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이 별에서의 이별

저   자
양수진
출판사
싱긋
출판일
2022년 10월
서   재







  • 살아지다 사라져간다는 것에 대하여….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이 별에서의 영원한 이별, 그 슬프고 찬란한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이 별에서의 이별


    죽는다는 것, 잊힌다는 것

    필멸이 필연이라지만

    검찰청에서 분류하는 ‘5대 강력범죄’란 폭력, 흉악사범, 성폭력, 약취·유인, 방화이다. 형법상의 범죄 분류체계를 봐도 강력범죄를 두 가지로 나누는데 ‘흉악’ 과 ‘폭력’이다. 이중 흉악에 해당하는 범죄가 살인, 강도, 방화, 강간이다. 모든 범죄가 다 끔찍하지만 살인과 강도, 강간은 범죄가 이루어지는 시점에서는 한두 명을 대상으로 삼지만, 방화는 한순간의 불로 불특정 다수가 동시에 피해를 볼 수 있기에 굉장히 위험한 범죄라 생각한다.


    장례를 업으로 삼으며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고, 누구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마주한다는 단순한 이치를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만약 입장을 바꿔 내가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한다면, 혹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이와 같다고 생각하면 자다가도 몸서리가 쳐진다. 다시는 이런 사건이 없었으면 하는 착잡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대학에 갓 입학한 외동딸을 둔 부부가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 이사를 했다. 착실하게 공부만 하던 딸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고, 알뜰살뜰 검소하게 살림을 꾸려나간 덕분에 처음으로 온전한 내 집을 마련했다. 어제 이사를 와서 아직 풀지 못한 이삿짐 박스가 거실에 쌓여 있다. 아직은 잠자리에 이불만 간신히 펴고 뒤척이며 잤는지 삭신이 쑤셔온다. 그래도 어머니는 눈뜨자마자 분주하게 쓸고 닦으며 살림살이를 정돈한다. 첫 방학을 맞은 딸도 곁에서 한 손 거뜬히 돕는다.


    여느 가족처럼 화기애애한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데 갑자기 펑 하고 폭발음이 나더니 아래층에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진다. “이게 무슨 소리야?” 눈이 휘둥그레진 아버지가 현관문을 열고 나선다. 아랫집에서 우지끈 쿵쾅 때려 부수는 소리가 나서 무슨 일인지 궁금한 아버지는 계단을 내려간다. “으악!” 그의 외마디 비명을 듣고 딸아이가 젊고 날렵한 몸으로 빠르게 소리를 쫓아 발길을 옮긴다.


    화마의 습격으로 순식간에 생지옥이 된 아래층의 불길이 먹이를 찾아 돌진하는 괴물처럼 계단을 휘감고 올라온다. 걷잡을 수 없이 몸집이 거대해진 불덩이가 애타게 아버지를 찾는 딸아이의 여린 몸까지 삼켜버렸다.


    엄마는 본능적으로 옥상을 향해 뛰었다. 남편과 아이가 저 일렁거리는 불길과 유독가스를 뚫고 밑으로 내려갔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지만 옥상에만 당도하면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겁에 질린 표정으로 옥상에 올라 다른 주민들 사이를 헤집고 또 뒤져도 딸아이와 남편을 찾을 수 없다.


    이 가족이 이사 온 집의 바로 아래층에 사는 부부가 싸움을 하다가 그만 홧김에 불을 질렀던 모양이다. 불행히도 인재였던 것이다. 정작 불을 지른 부부는 무사히 사고 현장에서 탈출했다고 한다. 화마는 엉뚱한 가족을 향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둥지를 튼 지 채 하루도 안 된 가족에게 말이다.


    가족들 중 유일하게 다치지 않은 어머니가 금지옥엽 외동딸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홀로 빈소에 앉아 있다. 아버지는 중태에 빠져 입원중이다. 꽃 한 송이 없이 허전하게 놓인 딸의 영정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경이 어떠할지 감히 어림잡을 수 없다. 어머니의 몸 상태도 위태로워 보인다.


