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시민권 이야기

저   자
하승우
출판사
이상북스
출판일
2022년 11월
서   재







  • 누가 나를 인간으로 대하거나 만들어 주기를 바라지 말고 먼저 나 스스로 정치화될 때 우리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미래를 살아갈 청소년들이 시민권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시민권 이야기


    시민권의 역사

    시민권의 탄생

    왜 시민인가

    시민의 등장은 일반적으로 규정된 신분 질서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기 위한 투쟁과 연관이 있습니다. 시민은 자유인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서구의 중세는 왕과 귀족, 종교인이 지배하는 시대였습니다. 대부분의 평민과 농노는 왕과 귀족의 일방적인 지배를 받아야 했습니다. 힘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마음대로 빼앗을 수 있는 사회, 핏줄에 따라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는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도시는 그런 질서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공간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물건을 살 수 있는 시장이 곳곳에 있고 식당이나 카페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 시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건을 만들어도 살 사람을 찾아야 했고 식당이나 카페는 교통의 중심지에만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사람들의 왕래가 잦고 가게들이 생기면서 시장이 만들어지고 그 시장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었습니다.


    -시민의 등장

    새롭게 사람들이 모인 도시는 비교적 기존의 혈연,지연에서 자유로웠고 물건을 사고 팔거나 치안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했기 때문에 도시의 주민들은 서로 논의를 많이 해야 했습니다. 도시의 주민을 뜻하는 시민은 단순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런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을 뜻했습니다. 기술을 가지고 물건을 생산하던 장인들과 상품을 유통하던 상인들은 자신의 권리를 무시하는 봉건질서에 서서히 맞서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위협받는 것은 물론 재산을 빼앗기는 것도 싫었으니까요.


    당연히 왕과 귀족들은 이런 도시들이 눈엣가시 같았겠죠. 그래서 도시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도 자주 합니다. 이렇게 낡은 질서와 새로운 질서가 힘을 겨루던 상황에서 터진 사건이 바로 프랑스대혁명입니다. 그리고 1789년 8월 26일, 프랑스 제헌국민의회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하 권리선언)’을 공표했습니다.


    국민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프랑스 인민의 대표자들은 인권에 관한 무지와 망각, 멸시가 공공의 불행과 정부 부패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에 유의하면서, 하나의 엄숙한 선언을 통하여 인간에게 자연적이고 양도할 수 없으며 신성한 제 권리를 밝히려 결의한다. 그 의도하는 바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항시 이 선언에 준하여 자신들의 권리와 의무를 계속 상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입법권과 행정권의 모든 행사가 모든 정치제도의 목적을 수시로 비교해서 더 신중하게 행사되도록 하며, 시민의 요구가 차후 단순하고 명확한 제 원리에 기초를 둔 것으로서, 언제나 헌법의 유지와 모두의 행복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평등과 자유를 위한 권력

    이보다 14년 전인 1775년 4월 미국에서는 대영제국과 미국 이주민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전쟁의 이유와 관련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지만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하기 위해 총을 들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독립의 정신을 밝히는 문서가 1775년 7월 4일에 합의된 독립선언서 초안입니다. 미국독립선언서도 정부의 수립과 그 권력의 목적이 모든 사람의 평등과 자유라는 점을 분명히 했고, 그 목적을 어길 경우 정부를 무너뜨릴 권리가 시민에게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이처럼 유럽과 미국의 시민들은 모든 인간에게 자유와 평등, 행복 추구의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고, 정부는 그 권리를 보장할 때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권리가 모두에게 있다는 이야기가 왜 중요할까요? 귀족이든 평민이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살아갈 권리’가 권력보다 앞선다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에 앞선다는 것은 정부가 그런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제 정부는 시민의 이런 권리를 중심으로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존의 권력이 왕과 귀족을 위한 질서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근대의 권력은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쓰여야 한다는 거죠. 이렇게 시민은 자신을 위한 권리를 만들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싸웠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인권과 시민권

    인권과 시민권의 공통점

    인권과 시민권은 같은 말일까요? 인권과 시민권은 같은 말일수도 있고 다른 말일수도 있는데요, 일단은 어떤 지점에서 같은지 살펴봅시다.


