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저   자
장하준 (지은이), 김희정 (옮긴이)
출판사
부키
출판일
2023년 03월
서   재







  • 장하준 교수가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친숙한 18가지 재료와 음식으로 가난과 부, 성장과 몰락, 자유와 보호, 공정과 불평등, 제조업과 서비스업, 민영화와 국영화, 규제 철폐와 제한, 금융 자유화와 금융 감독, 복지 확대와 복지 축소 등 밀접한 경제 현안들에 대한 지식과 통찰을 드립니다.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편견 넘어서기

    도토리

    도토리를 먹고 자라는 스페인 남부의 돼지들과 도토리를 즐겨 먹는 한국인의 이야기를 통해 경제적 성과를 결정하는 데 문화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한다.


    도토리묵에서 하몬 이베리코까지

    떡갈나무 열매인 도토리(acorn)는 고급 식재료는 아니다. 일부 아메리카 원주민, 특히 캘리포니아 지역의 원주민과 일본인이 더 나은 탄수화물을 살 돈이 없거나 전혀 구할 수 없을 때 도토리를 먹었다고 알려져 있다. 북부 이탈리아에서 밀가루가 부족하면 밤가루를 섞어 파스타의 양을 늘린 것과 비슷하다.


    한국인은 도토리로 젤리를 만들어 (엄청나게 많은 양을) 먹는데 이렇게 식물성 전분으로 만드는 젤리를 묵이라 부른다. 나는 도토리묵을 참 좋아한다. 내가 도토리묵을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이 음식을 최고급 요리라고 우길 수는 없다. 사실 도토리를 재료로 해서 만든 최고급 요리를 떠올리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하지만 도토리를 이베리코 돼지들에게 먹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파타 네그라(검은 발굽) 돼지라고도 부르는 이 이베리코 돼지의 다릿살로 만드는 햄이 바로 하몬 이베리코다. 최고급 하몬 이베리코는 파타 네그라 돼지를 도축 전 일정 기간 동안 떡갈나무 숲에 방목해서 도토리만 먹도록 한 다음 만들기 때문에 하몬 이베리코 데 베요타라고 부른다(베요타는 스페인어로 도토리라는 뜻이다). 도토리 덕분에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고소하고 깊은 맛을 내는 햄이 탄생한 것이다.


    이슬람 문화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와 편견

    기독교가 이베리아반도 대부분을 다스리던 이슬람 세력과 전쟁을 벌여 기독교도의 스페인을 세우는 과정에서 햄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돼지고기를 먹는지 안 먹는지는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를 구분하는 중요한 차이였고, 돼지고기는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상징하게 되었다.


    스페인에 살면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유대인도 기독교가 다시 세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큰 고통을 겪었다. 1391년 성난 폭도로 변한 기독교인의 위협에서 목숨을 건지기 위해 많은 수의 유대교인이 기독교로 강제 개종했다. 교회는 이들이 진심으로 개종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돼지고기를 강제로 먹도록 했다. 콘베르소(converso)라고 부르는 이 유대교인 출신 개종자 중 일부는 비밀리에 유대 교리를 계속 따르면서, 돼지고기와 조개류를 조리하지 않고 유제품과 고기를 섞지 않는 등 유대교의 의식과 명절에서 핵심적인 요소들을 지켜 나갔다.


    이슬람 문화에 관한 다른 부정적인 고정 관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이슬람교를 군국주의적 종교라 생각하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도 그런 견해를 부추겨 왔다. 지하드라는 단어에 대한 오해가 널리 퍼진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이교도와 벌이는 전쟁이란 의미로 알려진 지하드는 원래 가치 있는 목표를 위해 지난한 노력을 한다는 뜻이다. 이슬람 교리 중에는 군국주의적인 해석을 가능케 하는 부분도 있고,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리도 있다. 사실 이슬람 학자들이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된 고전을 아랍어로 번역해서 보존하지 않았으면 후에 이를 유럽어로 번역하면서 일어난 르네상스 운동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이전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쓰인 문헌을 이교도적이라 선언하고 방치하거나 심지어 적극적으로 파괴해 버렸다.


