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저   자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역:박미경)
출판사
다산초당
출판일
2022년 04월
서   재







  • 20대의 눈부신 성공을 버리고 숲속으로 17년간 수행을 떠났던, 수많은 스웨덴인들을 불안에서 끌어내어 평화와 고요로 이끌었던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이제 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따뜻한 지혜를 전해드립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알아차리다

    저는 마음챙김(mindfulness)이라는 용어가 편치 않습니다. 한순간도 마음(mind)이 진정으로 충만하다(full)고 느껴본 적이 없거든요. 늘 허전해서 누군가로 또는 뭔가로 채워졌으면 하는 공간이 남아돌고 있지요. 제가 추구하는 건 의식적 현존 상태, 즉 지금을 온전히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표현하면 마치 조금도 긴장을 풀면 안 되는 힘든 일처럼 들립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알아차림(awareness)이라고 말하는 게 더 좋습니다.


    우리는 점차 알아차리며, 그리고 알아차린 채로 머무르며, 알아차림과 하나가 됩니다. 칼스크로나에서 토스터 옆에 서 있던 그날 아침 제게도 알아차림이 일어났습니다. 그 느낌을 표현하자면, 뭔가 부드러운 것에 포근히 기대는 듯한 기분입니다. 생각, 느낌, 신체 감각 등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존재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더 큰 존재가 됩니다. 우리 내면과 주변 세상에서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더 많이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것은 보이지는 않아도 언제나 여러분 곁에 있는 친구처럼 굉장히 친밀하게 느껴집니다.


    현재에 집중하는 정도는 물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정신이 딴 데 있는 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어떤 느낌인지 누구나 잘 알 거예요. 항상 뭔가를 잊어버린 것처럼 찜찜하고 신경에 거슬리지요. 어린아이들을 만나면 우리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가 금세 드러납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그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지 아닌지에 대단히 민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짓으로 즐거운 양 꾸미거나 함께 있으면서도 딴생각을 하면 귀신같이 알아차리지요.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에 온전히 집중한다면, 뇌리를 스치는 온갖 사소한 생각에 마음을 뺏기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우리와 함께 있는 순간을 훨씬 더 즐거워합니다. 우리를 믿고 따르며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이지요. 그때 우리는 주변 세상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연결됩니다. 이미 다 아는 얘기라서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 아는 사실이라도 완전히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겉으로 영리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데 집착하느라 현재에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잊고 사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불편한 삶

    거대 다국적기업의 에스파냐 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회사에서 차량을 지원해주었고 전담 비서도 있었습니다. 출장 다닐 땐 비즈니스석을 이용했습니다. 해변에 멋진 집도 있었지요. 두 달 뒤엔 당시 스웨덴 최대의 가스업체였던 AGA 자회사의 역대 최연소 재무담당최고책임자가 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겨우 만 스물여섯이었습니다. 주변에서 볼 때는 그림처럼 완벽한 인생이었습니다. 하지만 겉보기에 성공한 사람 대부분이 결국엔 깨닫게 되지요. 성공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제가 인생을 능숙하게 살아나가는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확실히 물질적으로나 직업적으로는 많은 것을 이룬 상태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3년 동안 여섯 개 나라를 돌면서 치열하게 일했습니다. 하지만 매 순간 엄청난 의지력과 자제력을 발휘해서 겨우 버텨낸 거였죠. 저는 여전히 속내를 숨기고 재무관리에 관심이 있는 척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에 진심이 아니더라도 열심히 흉내를 내면 생각보다 무척 오래 버틸 수 있거든요. 하지만 자제력으로는 더는 해낼 수 없는, 아니 해내고 싶지 않은 날이 옵니다.


    머릿속은 그 주에 처리할 업무를 생각하느라 분주했습니다. 제 역량으론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일도 있었습니다. 아직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일요일 오후였지만, 마음속에는 다가올 업무 때문에 불안이 가득해 가만히 있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게 어떤 기분인지 다들 알 겁니다. 그런 정신 상태에서는 모든 생각이 시커먼 필터를 통과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을 떠올리든 불안과 걱정, 허탈감과 무력감으로 이어집니다. 그때 제 마음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여기 누워서 암울한 생각만 계속하고 있어 봤자 나한테 좋을 게 하나도 없잖아.’


