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노력의 배신

저   자
김영훈
출판사
21세기북스
출판일
2023년 07월
서   재







  • 연세대 심리학과 김영훈 교수가 그동안 우리가 진리처럼 믿어온 노력의 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노력과 재능이 성과에 미치는 영향력에 관한 과학적 증거를 분석하며 노력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살펴봅니다.



    노력의 배신

    노력 신봉 공화국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 정말 잘할 수 있을까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거지도 부지런하면 더운밥 얻어먹는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안 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무쇠도 갈면 바늘 된다…. 어려서부터 귀에 딱지가 앉게 많이 들은 속담들이다. 심지어 책상이나 머리맡에 써붙여놓기도 했다.


    이 속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무슨 일이든 노력하면 잘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모든 문제는 노력의 부재로 야기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패보다 더 나쁜 것은 포기다, 포기하는 자에게는 미래도 희망도 없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포기란 말은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다 등등 노력을 강조하는 수준을 넘어 포기를 죄악시까지 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노력 성공 신화의 홍수 속에서 살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서점에는 노력으로 성공 신화를 설명하는 책들이 넘쳐나고, TV프로그램은 그런 사람들을 초청해 시청자들의 동기를 끌어올리려 혈안이 되어 있다. ‘노력 신봉 공화국’의 일상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것처럼 열심히 공부하면, 누구나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사람이 많다. 그때 딴짓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으면 삶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다른 것은 몰라도 공부만큼은 자녀에게 기대하는 바가 많다. 자식만큼은 좀 더 열심히 공부해서 더 좋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믿음이 자리한다. 다름 아닌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런 믿음이 깔려 있으니 본인의 지난 삶을 후회하기도 하고, 자식에게 ‘열심히 공부하라’는 잔소리도 하는 것이다. 그런 믿음이 없다면 본인의 삶에 대한 후회도 없을 것이고, 자식들을 그렇게 괴롭히지도 않을 것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

    ‘노력의 배신’이라는 내 강의를 들었던 한 학생의 이야기를 해보자. 그 학생은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다. 부모님으로부터 열심히 노력하면 다 잘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중학교에 진학하고서부터다. 중학교에 올라가 처음 본 수학 시험에서 4등급을 받은 것이다. 그 학생은 남들보다 한 문제라도 더 풀면 성적이 오를 것이라고 믿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삼각김밥을 먹으며 수학학원으로 달려가 새벽 2시가 넘도록 공부했다. 공부하는 시간을 재는 스톱워치는 매일 12시간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학에 투자한 시간과 수학 실력은 비례하지 않았다. 중학교 내내 그의 수학 성적은 3등급을 벗어나지 못했다.


    특목고에 진학하면서 수학은 훨씬 더 중요해졌다. 상대적으로 공부를 더 잘하는 친구들과 경쟁해 좋은 내신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 학생은 일주일에 50시간 이상을 수학에 투자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루에 7시간씩 수학 공부를 했다. 다른 공부가 바쁠 때는 아침부터 밤까지 한 끼도 먹지 않고 자리에 앉아 과자로 배를 채우며 수학 문제를 풀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내신도, 수학능력시험도 결과는 모두 3등급이었다.


    이 학생은 오랜 시간을 투자했는데도 자신의 수학 실력이 제자리걸음인 것을 ‘노오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50시간을 투자할 때 70시간을 투자한 아이들도 있겠지. 내가 ’쎈수학‘ 문제집을 세 번 풀 때 열 번 푼 아이들도 있겠지. 샤프로 허벅지를 찔러 가며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다는데 나는 졸리면 엎드려 잤잖아.’ 계속해서 ‘노오오력’이 부족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자책했다.


    이 학생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실패 원인을 노력의 탓으로 돌린다. 성공의 원인도 노력이고, 실패의 원인도 노력으로 치환해버린다. 이런 ‘노력 신드롬’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다.


    이쯤에서 우리는 확인해봐야 한다.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누구나 다 잘할 수 있을까? 반대로 실패했다면 그것은 오로지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을까?