    이슬람이 과학적 진보나 경제 발전 같은 실용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는 속세에서 먼 종교라는 고정 관념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이슬람의 교리는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문화적 가치와 궤를 같이한다. 중세에는 이슬람 문화권이 법학뿐 아니라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도 유럽보다 훨씬 더 앞서 있었다. 과학 용어 중 얼마나 많은 수가 아랍어에서 온 것인지만 봐도 알 수 있다. 알코올, 알칼리, 알지브라(대수학), 알고리즘(인공 지능의 핵심 요소) 등이 그 예다(‘알al’은 아랍어의 정관사다).


    상업도 고도로 발달해서 아랍 상인들은 지중해 연안은 말할 것 없고 동쪽으로는 한반도에서부터 서쪽으로는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과 교역을 했다. 특히 선지자 마호메트가 상인이었기 때문인지 상인들이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렸다. 상업의 종교인 이슬람교는 계약법을 매우 중요시했다. 이슬람 국가들에는 기독교 국가들보다 몇백 년이나 앞선 때부터 제대로 훈련받은 전문직 판사가 있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서는 19세기까지도 법학을 공부하지 않고도 판사가 될 수 있었다.


    자, 이쯤 되면 이슬람 문화가 본질적으로 개발에 방해가 된다는 고정 관념은 없어졌을 것이다. 배움을 강조하고, 과학적 사고의 전통이 있으며, 사회적 위계질서가 강하지 않고, 상업의 가치를 중요시하며, 법치와 관용의 전통이 강한 이슬람 문화는 경제 발달에 유리한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두바이는 모두 이슬람 문화가 경제 발전과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예다.


    우리는 무지 때문에, 그리고 어떨 때는 악의적 의도를 가지고 ‘낯선’ 문화에 부정적인 문화적 고정 관념을 적용할 때가 있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어떤 문화의 부정적인 부분만을 골라내서 그 문화권의 나라들이 겪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문화 탓으로 돌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문제의 진정한 원인을 놓치는 오류로 이어진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부강해진 진짜 이유

    일본과 한국은 정확한 시간 개념과 산업 사회의 규율을 갖춘 현대적 산업 노동력을 보유하지 않은 나라들이었다. 두 나라는 그러한 노동력을 구체적인 조치를 통해 만들어 냈다. 시간과 규율을 잘 지키는 습관을 학교 교육을 통해 가르치고, 경제 발전을 통해 ‘국가를 재건’하는 ‘애국 전쟁’을 위해서는 근면한 노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념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긴 근로 시간과 힘든 노동 조건을 허용하는 노동법을 유지하는 등의 방법이 사용되었다.


    경제 개발 초기,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의 젊은이들은 과학이나 공학 분야 직종을 꺼렸다. 실용적인 일에 대한 편견을 가진 유교 문화의 영향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의도적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 계통의 대학 정원과 재정 지원을 제한하고, 과학 및 공학 분야 학위 소지자의 군대 복무 기간을 대폭 줄이는 특혜를 베풀었다. 물론 과학 및 공학 분야 학위 소지자가 많이 쏟아져 나오는데 적당한 일자리가 없으면 고학력 실업자만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고,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그런 현상이 벌어진 것도 사실이었다. 이를 피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적극적인 공공 정책을 통해 산업화를 도모했다. 그 결과 이 분야로 진학한 학생들이 학위를 딴 후 보수도 좋고 지적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일자리들을 만들어 냈다.


    문화가 사람들의 가치관과 행동에 영향을 주고, 따라서 그 나라의 경제가 조직되고 발전하는 양상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러나 문화가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는 흔히 통용되는 단순한 고정 관념으로 설명할 수 없다. 모든 문화는 복합적이고 끊임없이 진화하는 다양한 부면을 지니고 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개인의 경제적 행동과 국가의 경제적 성과를 결정하는 데서 문화는 정책에 비해 그 영향력이 훨씬 약하다는 점이다. 그 점은 도토리를 먹는 한국인에게나 도토리를 먹여 키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교도에게나 마찬가지다.