    인권은 보통 천부인권, 즉 인간이 태어나면서 자연적으로 갖게 되는 권리라고 합니다. 그러니 인권은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권리라고 볼 수 있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말 누구나 인권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인권의 역사는 인권운동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워 온 역사이기도 하니까요.


    인권은 매우 보편적인 권리로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규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권리가 무엇일까요? 당연히 생명에 대한 권리겠죠. 그래서 자유권 규약은 “모든 인간은 고유한 생명권을 가진다. 이 권리는 법률에 의하여 보호된다. 어느 누구도 자의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합니다.


    -모두에게 필요한 자유권

    시민 각자가 자유를 실현하다 보면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고 정부가 지나치게 시민의 삶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별도의 국가기구를 만들기도 합니다. 한국에는 입법, 사법, 행정 3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 기구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아동인권침해에 대해서도 개입하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13세 이하 아동을 받지 않는 소위 ‘노키즈존’에 대해 차별행위로 판단하고 시정을 권고한 사례입니다. 인권은 모두를 위한 것이고, 청소년에게도 자유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자유는 청소년에게 더욱 절실합니다. 청소년은 ‘미래를 위해’라는 명목 아래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 권리까지 유예된 상태니까요. 청소년의 권리는 보호받아야 하고, 청소년 스스로 권리를 규정하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권리가 더 강화되고 어떤 권리가 유예될 수 있는지에 대해 어느 일방이 결정할 수 없습니다. 청소년의 판단이 중요합니다.


    -학생인권조례

    학교의 경우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률이 따로 존재합니다.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제1조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근거하여 학생의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모든 학생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제3조 학생 인권의 보장 원칙은 “①이 조례에서 규정하는 학생 인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이며, 교육과 학예를 비롯한 모든 학교생활에서 최우선적으로 그리고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② 학생의 인권은 이 조례에 열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시되어서는 안 된다. ③학칙 등 학교 규정은 학생 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제한할 수 없다”라고 규정합니다. 학생 인권이 기본권이고 모든 학교생활에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인권과 시민권의 관계

    한국은 1948년 헌법이 제정된 이후 군사독재정권이 권리를 유보시킨 적은 있지만 기본권 자체를 부정한 적은 없습니다. 양심의 자유나 집회 및 결사의 자유는 유보되거나 제한되었을지언정 그 자체가 폐지된 적은 없습니다. 독재 정부라 하더라도 인권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독재 정부가 인권을 실현한 건 아니고, 독재 정부도 쉽게 부정하지 못하는 것이 인권이라는 말입니다. 반면에 독재 정부에서 실현 불가능한 것은 시민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리들에 대한 논의조차 시도하기 어려우니까요. 이렇게 보면 시민권의 보장 없이는 인권은 유지될 수 있지만 제 몫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한국만의 특별한 상황은 아닙니다. 서구에서도 인간의 기본권이라 했을 때 인간의 기준이 처음엔 백인 성인 남성이었고, 일정한 재산을 가진 사람에게만 그런 기본권이 보장되었습니다. 재산이 없는 가난한 사람과 여성, 유색인종의 권리는 부정되었지요. 인권과 시민권이 불일치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분명 인권은 여러 나라에서 헌법상의 기본권을 정의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인권과 시민권의 불일치는 끊임없이 그 경계를 조절해야 하는 과정을 만들었고, 민주주의는 그 과정에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누가 권리를 보장할 것인가’라는 면에서도 정부에게만 그 역할을 주면 인권은 국가라는 경계를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편적 인권과 국가의 시민권의 차이점이 생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권과 시민권의 차이점

    ‘권리’는 대상과 주체가 분명합니다. 인권이 보편적 권리라면, 시민권은 사회적이고 구체적인 권리입니다. 그래서 시민권은 그 권리를 구성하고 보장하고 재구성하는 사회적 과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민권에서는 권리를 누리고 보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무엇이 권리인지를 구성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인권과 시민권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즉 법이 받쳐 주지 않으면 인권은 쉽게 무력화될 수 있습니다. 제 1‧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국경은 많이 달라졌고 그러면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주민들, 소속된 국가가 달라진 주민들이 대규모로 발생했습니다. 국가가 바뀌었더라도 계속 국가에 소속된 사람들의 사정은 그나마 나았지만,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의 인권은 처참한 수준이었습니다. 정부가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시민들도 이들을 적대하고 혐오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한나 아렌트는 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정치조직의 상실이 그를 인류로부터 추방한 것”이라고 보고, 이들에게는 ‘권리를 가질 권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권리를 가질 권리

