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이 안에 당신의 수명이 들어 있습니다

저   자
니키 얼릭(역:정지현)
출판사
생각정거장
출판일
2023년 08월
서   재







  • 이야기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의문의 상자와 함께 시작합니다. 상자에는 받는 사람의 이름과 암호 같은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이 안에 당신의 수명이 들어 있습니다.” 평범했던 8명의 가족, 우정, 희망, 운명에 대한 마치 끈처럼 얽히고설킨 이야기!



    이 안에 당신의 수명이 들어 있습니다


    니나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상자가 현관문 앞에 나타났을 때 니나는 아직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곤란한 꿈이라도 꾸는지 눈꺼풀이 경련하듯 씰룩거렸다. 꿈속에서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선생님이 논술 숙제를 제출하라는데, 그런 숙제가 있었는지도 금시초문이었다. 평소 스트레스에 약한 그녀는 비슷한 악몽을 자주 꾸었다. 하지만 곧 눈을 뜨면 기다리고 있을 일은 그런 단순한 악몽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날 아침에도 먼저 일어난 사람은 니나였다. 그녀는 아직 꿈나라에 있는 모라가 깰까 봐 조심스럽게 침대를 빠져나왔다. 체크무늬 잠옷 차림 그대로 주방으로 가서 가스레인지를 켰다. 가스 불 위에 놓인 볼록한 주황색 찻주전자는 작년 여름에 모라가 벼룩시장에서 건진 것이었다.


    니나는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보았다. 그녀가 매일 아침을 시작하는 방법이었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이런저런 소식지를 읽다 보면 어느덧 모라의 알람이 울리고 달걀을 먹을지 오트밀을 먹을지 둘이 아웅다웅하는 것이 매일 아침의 풍경이었다. 니나는 편집자라는 직업 때문에 최신 정보에 빠삭해야 했다. 해마다 주시해야 할 앱이나 매체의 숫자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어났다. 가끔은 평생 읽고 또 읽어도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날 아침에는 따라잡으려고 애쓸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핸드폰 잠금장치를 풀자마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친구들에게 온 부재중 전화 세 통과 몇 시간 동안 쌓인 메시지가 가득했다. 대부분은 동료 편집자들의 단체방 메시지였다.


    불안할 정도로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에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머릿속에서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니까, 전 세계 사람들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문구가 적힌 똑같은 상자를 동시다발적으로 받았고 다들 온라인에 모여서 끔찍한 결론을 도출하고 있었다. 상자 안에 담긴 무언가가 우리의 남은 수명을 안다고, 무엇인지 모를 존재가 정한 수명을.


    큰소리로 모라를 불러서 깨우려던 찰나 니나는 자신들에게도 상자가 왔으리라는 생각이 스쳤다.


    떨리는 손에 들린 핸드폰을 소파에 떨어뜨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약간 후들거리는 다리로 현관문까지 걸어갔다. 심호흡을 한 다음 문구멍으로 밖을 내다보았지만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느릿느릿 이중 잠금장치를 풀었다. 마치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는 게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아주 조금만 열었다.


    상자가 있었다.


    니나

    일주일 전의 일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녀와 모라가 결국 상자를 열어본 날이었다.


    니나는 끝까지 열지 말자고 했지만 모라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어느 날 밤 모라가 놀라울 정도로 침착한 모습으로 말했다. “나 상자 열어보고 싶어.”


    니나는 상자를 열어보는 게 두려웠지만 더 무서운 일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혼자만 상자를 열어보는 건 더 무서운 일일 터였다. 장녀인 니나는 언니답게 가족을 과잉보호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 기분을 느꼈다. 모라를 포함해 주변 사람들을 지키고 돌봐주어야 한다는 생각. 그녀는 절대로 모라가 혼자 상자를 열어보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두 여자는 거실의 러그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각자의 상자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고 희미하게 빛나는 가느다란 끈을 꺼냈다.


    그때만 해도 끈의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할 때였지만 그들은 끈의 양쪽 끝을 잡고 서로 나란히 대보았다. 두 개의 끈은 한눈에 보기에도 소름 끼칠 정도로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모라의 끈은 니나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니나는 이제 확실하게 알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의 끈이 짧게 싹둑 잘려져 있다는 것을.