    생산성 높이기

    국수

    국수에 미친 두 나라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통해 기업가 정신과 성공하는 기업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재점검한다.


    한국인의 못 말리는 면 사랑

    세계 인스턴트 국수 협회에 따르면 세계에서 인스턴트 국수(즉석면)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는 한국으로 1인당 1년에 79.7인분을 소비한다고 한다. 72.2인분을 소비하는 베트남이 그 뒤를 바짝 쫓고, 3위는 훨씬 뒤처진 53.3인분의 네팔이다. 한국 인구가 5100만 명을 조금 넘으니 1년에 41억 봉지의 인스턴트 국수를 먹어 치우는 셈이다. 엄청난 양이다.


    이렇게 소비되는 대부분의 인스턴트 국수는 꼬불꼬불하고 쫄깃한 밀가루 면인 라면이다. 한국의 인스턴트 국수는 대부분 작은 봉지에 따로 든 분말 수프와 건더기 수프를 넣어 끓인 국물과 함께 먹지만 볶음면이나 비빔면도 있다. 라면 국물은 외국인 기준으로 하면 ‘꽤 매움’에서 ‘정신이 나갈 정도로 매움’ 수준이고, 볶음면이나 비빔면의 소스도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매운 소스가 많다. 그냥 인스턴트 국수만 해도 이렇게 많다. 한국인이 즐기는 국수(noodle,면)의 종류는 거의 무한할 정도로 다양하다.


    제일 먼저 언급해야 할 국수는 담백한 밀가루 면이다. 부드럽고 가는 국수(소면), 부드럽고 납작한 굵은 국수(칼국수), 약간 쫄깃한 두꺼운 국수(가락국수. 일본의 우동과 비슷하다) 등이 대표적인 예다. 모두 맵지 않은 국물(한국인도 맵지 않은 음식을 먹을 때가 있긴 하다!)에 말아 먹지만 소면은 채소(가끔 고기도 들어간다)와 함께 각종 소스(매운 소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소스도 있다)에 비벼 먹기도 한다.


    밀가루 반죽에 탄산나트륨(Na2CO3)을 더하면 쫄깃한 알칼리성 국수를 만들 수 있다.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국수가 이 알칼리성 국수다. 라면도 알칼리성 국수고, 짜장면 국수도 알칼리성 국수다. 한국인이 아니라도 K-드라마의 팬이라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국인이 거의 맨날 먹는 커피 색깔의 국수 말이다. 먹는 장소도 식당뿐 아니라 사무실, 집(집에서 직접 짜장면을 만드는 사람은 별로 없고 주로 배달시켜 먹는다), 심지어 경찰서 취조실 등 다양하기 그지없다. 한국인이 총 150만 그릇의 짜장면을 하루에 먹어 치운다는 놀라운 통계도 있다.


    한국인은 곡물을 갈아서 만든 가루뿐 아니라 전분 자체를 이용해 국수를 만들기도 한다. 전분으로 만든 국수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당면(唐麵)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중국 국수’라는 뜻이다. 한국어에서 ‘당()’이라는 접두어는 ‘중국에서 들여온 것’에 붙는다. 원래 중국 버전은 녹두 전분을 사용하지만 한국에서는 고구마 전분을 사용한다. 당면은 카사바 뿌리, 옥수수, 감자 전분으로도 만들 수 있다. 일본에서는 감자 전분으로 당면과 비슷한 반투명 국수를 만들고 하루사메(春雨, 봄비)라는 시적인 이름을 붙였다.


    한국인의 주식이 쌀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전통적으로 쌀로 만든 국수가 많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은 흥미롭다. 어쩌면 귀중한 쌀을 국수 만드는 데 ‘허비’하고 싶지 않아서일 수 있다. 하지만 변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요즘은 한국인도 쌀로 만든 국수와 사랑에 빠져서 베트남식 국물 쌀국수인 퍼(Pho)나 태국식 볶음 쌀국수인 팟 타이(Pad Thai)의 인기가 매우 높다.