    안치실에서 딸의 시신을 만났을 때의 참혹함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이다. 계단에서의 사투가 눈앞에 그려지듯 팔과 다리의 관절이 직각으로 구부러져 그대로 굳어버렸다. 현장의 아비규환을 그대로 옮겨온 자극적인 냄새가 코를 찌른다. 장갑을 끼고 수의를 입혀드리기 위해 고인의 팔을 만지니 손길이 닿는 부위마다 새카맣게 덮여 있던 피부가 조각조각 가루가 되어 우수수 떨어졌다. 마치 내 살갗이 벗겨져나가는 것 같은 아픔이 전해져 미간이 찌푸려졌다.


    억지로 사지를 바르게 폈다간 되레 부러질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 어쩔 수 없이 더 큰 관으로 교체하여 빈 공간에는 고인을 위로하는 마음을 담아 꽃 장식을 해드렸다. 하지만 이대로 화장장에 가서 한 번 더 몸서리쳐야 할 내일이 너무나 애달프다.


    아무런 눈물도 말도 없이, 홀로 살아남은 것이 한스러운 어머니는 5분 남짓 가만히 바라보다 빈소로 돌아갔다. 혹여나 쓰러지시진 않을까 걱정되어 마음을 졸였지만, 얼마 남지 않은 기력을 간신히 부여잡고 소리 없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셨다. 마음속으로 무슨 말을 건넸을까. 돌아서는 굽은 어깨 위로 쓸쓸함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따금 삶이라는 것이 이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싶었다. 온갖 죽음의 변주 앞에서 의연해져야 한다고 다짐했건만, 이때만큼은 쉽게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다. 인생이 아름답다는 말은 세상의 단면만 보고 섣불리 내뱉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생의 곳곳에는 지옥의 틈새가 도사리고 있음을……. 원치 않아도 모든 생명은 죽음의 우연성이 느닷없이 자신을 범할 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했다.


    아무리 필멸이 필연이라는 것을 머리로 인정해도 그것만으로는 가슴의 고통이 덜어지지 않는다. 되뇔수록 인간은 죽음 앞에 한없이 나약하고 무력한 존재임을 깊이 깨닫게 될 뿐이었다.


    이 와중에도 사람은 밥을 먹는데

    가족이 없는 분의 입관 때는 꽁꽁 얼어버린 강물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마음이 시리다. 사람이 태어나 자라면서 ‘무연고’일 수가 있을까.


    이번에도 안타까운 주검이 발견되었다. 서로의 안부를 이따금 묻고 지내던 고인의 친구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혈육도 없이 볕도 들지 않는 방에서 쓸쓸히 숨을 거둔 고인이 너무도 안타까워 그 친구분이 장례라도 치러주겠다고 나섰다. 장례지도사 입장에선 이렇게 나서주는 사람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장례식장에 마련된 차가운 냉장시설에는 가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례비 부담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시신들이 많다. 나는 그 친구분의 손을 잡고 감사하다고 거듭 인사를 드렸다.


    시신은 어느 정도 부패가 진행되었지만 난방을 하지 않은 탓에 크게 상하진 않았다. 끼니를 잘 챙겨먹지 못한 건지 남성인데도 팔다리가 어린아이처럼 가늘었다. 지켜보던 친구의 눈이 촉촉이 젖어든다. 그런데 잠깐 어디 좀 다녀오겠다고 빈소를 떠났던 그 친구분이 흰 상자를 가져왔다. “이게 뭔가요?” “아 이거, 친구 녀석이 키우던 개인데 화장해서 오는 길이에요. 방에 가니까 글쎄 옆에서 같이 죽어 있더라고요. 참 내. 평소에도 문을 항상 열어놔서 개 혼자 왔다갔다하고 그랬는데, 왜 도망 안 가고 그렇게 죽었는지 몰라. 먹을 것도 없었을 텐데…….”