    문득 그때 읽던 책이 떠올랐습니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그중에서 제가 어렴풋이 이해한 내용을 한 구절 꼽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 내면의 평화로운 것, 고요하고 차분한 것, 자꾸 떠오르는 갖가지 생각으로 말미암아 흐트러지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소중하며,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와 같은 것들에는 보상이 따른다.”


    책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고요함을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내면의 평온함 쪽으로 방향을 돌릴 수 있나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바로 파악할 순 없었지만, 자기 안에서 평온과 고요를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무척 끌렸습니다.


    평온을 찾는 데 명상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명상이 실제로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명상하는 사람들이 호흡에 무척 집중하는 것으로 봐서는 호흡과 관련 있지 않을까 짐작하는 정도였지요.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평생 해오던 일이라 식은 죽 먹기였다거나 호흡에 타고난 재주가 있었다고 주장하진 않겠습니다. 실은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집중력을 유지하느라 무척 애써야 했습니다. 10분에서 15분 정도 계속하면서 호흡만을 생각하려고 아무리 애써도 제 마음은 자꾸만 다른 쪽으로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점차 마음이 조금이나마 잠잠해졌습니다. 괄목할 만하거나 종교적이거나 신비한 변화를 느낀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 잠시나마 급박한 마감에 시달리지 않는 시기가 찾아왔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급류처럼 휘몰아치는 생각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기엔 충분했지요.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겠다고 미친 듯이 허우적거리지 않아도 됐습니다. 가슴을 짓누르던 압박이 살짝 느슨해졌어요. 갖가지 생각으로 불안해하는 사이사이에 평온을 유지하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졌습니다. 이렇게 비교적 차분해졌을 때였습니다. 제 안의 고요한 공간에서, 어떤 생각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때가 됐어.’


    며칠 뒤, 저는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지혜가 자라는 사람, 나티코

    1992년 1월 28일, 툭툭(동남아시아 지역의 대중교통인 삼륜 택시)에서 내려 작은 배낭을 둘러메고 산길을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난생처음 사원 정문을 통과했습니다. 출입구 옆에 팻말이 하나 걸려 있었습니다. 왓파나나찻, 국제 숲속 사원. 우거진 나뭇가지들이 아치형 지붕을 이룬 길을 따라 들어가자 금세 선당(禪堂)에 이르렀지요. 호랑이 연고 냄새와 향 사르는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이십여 명의 승려들이 야트막한 연단에 앉아 조용히 바리때에 담긴 음식을 공양하고 있었습니다.


    주지 스님의 이름은 아잔 파사노였습니다. 캐나다 서부 오지에서 벌목꾼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들었지요. 저는 그곳에 찾아간 이유를 말했습니다.


    “저는 숲속 승려가 되고 싶어서 모든 걸 뒤로하고 왔습니다.”


    3개월 뒤에 저는 사미승, 즉 수습 승려가 되었습니다. 승명(僧名)도 부여받았습니다. 저는 사원의 주지이자 스승인 아잔 파사노 스님을 대단히 존경했습니다. 처음부터 무한히 신뢰했고, 스님은 그 신뢰에 의문을 품게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잔 파사노 스님은 제게 나티코라는 이름을 제안하며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습니다. ‘지혜롭게 성장하는 자’라는 뜻이지요. 저는 그 이름이 무척 좋았고 지금도 여전히 좋습니다.