    국수 모양에 진심인 이탈리아 사람들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를 만드는 데 쓰이는 거의 유일한 탄수화물원은 밀 한 가지뿐이다. 그러나 모양을 달리하는 방법으로 200여 가지가 넘는 다양한 파스타가 만들어진다. 물론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줄 모양이나 납작한 끈 모양의 파스타도 있지만 튜브, 고리, 나선/나사, 나비, 사람 귀, 조개, 낱알, 공, 속을 채운 만두, 판 등을 망라한 온갖 모양의 파스타가 있다.


    이탈리아인이 파스타 모양에 쏟는 애정과 관심은 엄청나서 1980년대 초반에는 세계 최대 파스타 제조업체인 바릴라(Barilla)의 고급 브랜드인 보이엘로(Voiello)에서 유명 산업 디자이너인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에게 궁극의 파스타 모양을 디자인해 달라고 의뢰하기까지 했다. 소스를 너무 많이 흡수하지는 않으면서 잘 머금을 수 있는 동시에 장식적, 심지어 ‘건축학적’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궁극의 파스타를 주문한 것이다.


    주지아로는 글자 그대로 아름답고 초현대적인 파스타 모양을 ‘설계’했다. 튜브와 파도 모양을 합친 듯한 모양의 그 파스타에는 ‘마릴레(Marille)’라는 이름이 주어졌고 세간의 큰 관심을 모으며 1983년 출시되었다. 불행하게도 마릴레는 완전히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생산량이 적고 유통이 잘 되지 않아서 구하기가 어려웠던 점도 있지만, 어차피 더 큰 문제는 모양이 너무 복잡해서 균등하게 익히기가 힘들다는 점이었다. 알 덴테(al dente)로 익히지 않은 파스타는 상대도 하지 않으려 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기준을 생각할 때 고르게 익지 않는 파스타는 대역죄에 해당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주지아로는 마릴레가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않고,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영향력 있는 자동차 디자이너로 명성을 날렸다. 국제적으로 알려진 거의 모든 자동차 제조업체와 작업을 해서 폭스바겐 골프, 피아트 판다와 같은 믿음직한 고전부터 마세라티 기블리, 로터스 에스프리처럼 럭셔리의 상징이 된 차종에 이르기까지 100가지가 넘는 차를 디자인했다. 인터뷰 등을 보면 주지아로는 마릴레 사태를 그냥 자신의 눈부신 커리어에 남은 재미있는 사건으로 여기는 듯하다. 1991년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중에게 알려진 건 파스타 덕분이에요. 심지어 《뉴스위크》에서까지 다뤘다니까요. 재미있지 않아요?”


    현대자동차의 미러클 성공 신화

    대부분의 사람은 국수 집착증이 있는 이탈리아라는 나라 출신의 이 일류 디자이너가 초기에 디자인한 차 가운데 하나가 ‘포니(Pony)’라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포니는 또 다른 국수 집착증의 나라 한국의, 그리고 그때까지 아무도 들어 보지 못한 현대자동차라는 회사에서 1975년 출시한 소형 자동차다.


    1973년 현대자동차는 포드와 결별하고 국내에서 설계한 자동차를 독자적으로 생산하겠다고 선언했다. 바로 포니였다. 본격 생산에 들어간 첫해(1976년) 현대자동차는 1만 대가 조금 넘는 포니를 생산했다. 그해 포드 생산량의 0.5퍼센트, GM 생산량의 0.2퍼센트였다.7 1976년 6월 에콰도르가 현대차를 수입하자 한국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에콰도르에 수출한 것이 포니 5대, 버스 1대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고, 언급되었다 하더라도 중요하지 않은 일로 무시되었다. 중요한 것은 외국인들이 한국산 차를 사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가발, 옷, 봉제 완구, 운동화 등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만든 제품을 수출하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가 아니었나.