    니나

    데보라 케인 편집장이 급하게 달려 나와 뉴욕 메모리얼 병원에서 총기 난사가 일어났다고 알린 지 이틀이 지났다.


    그날 아침 니나는 북한 정부가 주민들의 상자를 압수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대해 몇몇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앞으로 북한에서는 아직 상자를 열어보지 않은 사람은 열면 안 되고 22세를 맞이해 상자를 받게 될 사람들은 무조건 열지 않은 채로 당국에 제출해야 했다.


    일부 유럽 연합국은 겁에 질린 짧은 끈 이민자들이 마지막 희망이라도 붙잡고자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기 쉬운 국가로 넘어오려고 할 것을 예상했다. 그래서 가장 문제가 많은 국경 지대로 추가 병력을 보냈다. 미국 국경수비대도 경계를 바짝 세운 상태라고 전해졌다. 하지만 북한의 결정은 보통의 정치를 넘어서는 새로운 소식이었다. 서서히 불안이 들끓기 시작하는 가운데 잃을 것 없는 짧은 끈들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지도층의 두려움에서 나온 결정으로 추측되었다.


    “극단적인 조치긴 하지만 오히려 괜찮은 방법일지도 몰라요.” 기자 하나가 말했다. “모두가 상자를 열어보지 않는다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이미 열어본 사람들은 어쩌고. 열어본 사람들한텐 너무 늦었지.” 니나가 말했다.


    “우리 미국에선 짧은 끈들이 세상을 위협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없겠네요.”


    그 불길한 발언은 니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짧은 끈들이 왜 세상을 위협하는데?”


    기자의 답을 듣기도 전에 책상 앞에 데보라가 나타났다. 무척 껄끄러운 표정이었다. “뉴욕 메모리얼 병원에서 총기 난사가 발생했대. 사상자도 여러 명 나왔고.”

    48시간 후, 범인을 제외한 사망자 수가 다섯 명이라는 최종 보도가 나왔다. 사망자들의 나이는 23세에서 51세까지 다양했다. 다섯 명 모두 짧은 끈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끈이 짧다는 것을 몰랐을 수도 있지만 알고서 병원에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일 수도 있었다. 간절히 피하고자 하는 운명이 정작 응급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역시나 끈이 짧은 사람이 총을 들고 나타나 그들에게 마지막을 선사하고 말았다. 범인은 뉴욕 퀸즈에 사는 조너선 클라크였다.


    끝까지 거부하면서 버티는 소수를 제외하고 세상 모두가 끈의 진실을 받아들이자 예전과 다른 새로운 세상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대부분이 선악과를 따먹었고 나머지는 두려워서 선뜻 먹지 못한 에덴동산.


    사람들은 집과 재산을 처분하고 직장을 버렸다.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쓰려는 것이었다.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 바닷가에서 살고 싶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글을 쓰고 춤을 추고 싶어서. 분노와 질투, 폭력의 심연으로 몸을 던지는 이들도 있었다.


    짧은 끈에 의해 일어난 잇따른 총기 난사 사건으로 미디어는 난리가 났다. “앞으로 짧은 끈들의 공격이 더 있을 것인가?”라는 글자가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메웠다.


    짧은 끈들이 과거에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에게 복수하려고 모이기도 했다. 복수 대상의 끈이 길면 아무리 죽이려고 해도 헛수고라는 게 밝혀지자 고통을 주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다.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들이 조직 폭력배처럼 행동했다. 창문을 깨뜨리고 집에 불을 지르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돈을 빼앗았다. 짧은 끈들은 얼마 남지 않은 생이 억울했지만 어차피 범죄를 저질러도 감옥에서 썩을 만큼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사실에 대담해졌고 천하무적이 된 기분마저 느꼈다.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없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끈이 긴 사람들도 무모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늙을 때까지 살아 있으리란 사실이 보장되자 용감하게 스카이다이빙과 카레이싱, 강력한 마약에 도전했다. 하지만 그들은 긴 끈이 생존까지만 보장할 뿐, 다치거나 병에 걸리지 않게 해주진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말았다. 뉴스 앵커, 의사, 토크쇼 진행자, 정치인들은 긴 끈이 천하무적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당부했다. 장수라는 최고의 선물을 코마 상태나 감옥에서 낭비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긴 끈들이 아무리 극단적인 행각을 벌여도 경각심을 일으키는 건 짧은 끈들이었다. 물론 짧은 끈 중에서 폭력을 선택하는 이들은 지극히 적은 숫자였지만 그들에 의한 범죄가 급증하고 있어서 대중을 불안에 떨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전 세계의 긴 끈들은 대부분 짧은 끈들의 분노와 슬픔을 이해하고 공감했지만 커지는 두려움은 어쩔 수 없었다.