    제가 머물던 숲속 사원에서는 사미승은 황토색 승복을 입어서 일반 승려처럼 보이지만 좀 더 따르기 수월한 계율이 적용됩니다. 그렇게 사미승으로서 1년을 보낸 뒤 본인도 계속 수행할 의사가 있고 사원에서도 그가 수행의 길을 걷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하면 그제야 ‘정식’ 승려가 될 수 있지요. 정식 승려가 된다는 것은 곧 훨씬 더 엄격한 계율에 따라 살기를 선택한다는 뜻입니다. 어느 종파에 속하느냐에 따라 전통이 다양하지만, 테라와다, 즉 남방불교에 속한 비구(남자 승려)는 227가지 계율을 따르고 비구니(여자 승려)는 311가지 계율을 따릅니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승려는 계율을 온전히 암송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계율을 다 암송하려면 정말 엄청나게 많이 연습해야 합니다. 2주에 한 번씩 우리 중 한 명이 전체 승려 앞에서 큰 소리로 계율을 암송했습니다. 저도 결국 다 암송하긴 했지만, 참으로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능숙하게 암송하기까지 과장 없이 정말 1000시간 넘게 걸렸던 것 같습니다.


    태국의 숲속 사원 전통은 부처님이 정한 계율을 저버리는 승려들에 문제의식을 느낀 수행자들이 시작한 것입니다. 따라서 숲속 사원에서 수행하는 승려들의 삶은 지극히 단순하고 검박했으며, 고요히 앉아서 명상하는 좌선 수행에 집중했고, 계율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우리는 열대의 우거진 숲 곳곳에 있는 높다란 나무 기둥들 위에 조그마한 오두막을 짓고 살았습니다. 나무껍질로 짠 돗자리를 깔고 잤고, 하루에 한 끼 주어진 음식만을 먹었습니다. 돈을 전혀 만지지 않았으며, 금욕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익숙해져야 할 것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엔 명상도 있었습니다. 최악의 명상가를 뽑는다면 우승 후보로 꼽혔을 터라, 저는 사원 생활에 꼭 맞는 완벽한 수행자는 아니었지요.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삼사십 분 이상을 명상하는 좌선에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매번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습니다. 게다가 서커스의 원숭이처럼 날뛰는 생각을 여전히 어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의무적으로 매일 긴 시간 동안 좌선하며 강도 높은 수행을 했는데도 제 의지대로 명상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은 수년이 흐른 다음이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저는 승려가 되기로 한 제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수행을 시작하고 나서야 마침내 제 안에서 ‘이건 내 삶이 아니야’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던 목소리가 잠잠해진 것입니다.


    서구에서는, 특히 사업 영역에선 지적 영역이 사실상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배우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선 제가 오랫동안 의심해왔던 가설 하나를 설득력 있게 증명해주었습니다. 즉, 인간의 가치와 재주는 높은 지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지요. 우리 머릿속에 한계가 없는 지성이 존재하며, 우리는 거기 더 깊이 의지할수록 더욱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제 안에 있는 현명한 목소리, 저를 이곳까지 오게 한 목소리는 새겨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난생처음으로 세상과 제 생각이 일치했습니다. 인생에서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었지요. 현재 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기. 진실을 말하기. 서로 돕기. 쉼 없이 떠오르는 생각보다 침묵을 신뢰하기. 마침내 집에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괴짜들의 공동체

    처음 승려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 제 머릿속에는 불교 사원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그 안에서의 삶이 어떠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승려가 되고 나서는 그중 많은 부분을 바꿔야 했지요.


    제 자신이 주말도 없이 24시간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공동체에 합류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는 데는 몇 주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중엔 살면서 만나볼 그 누구보다 별난 사람도 있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은 사원을 훌쩍 떠나는데, 별로 달갑지 않은 사람은 절대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보아 하니 이런 사회성 훈련은 수행의 작은 부분이 아니라 그 핵심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것만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었지요.


    주지 스님은 우리에게 다른 이를 대할 때 이런 식으로 생각하라고 격려했습니다.


    우리는 해변에 쓸려온 자갈과 같다네. 처음엔 거칠고 들쭉날쭉하지. 그런데 삶의 파도가 쉼 없이 밀려온다네. 우리가 그곳에 머물며 다른 자갈들 사이에서 거칠게 밀쳐지고 비벼지다 보면, 날카로운 모서리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닳게 된다네. 결국 둥글고 매끄러워지지. 그러면 빛을 반사하며 반짝이게 될 걸세.