    상서로운 시작과는 거리가 먼 출발에도 불구하고 현대는 그 후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다. 1986년에는 엑셀(Excel) 모델(포니를 업그레이드한 버전)로 미국 시장에 눈부신 데뷔를 해서 비즈니스 잡지 《포춘Fortune》 선정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10대 상품’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1991년 현대자동차는 자사 엔진을 직접 설계하는 전 세계 몇 안 되는 자동차 제조업체 중 하나가 되었다. 21세기에 접어들 무렵에는 이미 세계 10대 자동차 제조업체 반열에 올라 있었다. 2009년 현대자동차는 포드보다 더 많은 자동차를 생산했다. 2015년에 접어든 즈음에는 현대 또는 기아 상표를 달고 생산 라인에서 굴러나오는 차가 GM 브랜드 차보다 많았다.


    누가 한국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이끌었나

    현대 그룹의 설립자 정주영과 현대차를 1967년부터 1997년까지 이끈 그의 동생 정세영이 그들이다. 현대자동차가 자동차 산업 부문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을 확률마저 지옥에서 눈사람이 살아남을 확률 정도라고 거의 모두가 생각하던 시대에, 정씨 형제는 언젠가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회사를 만들겠다는 야심 찬 비전을 실행에 옮겼다. 세계 최고 자동차 디자이너 중 하나인 주지아로에게 첫 번째 차의 디자인을 맡긴 것은 그런 비전의 상징이다. 그들은 이미 자리를 잡은 현대 그룹의 다른 부문에서 만든 돈을 현대자동차에 쏟아부어 초기에 적자만 내는 회사를 지탱했다. 이런 관행을 ‘기업 내 교차 보조’라고 부른다.


    기업을 이끄는 기업가도 중요하지만 현대자동차의 성공 스토리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이 뛰어난 영웅적인 기업가 개인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 심지어 개인은 주된 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주인공은 정부다. 한국 정부는 1988년까지 외제 자동차의 수입을 전면 금지했고, 일본산 차는 1998년까지 수입을 금지하는 정책을 운용해 현대를 비롯한 다른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클 때까지’ 보호막이 되어 주었다. 수십 년 동안 한국 소비자들이 품질이 떨어지는 국산 차를 견뎌 내야 했다는 의미지만, 이런 식으로 보호받지 못했으면 한국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성장은커녕 살아남기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1990년대 초까지도 한국 정부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하이테크 기업들, 특히 수출 지향적 기업들이 특별 저리 융자를 받을 수 있게 보장해 주었다. 이는 생산적 기업에 대한 대출에 우선순위를 주도록 하는 엄격한 은행 규제와 은행 부문의 국유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함께 살아가기

    닭고기

    모두가 사랑하지만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 육류는 우리에게 경제적 평등과 공평성의 의미를 가르쳐 준다.


    왜 러시아 항공사는 기내식으로 닭 요리만 내놓았을까

    힌두교에서 소를 숭배하듯 닭을 숭배하는 문화도 없고, 이슬람교나 유대교에서 돼지를 금기시하듯 닭을 폄하하는 문화도 없다. 심지어 닭은 정식으로 미움받지조차 못한다. 종교적ㆍ문화적 이유가 아니라 단순히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특정 육류를 피하는 사람들이 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힌두교도가 많고, 양고기를 먹지 않는 한국인도 많다. 돼지고기나 양고기가 금기 사항이 아닌데도 말이다. 하지만 육류를 먹을 의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닭고기는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닭고기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닭이라는 동물 자체가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작은 몸집에 비교적 유순한 조류인 닭은 소, 말, 돼지처럼 덩치가 크지도 않고, 양이나 염소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고집스러운 동물도 아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닭이 다양한 방법으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도록 해 주고, 맛도 중립적인 데다 조리도 비교적 쉽기 때문일 것이다. 닭을 조리하는 방법은 그야말로 다양하지 않은가. 튀김, 볶음, 스튜, 구이, 직화 구이, 훈제, 삶기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조리법이 존재한다. 심지어 나는 메뉴의 모든 음식을 닭고기로만 만드는 일본의 한 식당에서 닭고기 사시미까지 먹어 본 적 있다.