    열심히 하는 사람과 잘하는 사람

    슬프지만 이 세상에는 ‘열심히 하는 자’와 ‘잘하는 자’가 있다. 열심히 하지만 잘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학교나 회사에 수없이 많다.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저 친구 참 열심히 한다’는 말이 종종 쓸쓸하고 허전하게 들리는 이유는 이 말 뒤에 ‘잘한다’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1~2학기가 지나면 대부분의 학생이 장래 목표를 수정한다. 박사과정을 밟을 것인지, 석사과정을 끝으로 취업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누가 조언하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잘들 결정한다. 적성도 적성이지만,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본인 자신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미국 박사과정에서 졸업하지 못한 채 그만두거나 수료로 끝내는 비율이 60퍼센트나 된다고 한다. 그 수많은 학생들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아서 박사과정을 끝내지 못하는 것일까? 노력이 문제였다면 그렇게 쉽게 그만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는 열심히 하는 사람과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꼭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결국 잘할 수 있다는 노력 신드롬은 잘못된 환상이다. 이 환상은 전염병이 되어 우리 사회를 통째로 병들게 하고 있다. 노력을 많이 한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노력을 적게 한다고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노력을 성공의 유일신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노력은 수많은 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노력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나는 절대 아니라고 답하겠다.


    사람이 노력으로 변할 수 있을까

    훈계와 잔소리의 나라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유난히 훈계와 명언이 많다. 내용의 핵심은 사람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있다. 자기계발서가 인기를 끄는 이유도 이런 생각과 관련이 깊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걸 고쳐라, 저걸 고쳐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 계획을 세워라, 목표를 정해라, 열정을 가져라, 뼈를 깎는 노력을 해라, 남들이 하지 않는 생각과 행동을 해라, 성공한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성공한 사람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주의 깊게 살피고 배워라…. 주로 이런 이야기들이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조언과 훈계가 빠지면 할 말이 없을 정도다. 기승전결 모든 이야기는 훈계로 시작해서 훈계로 끝난다. 노력으로 사람이 바뀔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머니, 아버지, 아내, 남편, 상사, 친구 누구의 이야기든 마찬가지다. 잔소리의 핵심은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변할 수 있다고 믿으니 이런 말들이 넘쳐난다. 부부싸움도 마찬가지다. 얼핏 보면 비난처럼 보이지만, 부부싸움의 궁극적인 목표는 배우자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놔두는 것은 상당히 어색하고 불안하다. 있는 모습 그대로, 태어난 그 모습 그대로 사는 것은 죄악이고 게으름이다. 남들이 아무 말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매섭게 채찍질하며 달려야 한다. 죽는 순간까지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달려야 한다.


    타고난 것들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노력이 재능과 소질을 이길 수 있을까

    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우리는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최선을 다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노력 신봉 공화국을 성공적으로 건설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성격적 특질, 재능, 소질 등은 타고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노력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타고난 것들의 힘과 영향력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무시해버린다. 노력 신봉공화국에서 타고난 것에 대한 인정은 포기하지 않는 것과 같으며, 실패자의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재능’이나 ‘타고난 능력’같은 단어들은 암묵적으로 터부시하는 사회적 금기어다. 노력만이 살길이고, 노력이 모든 사람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력이 우리의 성공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우리가 애써 무시했던 타고난 재능과 소질의 힘이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고, 노력은 들러리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노력이 주원인이 아니고 타고난 재능과 능력이 주원인이라면 성공과 실패의 책임은 누구에게 돌려야 할까?



    노력과 재능의 끝없는 대결

    노력 vs. 재능, 누가 최후의 승자일까

    ‘1만 시간의 법칙’은 틀렸다

    2009년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라는 책으로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이 책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는데, 한국에서도 50만 부 이상 팔리며 그의 책은 명불허전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만 시간의 법칙’을 내세우며 누구든지 무언가에 1만 시간을 투자하면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말이 1만 시간이지, 매일 3시간씩 꼬박 투자해도 10년이 걸려야 하는 시간이다.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님에도 성공을 꿈꾸는, 그리고 실패와 좌절로 힘들어하는 많은 이에게 희망을 던져주었다.