    자그마한 종이 상자 안에는 개의 사체를 태운 재가 들어 있었다. 친자식보다도 가까웠던 사이라 고인을 화장하면 유골함에 함께 넣어 섞어줄 것이라고 친구분이 말했다. 살아서도 함께, 죽어서도 함께하는 것이다. 그 개는 주인의 숨이 끊어진 것을 알아차렸을 텐데. 그럼 밖에 나가 밥을 얻어먹든지, 새 주인을 찾기 힘들면 다른 개들하고 어울려 떠돌이가 되는 한이 있어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은 못하지만 그들도 기억하고, 슬퍼하고, 사랑한다. 혈육이 세상을 떠서 장례를 치르는 중에도 사람은 밥을 먹는데 개는 먹지 않는다. 그것을 떠올리니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식음을 전폐하고 그 곁에서 함께 잠들 수 있을까?


    친구는 홀로 자리를 지킨다. 축 처진 어께가 호젓하여 나도 말없이 그 옆에 앉았다. 몸에 한 차례 격한 불꽃이 일고 마침내 모두 식을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내려앉을 곳 없이 그는 한줌의 재로 허무하게 돌아갔다. 그들의 몸이 함께 담긴 유골함을 품에 안고 다음 생에서는 정말 가족의 연으로 다시 태어나 행복하게 살기를 소망했다. 더는 슬프지 않은 세상에서 사이좋은 오누이로 다시 태어나 푸른 들판 위에서 원 없이 뛰어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결국은 사람이고 사랑이다

    불편한 동거

    빈소가 다 꾸며지고 가족들이 조문객을 맞이할 준비를 마치면 하나둘씩 손님들이 오기 시작한다. 나는 보통 흰 장갑을 끼고 빈소 앞에 서서 오가는 분들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드린다. 그렇게 온종일 지키고 서 있다보면 빈소 안의 다양한 풍경들을 보게 된다. 많은 손님들이 한꺼번에 오는 경우는 회사나 기관에서 온 단체 손님을 제외하면 거의 종교 기관에서 오신 분들이다.


    그런데 간혹 유가족의 종교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난감한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고인이 중심이 되는 장례라면 당연히 고인이 생전에 믿었던 종교의 방식대로 예식이 진행되는 게 맞다. 하지만 우리네 장례란 대체로 고인의 손님보다는 자녀들의 손님이 훨씬 많아서 자기만의 방식을 주장하기 일쑤다. 어쩔 수 없는 이런 불편한 동거는 언제나 숨고 싶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아무도 죽기 위해 살지는 않는다. 천국을 동경하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이다. 내가 아는 누군가의 영정 앞에서 그를 위해 기도와 노래를 바치면서 한편으로는 언젠가 나에게 닥쳐올 죽음을 위로한다. 이런 경험이야말로 죽음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히려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쓴다. 아침에 장의차를 보면 재수가 좋다고 하는 말도 결국 언짢은 마음을 물리쳐보려는 술책이 아닐는지.


    불멸에 대한 믿음은 상실을 부정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누구나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지만, 때로 장막에 가려진 죽음은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삶을 연장하는 도구가 된다. 약속된 미지의 세계에서의 훌륭하고 영원한 생이 과연 지상에서의 삶과 죽음의 고통도 불사하게 하는 것일까. 나는 답을 알 수 없다.


    떠나간 이의 명복을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빌고, 남은 이들의 평안을 바란다. ‘메멘토 모리’. 침묵 속에서의 기도와 노동을 삶의 지침으로 삼아온 엄률 시토 수도회에서 허락한 단 하나의 말, ‘죽음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나는 다양한 기도 소리를 엿들으며 어느덧 조각난 죽음의 의례들과 친숙해졌다.