    가을

    모라

    모라는 그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니나의 걱정스러운 눈길을 알아차렸다.


    “무슨 일 있어?” 니나가 물었다.

    모라가 한숨을 쉬었다. “내 심정이 어떤지 잘 알잖아. 기회의 문이 다 닫히고...... 직장에서도 답답하고...... 뉴스는 점점 더 흉흉해지고 사람들은 계속 열받는 짓만 하고. 직장에 나가지 말고 이런 세상과 싸워야 하나 싶어.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 계속 싸워야만 하는 상황 자체가...... 막다른 골목에 갇혀버린 느낌이야.”


    두 여자는 조용히 침대로 가서 누웠다. 둘 다 잠들지 않은 채로 침묵 속에서 몇 분이 지났다. 니나가 모라 쪽으로 돌아누우며 속삭였다. “우리 어디 갈까?”


    모라도 돌아누워 니나를 보았다. 약간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너 밤에 나가는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지금 말고. 조만간. 좀 멀리 다녀오자. 우리 둘 다 가본 적 없는 곳으로.”


    모라는 깜짝 놀랐다. “진심이야?”


    “갇혀버린 느낌이라면 나갈 때가 된 거야.”


    모라가 니나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래. 어디가 좋을지 내일 아침부터 아이디어를 내보자.”


    모라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가짜 끈을 판 남자, 남편을 고소 한 여자, 그날의 모든 어둠이 조금씩 멀어지고 그날 학교에서 본 포스터가 떠올랐다. 아직 비워지지 않은 쓰레기통에 끄트머리가 삐죽 나와 있던 포스터였다. 모라는 모임이 끝나고 교실에서 나왔을 때 그 포스터를 발견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슬쩍 그것을 쓰레기통에서 꺼냈다.


    구겨진 포스터에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유명인들의 사진이 가득했다. 셀레나 킨타니야, 코비 브라이언트, 다이애나 왕세자비, 채드윅 보스만, 포스터 맨 위에는 필기체로 “길이에 상관없이 모두가 의미 있는 삶”이라고 적혀 있었다.


    모라는 그 포스터를 누가, 왜 만들었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손에 들고 있으니 혼자라는 느낌이 덜해졌다. 같은 편이 생긴 것 같았다. 그녀의 삶, 모든 짧은 끈들의 삶이 가치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홀로 싸우고 있는 게 아닌지도 몰랐다.


    모라

    공항에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기에 베니스에 도착하자 안심이 되었다.


    모라는 국제선 터미널이 그렇게 북적거리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녀가 공항 밖의 신문 가판대에서 니나를 기다리는데, 유명 브랜드 바람막이 점퍼를 입은 가이드와 단체 관광객들이 세 팀이나 지나갔다. 수많은 ‘버킷리스트’ 여행 상품이 짧은 끈과 긴 끈을 막론하고 세상을 구경할 시간이 얼마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서 모두 인기를 끌고 있었다.


    건너편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배낭 여행객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지나치게 꽉꽉 채운 더플백을 메고 침낭과 요가 매트를 겨드랑이에 꼈다. 드문드문 들리는 대화 내용에 의하면 그들의 목적지는 히말라야인 모양이었다.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상자가 나타난 후 아시아 지역에 끌리는 서양인들이 많다는 기사가 있었다.