    그 이유는 바로 ‘누구든지’라는 단어에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사랑했는데,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열광과 지지는 대단했다. 어려운 현실에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죽도록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든지 성공할 수 있다니 이보다 더 가슴 벅찬 말이 어디 있겠는가. 노력 신봉 공화국에 사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고무적이고 희망적인 말이었다.


    말콤 글래드웰은 다양한 예시를 통해 ‘1만 시간의 법칙’을 주장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예시는 플로리다주립대학교 심리학 교수 안데르스 에릭슨이 발표한 논문이었다. 그 논문은 1993년에 출판되었는데 학계에서 1만 1,500번이나 인용될 정도로 심리학사에 기념비적인 역할을 했다.


    연구 내용은 간단하다. 안데르스 에릭슨 교수는 독일 베를린 음악학교에 재학 중이던 스무 살 전후의 바이올린 전공 학생들을 연주 실력에 따라 세 등급으로 분류했다. 첫 번째 등급은 국제적인 연주자가 될 최고의 학생들이었고, 두 번째 등급은 우수하지만 국제적인 연주자가 되기에는 부족한 학생들이었으며, 세 번째 등급은 그냥 공립학교 음악 교사가 될 정도의 평범한 실력을 갖춘 학생들이었다. 안데르스 에릭슨 교수가 알고 싶었던 것은 이 학생들이 다섯 살 때부터 음악학교에 입학하기까지 들였던 연습 시간과 세 등급 간의 관계였다.


    연구 결과는 재능의 절대적 위엄을 믿었던 사람들을 부끄럽게 했다. 세계적인 연주자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던 학생들은 다섯 살 때부터 1만 시간 정도 연습했고, 우수한 학생들은 7,800시간 정도 연습했고, 평범한 학생들은 4,600시간 정도 연습했다는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 연구 결과를 기초로 안데르스 에릭슨 교수는 “최고의 성과는 많은 사람이 믿는 것처럼 태어난 재능의 결과가 아니며, 최소 10년 이상의 끈질긴 노력과 훈련의 결과다”라고 말했다. 선천적 재능이 필수라고 믿었던 음악 분야에서 얻은 결과였기에 파장은 더욱 컸다.


    1만 시간의 배신

    모든 일이 그렇듯이 말콤 글래드웰이 안데르스 에릭슨 교수의 2009년도 연구를 인용하며 ‘1만 시간의 법칙’을 만들기 전까지 안데르스 에릭슨 교수의 논문이 찬양 일색이었던 것은 아니다. 1993년 당대와 후개의 학자들은 수십 편의 논문을 통해 안데르스 에릭슨 교수의 주장과 논문을 신랄하게 공격했고, 수많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비판의 절정은 대학원 시절 안데르스 에릭슨 교수에게 잠깐 지도받은 적이 있던 미시간주립대학교 심리학과 잭 햄브릭 교수에 의해 이뤄졌다.


    노력과 재능이 성공에 미치는 영향

    2014년에 발표한 잭 햄브릭 교수의 논문은 믿기 어려울 정도의 충격적인 연구 결과와 함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논문을 준비하면서 그는 몇 가지 중요한 연구 목적을 가졌는데, 첫 번째 목적은 노력 혹은 연습이 최고 성과를 내는 데에 몇 퍼센트나 기여하는지를 수치로 밝히는 것이었다. 이 연구 목적은 현실적인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어찌 보면 연습만 중요하다는 주장도, 재능만 중요하다는 주장도 옳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의 원인으로 연습과 재능이 몇 퍼센트나 기여하는지를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계산해냐야만 이 오래된 논쟁을 완벽하게 정리할 수 있다.


