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목거울 속 봄

저   자
김수연
출판사
책펴냄열린시
출판일
2023년 07월
서   재







  • 김수연 시인의 작품을 대할 때 먼저 느끼는 정서는 물이 가진 정취입니다. 김수연 시인은 시간이나 세월을 물에 은유합니다. 그래서 시인에게 삶은 강물 같은 것으로 상징화되어 나타납니다.



    목거울 속 봄

    목거울 속 봄

    희미한 빛이 스미는 회랑
    오랜동안 그늘 속에 서 있는 목(木)거울
    낡은 액자 속 사진을 되새김하다
    아마 빛 벽만 품고 잠들려 한다

    거울 속에 들어온 ‘돌아온 탕자’
    이콘이 내미는 아버지 두 손
    부드러운 손과 우람한 다른 손바닥
    두 손이 부딪히면 열기도 사그라들고
    닮아가는 양손

    무료해진 거울 속 풍경에
    주먹 쥔 석고 팔뚝이 들어선다
    거울 속, 거울 밖
    대칭을 이루는 건장한 팔뚝을 들고
    홀로 남겨진 얼굴이 부서져라 웃기 시작한다
    놀라 길쭉해진 타원형 거울이 흔들린다

    흔들림 속 깊은 호수로 이어진다
    물속에 그림자로 가라앉았던 봄 숲이 눈을 뜬다
    석고 주먹은 봄꿈에 젖은 물가 수선화를
    한 다발 꺾어 거울로 돌아온다
    깨어난 회랑에 연둣빛이 설렌다


    우울

    퇴근길 도로에 줄지어 서 있는 자동차들
    거의 움직이질 못한다
    도로에 널린 수다스런 이야기들
    홀로 있거나
    줄지어 갇혀 있거나
    수많은 한 줌 흙들
    흙으로 돌아가면 구분할 수 없는 우리
    자동차에 입혀진 은빛, 잿빛 광택들
    어둠이 깔리면 그저 검은 껍데기일 뿐

    붉은 얼굴이 차창에 어린다
    써내려간 눈빛들이
    저녁달 그림자 속에 펼쳐지다 사라진다
    달빛 미소에는 매케한 연기가 숨어있다
    하늘에 떠 있는 연미복 뒷모습
    거룩하게 그려지면 구름이 지워 버린다
    밤은 행인들 발자국 밑에 깔리는 먼지를 들이킨다
    먼지와 흙이 만든 파이
    먹어도 허기진다


    옛 동산

    인적 드문 가파른 산길은 낮에도 어둡다
    빽빽이 붙어선 땅에 갇힌 소나무
    하늘을 나누어줄 여유로움이 없다
    숲속 음울한 눈들이 수런거리면
    아이들 기쁜 숨소리가 묻어온다
    소나무 튼 살은 검은 색으로 침묵한다

    고갯마루 오르면
    눈동자 가득했던 남해바다
    해양경비대 버려진 공터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윤슬을 마음껏 마시고 있다
    대장부로 가는 광활한 바다, 따스한 햇살
    아이들 가슴을 부풀린다

    돌아보면
    지척에 있는 환한 바다를 유괴하려
    검은 손을 뻗었던 솔숲
    호젓하고도 미궁 같았던 뒤로 가는 산길


    아버지의 등

    맨발로 나선 길
    아버지는 쉴 새 없이 걷고 있다

    울퉁불퉁 파헤쳐진 길을 걸어도
    등을 넓고 포근해서
    부드러운 자장가가 꿈속에서 따스하다

    잠이 덜 깬 몽롱함 속에서
    머리밑이 듬성듬성하게 보이는 구부정한 뒷모습
    살아온 무게만큼 무거운 나를 업고
    말없이 걷고 있다

    숨겨진 노고가 안쓰럽고 미안해서
    황급히 찾아낸 때 묻고 헐거운 신발
    신발 신고 다시 나선 길은 낯설고 어둠이 짙다

    먼 산에서 들리면 뻐꾸기 울음
    기와지붕의 맞물림
    나를 부르면 아버지 아득한 음성
    빠른 걸음으로
    시간과 시간 사이를 빠져나가고 있다


    책을 펼치고

    모퉁이를 돌아오는 바람이
    책갈피 속으로 들어온다

    강원도 행 완행열차는 덜컹거린다
    사람들은 철 지난 감자 껍질을 닮았다
    갈 곳도 숙지 못한 채 나뭇잎은 무임승차 한다
    무심한 얼굴로 앉아있는 동행을 믿을 뿐이다
    그는 일어서 나가더니 돌아오질 않는다
    간이역에서 잠시 내려 맑은 공기를 들이킨다
    가을걷이를 끝낸 들판은 바둑판 얼굴로 쳐다보고 있다
    와본 적 없는 언덕 너머에 익숙한 집이 있음을 알고 있다
    멀리서 종이 울리자 열차가 떠나고 있다
    철길은 빈 혀만 내민다

    책 속에서 백년 전에 회오리치던 바람이 불어온다
    나뭇잎은 바람을 벗어나기 위해
    재빨리 책장을 넘긴다
    토끼가 시계를 보며 달려간다
    토끼가 시계를 보며 달려간다
    마른 강아지풀이 빛 속에서 흔들린다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