    베니스의 성스러운 장소들도 방문객들로 붐비기는 마찬가지였다. 니나와 모라도 공항 페리에 탑승해 물 위에서 솟아난 도시를 바라보았다. 힘들게 여행 가방을 밀면서 울퉁불퉁한 거리를 지나 운하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를 오르내리며 숨을 내쉬고 들이마셨다. 그때마다 새로운 장소에 와 있다는 흥분감이 폐를 가득 채우는 게 느껴졌다. 눈에 풍경을 담고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마시며 한꺼번에 수많은 과제를 해내느라 감각이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지금 이 순간이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대담하고 특별한 순간이라는 사실이 온몸의 감각을 한껏 고조시켰다.


    한번은 작은 상점의 창문에서 열 개가 넘는 색칠한 얼굴들이 텅 빈 눈으로 쳐다보는 바람에 모라는 화들짝 놀랐다.


    니나는 모라를 따라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벽이며 천장이며 조금의 틈새도 없이 베니스의 전통 가면이 가득했다. 도자기 재질의 가면들은 저마다 개성이 다양했다. 방울 달린 광대 모자를 쓴 어릿광대, 긴 새 부리가 달린 으스스한 역병 의사. 온갖 다양한 색깔의 가면이 있었다. 리본, 깃털, 금색의 정교한 잎 장식이 달린 것들,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표정, 짓궂게 웃는 얼굴. 모라는 섬세한 음표로 장식된 하얀 가면으로 다가가 감탄했다.


    잠시 후 상점의 안쪽 공간에서 마호가니 지팡이를 짚은 여자가 나왔다. 그녀는 니나와 모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군데군데 희끗희끗해진 짙은 갈색 머리를 헐렁하게 쪽지고 테가 빨간 안경을 목걸이처럼 둘렀다.


    모라는 집에 걸어둘 가면을 하나 골랐다. 니나는 다음으로 갈수록 점점 더 화려해지는 가면을 몇 개 써보았다. 가면을 쓰자 충격적일 정도로 자신이 누구인지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모라는 주인의 말을 곱씹었다. 가면이 주는 자유와 무적이 된 듯한 느낌. 어쩌면 끈이 긴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이탈리아에서 보낸 시간은 너무 좋았다. 잠시 집을 떠나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면을 쓸 기회에 대한 생각이 모라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단 하루만이라도 다른 사람, 길이가 다른 끈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모라는 주인이 조심스럽게 니나의 얼굴에서 가면을 벗겨주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탈리아에서는 상자에 대한 반응이 어떤가요? 대부분 열어봤나요?” 모라가 갑작스럽게 물었다.


    여자는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열어본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열어보지 않은 것 같네요. 우리 여동생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데 열어보지 않았어요. 신이 부를 때 언제든 갈 거라고 열어보지 않았죠. 나도 안 열어봤는데...... 내 인생에 만족하기 때문이에요.” 여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미국 사람들은 끈이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고 하더군요. 그 뭐냐......”

    “우선순위요?” 모라가 끼어들었다.


    “Si, si(맞아요, 맞아요). 우선순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요. 하지만 우리 이탈리아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어요. 우린 항상 예술을, 음식을, 열정을 우선순위로 두었지요.” 여자가 팔을 돌려서 가게 안을 가리켰다. “그리고 우린 이미 가족을 우선시했죠. 인생에서 뭐가 가장 중요한지 끈이 알려줄 필요가 없었어요.”



    몇 년 후

    니나

    끈이 나타난 지 1년째 되는 날이 지나고 세월은 계속 흘렀다. 어느덧 끈이 나타난 지도 거의 10년째가 되었다.


    그동안 상자에 고마워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게 해주어서, 후회할 마지막 말을 내뱉지 않을 수 있게 해주어서 끈의 기묘한 힘에서 위안을 얻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끈이 짧은 이유가 중간에 수명이 줄어든 게 아니라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었다. 끈의 길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정해지는 것이니 처음부터 그 짧은 길이가 그들의 운명이었고 절대로 끝을 막을 수 없었다고. 사랑하는 사람의 이른 죽음이 어떤 결정이나 행동 때문이 아니라는 믿음은 이별을 받아들이기 한결 쉽게 해주었다. 다른 도시에서 살았더라면, 다른 음식을 먹었더라면, 집에 갈 때 다른 길로 갔더라면 하고 후회할 필요가 없었다. 헤어짐은 여전히 가슴 아프고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적어도 만약의 상황에 대한 후회가 남아 집요하게 괴롭히지는 않았다. 끈의 길이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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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