    두 번째 목적은 연습과 성과의 관계가 분야마다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다양한 분야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연습 혹은 재능이 성공에 미치는 영향이 공부와 음약 분야에서 각기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스포츠 분야는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세 번째 목적은 ‘단순한 연습’이 아니고 ‘의도적 연습’을 강조한 안데르스 에릭슨 교수의 주장을 참고해 단순한 연습의 효과를 연구한 것이 아니고, 의도적 연습이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잭 햄브릭 교수는 이 세 가지 목적을 가지고 기존에 발표된 ‘의도적 연습’과 ‘성과’에 관한 모든 연구를 철저하게 조사했다.


    결과적으로 88개의 연구를 찾아냈고, 88개의 연구에 참여한 실험 참가자는 1만 1,135명으로 매우 방대한 데이터였다. 게임(체스, 단어보드게임), 음악(바이올린, 비올라, 피아노, 현악기), 스포츠(펜싱, 야구, 발레, 축구, 크리켓, 육상, 핸드볼, 볼링, 수영, 레슬링), 학업(수학, 언어, 의학, 심리학, 사회학, 간호학, 회계학, 통계학, 컴퓨터 사이언스, 경영학), 전문직(축구심판, 보험영업,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연구 결과를 분석했다. 그는 2014년 논문을 통해 이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분석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게임 분야에서 노력과 훈련은 성공에 몇 퍼센트나 기여했을까? 열정과 동기를 가지고 전문가의 체계적인 지도와 함께 1만 시간 이상 연습하면 누구나 이세돌과 같은 실력을 갖출 수 있을까? 이세돌 정도는 아닐지라도 최고의 전문 바둑 기사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았다. 게임 분야에서의 노력은 성공과의 관계성이 26퍼센트에 불과했다. 성공의 원인 중 26퍼센트만이 노력이었고, 74퍼센트는 노력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그러면 음악은 어땠을까? 음악 분야에서의 노력은 성공과 21퍼센트만 관계가 있었다. 나머지 79퍼센트는 노력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성공의 원인이 노력이 아닌 셈이다. 음악 분야와 마찬가지로 스포츠 분야에서도 노력은 성공과 18퍼센트만 관련이 있었다. 스포츠 분야에서의 성공 여부는 누가 얼마나 노력했는지와 별로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게임이나 음악 그리고 스포츠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분야에서는 노력보다 타고난 재능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학업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공부를 잘하는 것은 노력과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 100퍼센트는 아니어도 90퍼센트는 되지 않을까? 놀랍게도 결과는 4퍼센트였다. 이게 무슨 뜻일까? 좀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공부를 잘하는 것과 노력은 ‘거의’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노력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인지적 환상이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안타깝지만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잘하지 못할 수 있다.


    위 결과를 종합하면 ‘스포츠나 음악은 열심히 노력하면 조금 실력을 키울 수 있을지 몰라도 공부는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추론이다.


    마지막으로 전문직에서의 성공은 노력과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 엔지니어든, 축구심판이든, 영업직이든 죽도록 노력하면 그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노력은 이 분야에서의 성공을 몇 퍼센트나 설명할까? 결과는 1퍼센트 미만이었다. 통계적으로 이야기하면 전문직에서 성공하는 것은 노력의 양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전문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대부분 노력을 성공의 원인으로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99퍼센트 이상의 성공이 노력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위 연구 결과를 기초로 잭 햄브릭 교수는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첫째, 안데르스 에릭슨 교수가 이야기하는 것만큼 혹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믿는 것만큼 노력이 성공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구 결과의 핵심은 많이 양보해서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성과를 올리는 데에 조금의 도움은 되겠지만 한계가 극명하다는 것이다. 노력의 효과가 그렇게 크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둘째, 그러면 성공의 주요인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잭 햄브림 교수는 어떻게 답할까? 그는 “많은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그중 핵심은 타고난 재능이다”라고 말한다. 노력의 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재능과 비교한다면 노력의 자리는 초라할 뿐이다. 누가 봐도 재능과 능력의 압승이다.