    1980년대 말 케임브리지대학교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던 내 인도인 친구 하나는 고국을 방문할 때 늘 모스크바를 경유하는 아에로플로트를 이용했다. 아에로플로트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면(편안함, 시간 엄수, 승무원 친절도 등)에서 최악이었지만 항공료가 월등히 쌌기 때문에 여러 불편을 의연히 참으면서 이 항공사를 이용하는 인도인 친구들이 많았다. 그 친구에 따르면 거의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창백하고 식어 빠진 닭고기 요리가 유일한 기내 식사였다고 한다. 그런 비행 중 한번은 내 친구가 같은 비행기를 탄 다른 인도인 승객이 자기가 채식주의자라면서 승무원에게 닭고기 말고 다른 식사를 줄 수 없는지 묻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승무원은 곧바로 쏘아붙였다. “안 돼요, 손님, 아에로플로트에서는 모두가 평등해요. 사회주의 항공사잖아요. 특별 대우란 건 없습니다.”


    모두를 똑같이 대하는 건 불공평이다

    그 아에로플로트 승무원의 반응은 사람은 누구나 동등한 가치를 지닌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두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소련의 원칙을 극단까지 몰고 간 것이었다. 장관이든, 의사든,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든, 청소부든 누구나 같은 양의 빵, 설탕, 소시지, 신발(1년에 한 켤레) 등 모든 것을 배급 또는 집단을 통해 공급받았다.


    평등과 공평성에 대해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방식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인간이면 누구나 동일한 ‘기본적 필요’가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깨끗한 물, 안전한 주거지, 영양가 있는 음식 등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주의 원칙은 한쪽에서는 굶어 죽어 가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사치와 향락을 누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봉건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의 관행에 대해 매우 중요한 비판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일단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고 난 후에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은 너무나 각양각색이어서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우하는 원칙은 금세 문제가 되고 만다.


    서로 다른 필요를 가진 사람들을 모두 똑같이 대하는 것—채식주의자에게 닭고기 요리를 준다든지, 복강병을 가진 사람에게 밀가루 빵을 준다든지, 남녀 화장실을 같은 크기로 만든다든지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공평한 일이다. 아에로플로트 승무원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서로 다른 필요를 가진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것은 특별 대우가 아니다. 그것은 공평함의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다.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 기회의 평등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사회주의 체제가 실패한 건 경제에 공헌하는 정도가 각자 엄청나게 다른데 모든 사람에게 비슷한 보상을 함으로써 불평등을 줄이려 했기 때문이라 주장한다. 자유시장주의자들은 발명가, 투자 은행가, 신경과 전문의, 연예인 등은 경제에 막대한 공헌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한다. 그런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그럭저럭 잘하는 수준이고, 심지어 매우 기초적인 일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 모든 사람에 대한 보수 격차를 매우 좁게 유지해서 불평등을 줄이는 건 재난을 부르는 일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더 능력 있는 사람들이 사회에 공헌한 것에 비해 보상이 적으면 열심히 일하고, 투자하고, 혁신하려는 의욕을 잃게 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역효과를 낳고 비생산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부류의 경제학자들은 각 개인이 자기 능력을 모두 발휘해서 경쟁하도록 하고, 그 경쟁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동기 부여를 할 수 있으므로 가장 생산적이며, 경제에 대한 공헌도에 따라 보상이 결정되므로 가장 공평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이런 공식적인 차별은 거의 모두 사라졌지만 지구상의 어느 나라도 진정한 의미의 기회 평등을 이루어 내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터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누리지 못한다. 여성이 가족보다 커리어를 더 중요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 심지어 선천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잘못되고 역겨운 성차별적 시각 탓이다. 또한 여러 인종이 혼재하는 모든 사회에서는 교육, 고용 시장, 일터에 인종적 편견이 난무한다. 그에 따라 더 능력 있는 소수 인종 출신보다 상대적으로 능력이 떨어지는 다수 인종 출신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시 말해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사회 구성원의 일부가 어떤 직종에서 필요한 역량과 상관없는 성별, 종교, 인종 등의 요소 때문에 최고의 교육 기회나 일자리를 놓고 하는 경쟁에 애초부터 참여하지도 못하게 되어 있다면 그 경쟁의 결과를 가장 생산적이거나 가장 공평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기회의 평등은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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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