 “우리 공장이 맞느냐”며 놀랐다. 이토록 철저하게 기능적이면서 아름다운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는 거다.


    한 발 나아가 공간을 채운 사람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커다란 조선소가 있는데, 거대한 침목이 수십만 톤 되어 보이는 배를 이고 있고 묵직한 쇳덩이가 그 침목을 받치고 있다. 그 아래로 거대한 콘크리트 지지대가 놓여 있다. 배가 건조되는 동안 비바람을 맞은 쇳덩이 때문에 콘크리트에는 녹물 자국이 선명했다. 나는 그 자국이 한 척의 배가 만들어지기 위해 흘린 수많은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이며 노동의 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기업이 생산하는 재화만큼 브랜드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부터다. 재화를 판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이미지와 구조의 건전성, 도덕성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버타이징’은 그래서 중요하다. 애드버타이징이 소비자를 향한 기업의 상품 광고라면, 인버타이징은 회사의 구성원들을 향한 기업의 이미지 광고다. 가장 가까운 소비자는 회사의 구성원이고, 그들이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에 만족했을 때 바이럴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직업의식이 약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일은 먹고살기 위한 돈벌이이일 뿐이고, 자아실현은 취미 생활을 통해서나 이루는 거라는 태도를 가진 청년들을 만날 때마다 그렇다. 그들에게 일을 통한 성취감 같은 얘기를 꺼내면 ‘꼰대’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역설적으로 나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나를 둘러싼 환경을 아름답게 바라볼 때 더 행복감을 느끼고 직업의식도 높아진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노동 현장의 사진을 통해 노동자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것 또한 현대를 사는 사진가의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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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