    당신의 성공은 정당한가

    노력 신봉 사회에서 살아가는 법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가혹하게 대하지 말라

    “그럼 노력하지 말란 말인가?” 이 책을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오해하면 안 된다. 반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고서는 관련한 일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직접 시도해보고, 부딪쳐보고, 경험해봐야 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최선의 노력을 다해봐야 자기의 재능과 능력을 파악할 수 있다. 어찌 몇 시간, 며칠, 몇 주, 몇 달 해보고 판단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일의 종류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재능의 힘을 맹신한 채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는 것은 명분 없는 게으름이고 방종이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그러면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노력하더라도 실패할 수 있고,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성공은 노력으로만 성사되는 것이 아니다. 노력 외에도 중요한 변수들이 많고, 대표적인 것은 재능과 가정적‧사회적 환경이다. 이런 변수들이 노력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런 중요한 변수들은 개인이 자율적으로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특정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을 보면 그 분야에서 엄청난 노력을 한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를 보면서 사람들은 노력으로 희망과 꿈을 찾으려 한다. 노력 신봉 공화국의 대표적인 습관이다. 물론 그 사람이 그 분야에서 엄청난 노력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것은, 그 사람의 타고난 재능과 능력이 노력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재능과 노력이 ‘주’이고 노력이 ‘객’인 것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런 재능과 능력 역시 적절한 가정적‧사회적 환경과 기회를 만나지 못하면 빛을 못 보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주객이 전도되어 노력이 주요인인 양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한다. 노력만 있으면 모두가 성공할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최선의 노력을 다한 후에도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다. 아니, 많은 경우에 실패한다.


    최선의 노력으로도 실패했다면 과감히 포기하라

    그럼 최선의 노력을 다했는데도 실패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노력이 성공의 유일신이 아니기에 과감히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포기해야 한다. 포기해도 괜찮고, 포기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다. 노력에 대한 잘못된 신념과 믿음을 가지고 끝도 없는 노력으로 반복되는 실패를 경험할 필요가 없다. 개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만 남길 뿐이다. 노력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을 너무 가혹하게 몰아붙여서도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다.


    얼마만큼 노력해야 할지는 개인이 판단할 몫이지만, 분명한 것은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이 기준이 아예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너무 높다. 포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다. 하지만 포기해야 새로운 희망과 길이 열린다. 포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다른 길이 열리지 않는다.


    당신의 성공에는 명분이 없다

    당신이 혹시 성공했다 할지라도 당신의 성공에는 명분이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공의 원인인 타고난 재능과 능력, 가정적‧사회적 환경과 기회, 노력 중 어느 것 하나 성공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선택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노력은 본인의 몫이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노력 역시 본인의 것이 아니다. 선택한 것도 아니고 결정한 것도 아니다. 타고난 조절 능력일 뿐이다. 노력 신봉 공화국에 살다 보니 노력이 마치 본인의 몫인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노력은 또 하나의 타고난 능력이다.


    성공했다면 운 좋게 받은 혜택을 나누어라

    당신이 성공했다면 당신은 당신의 성공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 성공으로 얻은 명예, 돈, 권력을 당신의 것만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어쩌다 운이 좋아서 이런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억지로 가지라고 설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 그렇다. 그래서 성공의 혜택을 자신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서만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적절하지 않은 수준을 넘어 공평하지 않은 일이고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성공해서 얻은 빵 일곱 개를 내 맘대로 사용하겠다는데 뭐가 문제냐고 따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래서 공짜로 얻은 것을 기꺼이 다른 사람들과 나눠야 한다. 재능 자체를 나눌 수도 있고 재능으로 얻은 부귀영화를 나눌 수도 있다. 어떤 형태로든 얻은 것을 나눠야 한다.


    가진 것을 나눴다고 자만할 일도, 칭찬받을 일도, 자랑할 일도, 뿌듯해할 일도 아니다. 운 좋게 뛰어난 능력과 재능을 받았더라도, 운 좋게 나의 재능이 빛을 보는 세대와 환경에 놓였더라도, 운 좋게 부유하고 권력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도,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냥 운 좋게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나누는 것은 겸손이 아니고 필연적인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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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