    권리를 가질 권리는 일종의 정치적 권리입니다. 정치 공동체에서 자기 자리를 가지지 못하고, 그래서 어떤 법적‧정치적 지위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다시 공적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싸움을 시작해야 합니다. 단지 법 앞의 평등을 보장하겠다는 말로는 실질적인 차별과 혐오를 막을 수 없습니다.


    아렌트는 추상적 인권보다 실질적인 시민권이 더욱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인간의 권리라는 것은 시민권 없이 또는 그보다 앞서 존재하기 어렵다고 본 거죠.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실질적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고, 그러므로 정치로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런 장을 스스로 만들거나 초대하도록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에도 비슷한 조항이 있습니다. ‘제26조 권리를 지킬 권리’가 그것인데, “학생은 인권을 옹호하고 자기나 다른 사람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가지며, 그 행사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어떤 활동에 개입할 수 있고, 그런 일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시민권을 통해 현실의 구체적 권리가 되는 인권

    그러면 인권은 무의미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인권의 권리를 현실에서 구현하고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 시민권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인권의 권리가 세워지지 않았다면 시민권도 쉽게 실현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민권은 반드시 정부가 보장해야 하는 것만도 아닙니다. 정부가 제한적으로 보장하는 시민권을 확장하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역할은 바로 능동적 시민사회, 사회운동의 몫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건 시민들이 직접 조례를 발의하는 운동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권이 기본권을 보장한다면 시민권은 그 권리를 구체화하고, 확장하고, 재구성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은 국가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에도 있고요. 인권은 보편적이고 시민권은 특정한 영역 내의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고 보지 말고 끊임없이 권리의 영역을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시민권의 적용

    시민권 요구하기

    유명무실한 한국의 시민권

    한국은 일제 식민지를 경험했고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 한국전쟁, 군사독재라는 최악의 현대사를 거친 나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은 정부의 눈치를 보고 일방적 통치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고 자기 권리를 공개적으로 요구해 본 경험은 거의 없습니다. 한국에서 시민권은 존재하지만 현실에서 현히 쓸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의 시민들이 수동적으로 권력에 복종해 왔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독재정권이 스스로 물러난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요. 이승만 정권은 1960년 4월의 항쟁들로 무너졌고, 박정희 정권은 1970년대의 끊임없는 민주화 운동으로 자멸했으며, 전두환 정권은 1987년 6월항쟁으로 물러났습니다. 그 두에도 시민사회운동의 민주화 노력은 중단되지 않았고요. 시민들의 움직임도 2002년 12월 신효순‧심미선 추모 촛불시위, 2008년 광우병 위험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등으로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외국의 시민들은 한국처럼 역동적인 나라가 없다며 부러워하고, 이를 시민혁명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경제 규모에 비해 낮은 행복지수

    한국 사회가 역동적인 건 사실이지만, 그 역동성이 정치나 경제의 구조적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시민들이 앞장선 것은 사실인데, 그 이후 과정은 기존의 정치 세력이 권력을 나눠 먹는 형태였습니다. 두 개의 주요한 정당이 권력을 분점하는 양당제는 정당의 이름만 계속 바뀐 채 이승만 정부 이후 지금까지 거의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무슨 비리가 터지거나 문제가 생기면 곪은 부위를 잘라 내는 게 아니라 정당의 이름만 바꾸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치개혁은 너무 어려운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나마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어 만 18세까지 투표권과 피선거권이 주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많은 돈과 조직이 필요한 선거에 청소년들이 후보로 직접 출마하긴 어렵습니다. 그리고 시민참여제도가 늘어났다고 하지만 각종 위원회의 수가 늘어났을 뿐 참여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단적으로 지방정부나 중앙정부의 위원회에서 청소년이나 장애인의 참정권은 존재하지만 실효성이 없는 권리입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무언가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정치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치가 나빠지면 경제 상황은 더욱더 나빠집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나 1인당 국민소득은 계속 높아졌지만 대다수 시민은 여전히 불안한 마음으로 일하고 출퇴근을 합니다. 2022년 3월 유엔 산하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가 발표한 <2021 세계 행복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146개국 중 59위입니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이제 세계 10위권에 들어가는데, 행복지수는 왜 이렇게 낮을까요?