    인간만이 자신과 맞지 않는 다른 존재를 성가시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미워하고 불편하게 여길 때 우리는 엄청난 기운을 소모하게 됩니다. 우리의 힘이 줄줄 흘러나갈 구멍이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다행히도 그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누군가와 좀 더 편하게 지내고 싶고, 그 사람이 자기 입맛에 맞게 행동했으면 한다면 기실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지요. 그들을 그 모습 그대로 좋아하는 겁니다.


    우리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리하여 모두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할 때 인생은 크게 달라집니다. 각자의 강점과 재능을 발휘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할 기회를 서로 상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남들이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고 느끼면, 우리 또한 남들을 더 너그럽게 대하기 쉽습니다. 주변을 더 공감하는 자세로 관찰하고 또 그들과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마법의 주문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밤을 새워가며 명상하는 철야정진(徹夜情進)을 했습니다. 제가 첫 번째로 모신 주지 스님인 아잔 파사노 스님은 그때 이미 태국을 떠나 미국에서 새로운 사원을 연 뒤였습니다. 뒤이어 주지를 맡은 분은 아잔 자야사로 스님이었는데, 전임자 못지않게 존경받았지요. 마음이 바다처럼 넓고 정신이 칼날처럼 예리해서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두루 갖춘 분이었습니다.


    선당에 모인 승려와 신도들은 모두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스님의 말씀에 집중했습니다. 아잔 자야사로 스님은 영국인이었지만 어느 나라 말을 사용해도 언변이 뛰어난 분이었지요. 그날 밤에도 뜻밖의 말로 우리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오늘 밤엔 여러분에게 마법의 주문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숲속 사원에서는 전통적으로 마법과 신비주의를 멀리하니까요. 그렇지만 아잔 자야사로 스님은 유창한 태국어로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떤 언어로든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뇐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다들 숨죽이고 스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 뒤로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저는 그 주문을 들려주던 스님의 목소리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뇌가 분석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진실을 인식하고 반응할 때의 기분을 다들 알 겁니다. 그런 말은 여러분의 몸과 마음에 새겨져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인간은 본래 자신이 더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살아가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틀릴 수 있어. 내가 다 알지는 못해’라는 생각이 익숙해지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확실하게 행복해질 방법은 흔치 않습니다.


    우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직감을 현실이라고 믿습니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다고, 다 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이 옳은지 그른지,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믿지요. 우리는 걸핏하면 삶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우리가 계획한 방식대로 마땅히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막연한 관념과 의지대로 삶이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극히 무지하다는 것을 이해할 때, 지혜가 싹틉니다.


    잃을 것은 너무나 많지만

    그날도 아름다운 칸더슈테크 사원의 조그마한 방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었습니다. 그런 다음 명상을 하려고 향과 촛불을 켰습니다. 20년 동안 매일 명상을 하다 보니, 이젠 더는 졸지 않았습니다. 실은 거의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지요.


    금박을 입힌 목조 불상 앞에 가만히 앉아 호흡에 집중했습니다. 점차 사방이 고요해졌습니다. 이제 고요는 익숙할 뿐만 아니라 제 집처럼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라 느껴졌습니다. 10분에서 12분 정도 흘렀을까요. 깊이 있고 현명하고 통찰력 있는 내면의 목소리가 다시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제 안에서 뭔가가 속삭였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때가 됐어.’


    무척 놀랐습니다. 아니, 두려웠습니다. ‘난 승복 차림으로 죽음을 맞이할 승려인걸. 난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는 승려란 말이야.’ 그런데 마흔여섯 살에 갑자기 제 안에서 집에 가야 할 때가 됐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20년 전 에스파냐에서 5월 어느 일요일, 소파에 앉아서 들었던 음성만큼 또렷했습니다.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잃을 게 너무 많았습니다. 제 인생 전체와 정체성이 사원 생활과 얽혀 있었습니다.