    당신은 외롭지 않아요

    우리의 전통 사회에서 죽은 이가 유교식 제사를 받으려면 결혼을 해서 자식을 봐야 했다. 자식이 있어야 제사를 받을 수 있으며 비로소 조상이 될 수 있다. 반면에 유교 제사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무자귀신의 경우, 특히 결혼하지 않은 이에게는 장례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요즘에는 독신 가정이나 이혼, 무자녀 부부들이 늘어나면서 전통 예법에 적용될 수 없는 경우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교사로 일하던 어느 40대 여성이 암 투병을 하다 숨졌다. 결혼을 하지 않아 그녀의 부모님이 장례를 주관했다. 가장 작은 빈소에 짐을 풀고 소박한 제단을 꾸몄다. 입관식에는 가족과 동료교사들이 참석하여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입관 후에는 성복제라는 고인의 첫 제사를 올린다. 보통은 자녀들이 술을 한 잔씩 올리며 절을 하지만 미혼인 경우에는 전통 예법을 적용할 수 없다. 그래도 상을 차렸는데 왠지 술이 빠지면 안 될 것 같아 머뭇거리던 고인의 아버지가 술잔을 손에 쥐자 옆에 있던 분이 막아섰다. “어허,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술을 올릴 수 없어요!”


    당황한 아버지는 빈 술잔을 다시 제단 위에 놓고 물러섰다. 시선을 떨어뜨리고 못내 아쉬워하는 아버지의 굽은 등이 쓸쓸해 보였다. 그저 먼 길 떠날 딸자식에게 술 한잔 따라주고 싶었을 뿐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누군가 돌아가시어 장례 접수를 하는 건가 싶었는데 뜻밖의 사연이었다. “음. 제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라 이제 장례식 준비를 하려고요. 저는 혼자 살고 있고요, 부모님 외에 다른 가족은 없어요. 그런데 평번한 장례보다는 제가 미리 생각해둔 장례로 하고 싶은데, 혹시 가능할까 해서 먼저 물어보는 겁니다.”  “아, 그럼 저희가 어떤 부분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일단 사람들이 제가 일찍 죽었다고 슬퍼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천국의 부름을 받은 것뿐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흔한 수의보다는 드레스를 입고 싶어요. 또 조문을 온 사람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싶은데 제가 직접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영상을 만들어서 틀어놓고 싶어요. 저의 지금 모습 그대로 마지막 인사를 하는 모습을 찍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가능할까요?”


    그녀의 요청을 적은 메모지를 들고 가서 팀장에게 보고를 하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직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시 고민을 하던 팀장은 “그래, 한번 해보지 뭐”라고 응했다. 솔직히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장례보다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것은 둘째 치고 신경을 두 배 이상 써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먼저 그녀를 만나 구체작인 사항을 의논하기로 했다. 그녀가 입고 싶다던 드레스는 만화 주인공의 옷이었다. 그런데 입관이 문제였다. 누워 있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자면 품이 작은 기성복은 아무래도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행사 의상 전문 업체에 문의하여 사진 속의 드레스를 그대로 구현하되 뒤쪽엔 지퍼 대신 리본으로 묶을 수 있게끔 특수 제작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영상 제작 업체와 손잡고 추모 영상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녀의 소원이 차근차근 이루어지고 있었다.


    몇 달 후 그녀의 임종 소식을 들었다. 연한 미소를 띤 채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생전의 바람대로 예쁜 공주님이 되었다. 다채로운 꽃이 가득 장식된 관에 모시니 당장에라도 동화 속 세상으로 여행을 떠날 것만 같았다. 빈소에 가보니 나긋나긋한 그녀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려퍼졌다.