    2021년 12월에 발표된 세계불평등연구소의 보고서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한국도 나오는데요, 한국의 상위 10%는 전체 자산의 58.5%를 차지했습니다. 상위 10%의 자산 규모는 약 14억 원, 하위 50%의 자산은 약 2700만 원으로, 상위 10%의 자산이 하위 50%보다 51.8배 정도 많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상위 10%의 자산 비중은 계속 상승하고 하위 50%의 자산 비중은 계속 떨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부의 불평등이 심각한 사회에서는 약자의 권리가 보장되기 어렵습니다.


    -적극적으로 시민권을 요구해야 하는 이유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경제 성장도 이룬 나라인 한국에서 왜 이런 문제들이 사라지지 않을까요? 그것은 권력이나 돈을 쥔 기득권층이 너무 강력하게 결속되어 있고, 남은 자원을 놓고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니 민주주의와 분배가 자리를 잡을 시간과 조건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 망했어’는 아니고, 어떤 점에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더욱더 시민권을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합니다. 시민권은 단순히 투표권이나 직업을 얻을 권리만이 아니라 정치에 참여할 권리,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도 뜻하니까요.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말하고 결정할 권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이 열심히 권리를 요구해야 합니다. 사실 독재정권에 맞섰던 여러 항쟁과 촛불집회에서 청소년들은 중요한 정치 주체였습니다. 특히 2002년과 2008년의 촛불집회는 청소년들이 불을 지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고요. 문제는 그런 역할을 맡았지만 정작 현장에서도, 이후의 정치과정에서도 청소년의 자리는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집회장에서 당차게 발언을 하면 시민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했지만 정작 청소년의 권리를 보장하면서 직접 정치에 참여하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이 사실은 한국 사회가 청소년의 정치화를 끊임없이 거부해 왔음을 증명합니다. 그러면 학생들이 정치적 논쟁에 휘말린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그게 왜 문제일까요? 미리 그런 논쟁을 경험해야 어른이 되어서도 정치적 판단을 현명하게 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 사회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무조건 연장자를 따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도 공직선거법 제190조 ‘지역구 지방의원 당선인의 결정‧공고‧통지’를 보면 “최다득표자가 2인 이상일 때에는 연장자순에 의하여 당선인을 결정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왜 시민들에게 다시 물어 보지 않고 연장자순으로 결정할까요? 이미 나이 든 정치인은 많으니 청년에게 양보해야 하지 않을까요?


    청소년이나 청년들이 정치를 잘 모르고 정보가 없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인터넷과 모바일 검색을 이용하는 청소년들이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습니다. 아직 자기 주관이 부족하고 외부 영향을 많이 받아서라고요? 글쎄, 그런 영향은 나이와 상관없는 것 아닌가요?


    지금처럼 미래를 생각할 수 없는 시대에는 현재를 충실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그런 보장의 가장 기본이 정치적 권리고요. 정치적 권리가 보장되면 다른 권리들을 구상하고 실행할 수 있으니까요.


    청소년들에게 정치적 권리가 없으니 중앙‧지방정부의 예산에서 청소년 예산은 1%도 되지 않습니다. 동네마다 경로당의 수는 수백 개가 넘지만 청소년 공간의 수는 열 손가락 안입니다. 인구 비율로 따지면 청소년 외에도 많은 사람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지 못해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들을 배려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시민에게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미래’ 시민으로 밀어 놓으면, 그 시민들은 미래에 어떻게 문제를 인식하고 대안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그러니 이제 우리는 열심히 시민권을 요구해야 합니다. 시민권은 권리를 정의하고 적극적으로 요구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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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