    6개월 정도 시간을 두고 고민했습니다. 결국 결정을 내리고 어머니에게 전화했더니, 어머니는 신중하게 대답했습니다. “확실히 넌 은퇴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지.” 어머니가 스위스 사원에 방문했을 때, 그곳이 은퇴한 노인들의 쉼터 같다고 느꼈던 모양입니다. 어쨌든 어머니의 말은 일리가 있었습니다.


    승려를 그만두기로 한 결정과는 무관했지만 당시 저는 몸이 아팠습니다. 특발성혈소판감소자반증(ITP)이라 불리는 특이한 자가 면역 질환에 걸린 것입니다. ITP는 혈소판이 조기에 파괴되어 심각할 출혈로 이어지는 치명적인 증상이 있어서 중병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스위스로 돌아온 뒤 여러 차례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습니다.


    몹시 거슬리는 한마디

    사랑하는 이들 곁에 영원히 머물 수 없음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죽음을 가까이에서 접해야만 하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머리로는 우리 모두 언젠가 죽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지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머리에 있는 지식일 뿐입니다. 그 사실을 자기 존재로 깨닫는 것은 인생 전체를 동원해도 이루기 어려운 과업이지요. 그래도 아깝지 않은 가치가 있습니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모든 사람과 반드시 이별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확실하며 그 외의 나머지는 다 추측이고 가능성입니다. 그 진실이 우리 존재의 일부가 되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삶 자체에 다가갈 유일한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다정하게, 다정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과 한마디를 전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이 그 말을 꺼낼 시간입니다. 여러분만이 해줄 수 있는 말 몇마디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망설이지 마십시오.


    지금이라도 바로잡을 수 있는, 후회스러운 일이 있습니까? 당장 바로잡으면 됩니다.


    어쩌면 자기 인생에서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일이 있습니까? 때로는 정말 그런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들과 똑같은 DNA와 똑같은 업보와 똑같은 성향을 타고난다면, 여러분이 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라고 똑같은 주변 사람들 속에서 똑같은 일을 겪으며 살았다면, 어쩌면 여러분도 그들과 똑같이 행동했을지 모릅니다.


    세상에는 이해의 수준을 넘어선 악이 존재합니다. 제가 지금 이야기하는 건 그런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우리의 삶에서도 악질적이고 양심 없는 행위들이 있습니다. 그런 행위들은 심판받거나 비난받아야 마땅하지요. 그러나 그 행위를 저지른 사람에게까지 완전히 마음을 닫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사람과 행위를 분리할 줄 알게 될 때 진정 영혼이 멀리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따뜻하게 포용하고자 하는 마음 상태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렇게 되고자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고 부드럽게 대한다고 해서 내가 겁쟁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넉넉한 사람이라도 의도적으로 상대가 자기를 속이고 선을 넘는 행위를 할 때 얼마든지 단호할 수 있지요. 사람과 행위는 얼마든지 분리할 수 있습니다.


    혹시 이 말이 몹시 신경에 거슬리나요? 절대 다시 받아들일 수 없는 누군가가 이미 존재합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습니다. 화해와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차분한 상태에서 그 분노와 미움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누군가에게서 완전히 닫아버릴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적어도 상대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은요? 여러분의 세상은 분명히 더 좁아졌을 겁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 억울함의 씨앗을 심은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도 남태평양제도에 남았던 일본의 잔병 일부는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절대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중 몇몇은 종전 후에도 수십 년이나 자기 자리를 지키며 무기를 거두지 않았지요. 전쟁이 끝났다는 속임수에 절대 당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던 겁니다. 그 무엇도 그들을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종종 그와 같습니다. 전쟁에 너무나 집중한 나머지 백기를 보기 못하지요. 하지만 결국에는 전쟁이 끝났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옵니다. 그때가 되면 이미 너무 긴 세월이 지났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도달하면 갑자기 굉장히 많은 것들이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갈 것입니다.


    ‘전쟁이 끝났다. 백기를 흔들라.’ 화해는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다른 사람이 먼저 용서하거나 화해를 청하기까지 기다린 다음 나아갈 순 없습니다. 모든 것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끝납니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