    “저의 장례식에 와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지금 천국에 와 있어요. 그러니 저를 걱정하진 마세요. 친구들아 너희들이 있어서 웃을 수 있었고 행복해질 수 있었어. 그리고 엄마 아빠 모두 감사해요. 여러분들의 사랑 덕분에 저는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았어요. 슬프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저를 위해 울기 보다는 그냥 잠깐이라도 기도해주시면 그걸로 돼요. 다음에 다시 만날 때까지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마치 그녀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옆에 앉아 따사로이 손을 잡고 이별의 인사를 나누는 것 같았다. 빈소 안에는 자녀들의 승진 얘기나 친척이 땅을 산 얘기가 아니라 고인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땐 그랬었지 하며 간간이 웃음꽃도 피웠다. 인생 최후의 3일을 이렇게 보내는 것도 참 좋겠다 싶었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비통해하지 않고도 잠시나마 자신과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그녀의 마음은 잔잔한 바람이 되어 함께해준 모든 이에게 전해졌다. 단잠에 든 그녀의 평온한 미소처럼 창밖의 햇살이 고요하게 눈부시다.


    나는 경치 좋은 데가 좋더라

    모든 장례가 다 슬프기 마련이지만, 특히 상주가 내 또래일 때는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내 부모님은 아직 젊으신 편이지만 평소 건강관리에 소홀하셔서 안타깝던 참이다. 사회에 막 첫발을 내디뎠거나 아직은 자리를 잡지 못한 청년들에게 갑작스럽게 닥친 부모님의 죽음이란 청천벽력이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효도하겠다고 마음만 먹었지 아직 해드린 것은 없는데, 왜 부모님은 늘 한없이 베풀기만 하시고 받지는 못하시는지.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기란 참으로 어렵다.


    고객을 만나 상담을 하기 전, 서류에 적힌 상주의 나이를 보니 나와 동갑이다. 장례가 어떻게 진행되고, 이제부터 뭘 하면 된다고 거듭 설명해도 넋이 나간 아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뒤늦게 도착한 친척들은 “네가 하나뿐인 아들이니 의젓하게 잘해야 한다”며 훈수만 두었다. 가뜩이나 무거운 어깨에 돌만 더 얹어준 셈이다.


    입관실에 들어가 아직 건장한 아버지의 몸을 뵙는 순간부터 아들은 비명에 가까운 통곡을 쏟아냈다. 그 비명은 마치 ‘왜 이리 야속하게 빨리 가셨나요. 남은 저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라고요’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아직 부모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이르다. 자립해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릴 때까지 건강하게 사실 줄 알았는데, 자녀의 죽음 앞에선 못 다 베푼 사랑만 떠오르듯, 자식들도 부모의 죽음 앞에선 못다 한 효도가 눈에 밟혀 견딜 수 없다.


    몇 달 후 만난 어떤 상주는 나보다 두어 살 어렸다.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딸이다. 해외 유학을 갔다가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딸은 너무도 슬피 울어 지켜보는 나도 괴로웠다. 나는 평소 하던 대로 고인의 얼굴에 화장을 곱게 해드렸다. 그러자 딸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나에게 말했다. “저기……. 제가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화장품을 챙겨왔는데요. 직접 발라드려도 될까요?” “네. 그럼요. 이쪽으로 오세요.”


    그녀는 온몸으로 흐느끼며 미리 준비한 립스틱을 고인의 입술에 발라드렸다. 손이 너무도 떨려서 연신 수정을 해가며 발라야 했다. 분홍색 볼터치도 해드리려고 꺼냈는데 딸의 눈물이 어머니의 볼을 적셔서 꼭 어머니가 우시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처럼 외동딸인 나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장지를 아직 정하지 못한 그녀에게 사정을 묻자, 이제는 어머니와 한시라도 떨어져 있기 싫다며 화장해서 보석으로 만들어 집에 모셔놓겠다고 했다. 꿈을 이루려고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어머니는 행여 딸이 자신을 걱정하여 학업을 그만둘까봐 병세를 숨겼다. 그런 별거가 못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한줌의 재로 돌아간 어머니 유골이 함에 담기자 딸은 두 팔로 소중히 감쌌다.


    누구나 사람의 목숨이 유한하다는 걸 알지만, 또한 누구나 자신을 그 범주에서 빼놓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다. 수많은 부모님을 내 손으로 모셨지만 막상 내 부모님의 죽음을 떠올리니 그냥 생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버겁다. 그런 날이 영영 안 오면 좋겠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엄마에게 ‘사랑해’ 세 글자를 문자로 보냈다. 몇 시간 뒤 근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온 엄마가 휴대폰을 보여주며 물었다.


    “얘. 네 번호로 여기 이상한 문자가 왔어. 설마 이걸 네가 보냈을 리는 없잖니. 혹시 이걸 누르면 나쁜 바이러스가 퍼질까봐 만지지도 못하고 왔어. 이게 뭐라니?” 평소 얼마나 표현을 안 하고 살았으면 사랑한다는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못하게 됐을까. 그간의 불효를 마음 깊이 반성했다.


    피할 수 없는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이 그저 다 공부라고, 큰 공부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태어나는 것은 스스로 알지 못하고, 산다는 것의 소중함은 망각하기 쉽고, 죽을 때에는 고통 속에 떠난다. 바로 지금, 살아 있는 이 순간에 손이라도 한 번 더 잡고, 한 번 더 안아보고 말해야 한다.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당신의 자녀로 태어나서 자란 건 행운이었다고.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다

    경기도이 한 산골에 위치한 요양병원에 도착하니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에는 들판과 호수가 펼쳐져 있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공기도 워낙 맑아서 도착하자마자 몸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담당자분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동행하며 시설을 소개해주셨는데 1층에는 작은 병원이 있어 언제라도 몸이 아프면 즉시 방문할 수 있었고, 종교 및 취미 생활을 위한 시설도 다양하게 갖춰져 있었다. 그리고 지하에는 장례식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건물 밖 5분 거리에는 화장한 유골을 모실 수 있는 봉안당이 있었다. 이미 친숙한 생활공간 속에 죽음과 관련된 시설들이 함께하고 있다니.


    그렇다면 이곳에 사는 분들은 죽음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혹시나 거부감을 갖고 계시진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복도에서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었던 모든 분들은 마치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지어 상조 상품을 소개하는 중에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시종일관 밝은 얼굴을 하고 계셨다. 무엇이 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일까.


    “미리 준비하면 좋지, 암만, 나는 우리 아들이 잘 알아서 해주겠지만 말이야.” “여기 있으면 친구들도 많고, 같이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얼마나 좋은데. 내일은 우리 며느리가 날 보러 온다고 했어. 자식들도 가끔씩 봐야 더 반갑다고. 호호호.” 나이가 비슷한 분들끼리 모여 공감대도 형성할 수 있고, 함께 취미 활동도 하면서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또 가족과 멀어지는 듯한 소외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가시 호텔 뷔페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맛깔스럽게 차려진 음식들에 군침이 고였다. 식사를 하면서도 테이블 곳곳에선 웃음꽃이 피었다. 흔히 노후를 떠올리면 ‘늙으면 얼른 죽어야지. 더 살아서 뭐해’와 같은 체념 섞인 독백이 생각나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 행복한 표정으로 복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다. 둘 중 하나를 떼어놓을 수도 없다. 생을 풍요롭게 채워가자면 죽음을 회피하고 삶을 욕망하기만 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도심에 장례식장 하나가 들어서려면 오랜 기간 인근 주민들의 거센 민원을 견뎌내야 한다. 수많은 이웃들 중 누군가는 반드시 죽고 그 가족들에겐 꼭 필요한 공간임에도 혐오시설로 치부된다.


    나는 그 마을에서 죽음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더욱 행복해진 노인들을 보았다. 죽음 사이에 일상이 끼어드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 죽음이 당연한 듯 머무는 삶. 삶과 죽음을 구분 짓지 않고 하나의 연장선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죽음을 진정 애도함과 동시에 그것을 수용하고 상실과 변화를 이해할 때 비로소 행복한 삶과 행복한 죽음이 완성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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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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